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월 15일 접경지역 눈이 소복하게 쌓인 벌판을 국군복장이 아닌 관동군 복장 청년들이 남하했다. 조선인 포로가 시베리아 억류를 마치고 흥남을 경유 고향으로 내려오는 중에 파주에서 군인과 경찰에 잡혔다. 수상한 복장의 청년들이 파주경찰서에서 붙잡혀 인천 용헌동 전재민 수용소에 이송되었다.
제갈재석은 경기도 김포가 고향이었다. 1944년 2월 김포에서 징집되어 길림성 관동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받았다. 입대할 때 무운장구라고 수를 놓은 센닌바리를 누님이 만들어 주었다. 헝겊 한 조각에 여성 천 명이 한 올씩 빨간 실로 수를 놓은 것이다. 말이 천명이지 어떻게 천 명이 수를 놓을 수 있겠는가? 대부분 누님이 하고 장기리, 운양리, 풍무리 일대 누님이 아는 여자 몇 명에게 부탁하고 나머지를 누님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천조각을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 덕분인지 효과는 알 수 없으나 관동군이 패망하고 소련군에 포로가 되었어도 죽지 않고 살아왔다. 늦었지만 귀국해서 결혼도 했고 자식을 낳아 살았다.
내 인생 군대를 두 번 다녀오고, 의용군으로 근무한 거까지 치자면 군복만 세 벌이다. 청춘시절을 군복에 실려 보냈다. 요즘도 금융감독원장 아들놈을 군대 면제하는데 도움을 준 병무청 주사나부랭이와 사무관이 감사원 감사에 걸려 징계에 회보 된 것을 보면 군대는 뺄 수만 있으면 빼는 것이 좋다. 더 오래전에는 가수 유승준이라는 놈이 군대 그것도 해병대 갈듯 폼 잡는 말을 하더니 미국에 가서 시민권을 얻어 병역기피자가 돼있다. 세월이 30년 지나 한국에 입국하려 해도 입국허가가 안 난다고 소송을 걸었다. 오죽하면 군대 면제는 신의 아들, 육방은 장군의 아들, 18방은 사람의 아들, 현역은 어둠의 자식이라고 할까?
작년에 해병 채 상병이 순직했다. 그 순직한 해병 병사의 상관들이 줄줄이 알사탕으로 처벌 선상에 오르자 대통령이 버럭 화를 냈다.
해병 1 사단장을 수사받을 명단에서 뺐다. 군인은 비가 와도 군인 눈이 와도 군인이다. 언제부터 군인이 정치 시녀가 되었는지 군대 장군이 예전의 김석원 자운이나 채명신 장군 같은 장군은 없고, 눈치나 보는 똥별만 즐비한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