중학동창회에 나갔더니 중학 동창이면서 선배 장교기 있어 반갑다고 악수를 했더니 왜 거수경례를 안 하냐고 했다.
화가 났다.
ㄴㄱㅁ 여기는 국방회관도 육군회관도 아닌 모다기 감자탕에서 웬 군대 거수경례냐고 즉석에서 거수투표를 했다.
여기 중학동창회에 와서 왕년에 선임이라고 계속 선임대우 해주냐 수평으로 대하는 게 맞냐 했더니 25대 3으로 수평이 맞다고 했다.
그 후로 학생시절 졸업은 같으나 군대 계급 높았던 인원들은 안 나온다.
그래도 동창회는 잘 굴러간다.
우리는 격과 장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격과장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외계인 취급을 받지만 오늘도 씩씩하게 글을 쓴다.
전공이 국어교육과라 명품백을 걸치거나 머리를 비싼 미용실에서 하는 여학생이 없었는데 음악교육과, 무용교육과에는 그 시절에도 명품백을 걸치고 머리를 하러 청주에도 미용실이 20개가 넘었는데 꼭 서울에 가서 이화여대 앞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와서 자랑을 했다.
더 골 때리는 것을 그 머리를 구경하느라 내가 첫 미팅서 만난 여자가 애프터를 신청하고, 음악교육과 서울서 머리 한 그녀의 머리를 보고 약속 장소에 오느라 , 6시 30분 전설의 언덕서 만난 기로 했는데 , 6시 50분이 되어도 안 와서 메모지에 함문평 6시 20분에 와서 50분까지 기다리다 간다라고 써붙이고 다방을 나왔다.
다음날 여자가 찾아와 무슨 남자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냐고 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가서 약속시간 플러스 20분 기다린 남자와 그걸 참을성 없다고 야단치는 여자 누구 말이 맞는지 육거리에서 꽃다리까지 길거리 투표 1000명 하자고 했더니 여자가 응하지 않았다.
요즘 김건희 여사 디올백을 보니 1982년 된장녀와 된장녀를 부러워하는 나의 파트너 그녀가 생각난다.
반대로 도도녀도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졸업하면 내방 책을 보관할 곳이 없는데 책을 보관해 달라고 서투른 포로포즈에 책만 읽고 행동 안 하는 서생의 아내는 인생이 고달파하고 거절했다.
그녀는 대학 4년을 청바지와 면티 색상만 다르게 입고 오직 자취방과 강의실 도서관만 다람쥐 채바퀴 돌듯이 하고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