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사태로 잡혀간 구정우 씨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조사실로 끌려갔다.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만으로 전라도 너 김대중 알지?라고 수사관이 물었다.
사북사태를 김대중이 사주해서 일으켰냐? 물었다. 김대중이 시켜서 전라도서 멀리 강원도 탄광에 입사했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니 고문이 시작되었다. 통닭구이 자세로 각목에 거꾸로 매단 후 얼굴에 수건을 덮고 코와 입에 고춧가루 물었다.
자꾸만 김대중이 다 포섭해서 서울 광산노조 회의에 올라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구정우 씨는 전라도 출신이지만 김대중을 텔레비전에서 본 일밖에 없다고 하자 더 혹독한 고문을 했다고 세월이 지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했다.
위에 나오는 고문을 안 당해본 사람은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작가는 소위 시절 유격훈련 간에 민가에 내려가면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기고 민가에 갔다가 잠복한 조교에게 걸려 위에 고문을 당했다. 허름한 농막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있고 인공기가 달린 고문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위에 열거한 고문을 가하면서 김일성 수령 만세! 3창을 하면 풀어준다는 것을 거부하고 풀릴 때까지 소속, 계급, 군번, 성명만 대고 묵비권 행사하다 풀려났다. 훈련 동기 중에는 김일성 수령님 만세 삼창을 하고 조기 풀려난 장교도 있다. 그런 사람은 유격점수 최하 점수를 받았고 묵비권으로 버틴 장교는 목표물을 빨리 찾은 A플러스 다음 등급 점수를 받았다.
2024년 눈으로 1980년을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그때는 야만인 줄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갔다.
구정우 씨는 1980년 6월 17일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가 풀려났다. 군검찰에서 사북에서.고문당한 거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는 벽박을 받아 말도 못하고 지내다가 과거사진상조사에서 처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