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겨울은 엄청 추웠다.
기상관측 기록 38년 만의 양평 기론이 최저라고 할 때 우린 고입연합고사를 봤다.
당연히 인문계 합격을 하고 뺑뺑이 번호 14번으로 중대부고에 등록했다.
대방동 야구를 좀 하는 S 중에서 흑석동을 가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대방역까지 걸어서 111 세풍운수 버스를 타고 흑석동 언덕에 내려 학교 84번 종점까지 한참 걸었다.
버스 회수권 한 장 아끼려고 걸어서 흑석동에서 대방동을 가려고 중앙대 울타리를 따라 만주벌판을 지나 이화약국을 지날 때 동양공고양아치들을 만났다.
차고 있던 시티즌 시계 파커 만년필 회수권 9장을 빼앗겼다.
집에 늦게 도착한 장손자를 할아버지는 일본순사가 독립군 취조하듯 꼬치꼬치 물었다.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할아버지는 바로 대방동에서 흑석동으로 이사를 결행했다.
어차피 서울서 내 집 없이 전세살이 할거 손자 등하교 시간을 줄여 공부 시간확보하는 차원에서 이사였다.
처음 이사 간 곳은 연못시장 창녀촌 마지막집 옆이었다.
밤이면 여자의 괴성에 때론 화대 싸움으로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3개월 살고 이사를 했다.
다음 이사한 집은 중대 정문 앞 금광약국 약사 여동생집이었다.
지금은 중앙대학교에 편입된 곳인데 중대병원 주차장 담장을 따라 부여고 있던 자리 가는 중간쯤에 있었는데 집은 좋은데 이사한 다음날 연탄가스 중독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 3명이 중독되어 민간요법 동치미 한 사발씩 마시고 깨었으나 할아버지는 영리한 장손 뇌가 가스중독으로 손상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인집에게 병원비 내라고 하고 당시 용산에 있던 중대부속병원에 거금 들어가는 뇌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이상 없었다.
지금도 흑석동을 지날 때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가능한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