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 자체가 지원으로 간 조선인을 이용해 조선인을 토벌하는 곳인데 박민식 역사에 대해 무식을 폭로한 거냐 무조건 윤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언로플레이 하는 것인지 알 수없다.
6.25 직전에 국방장관 신성모는 개뿔도 준비는 안 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시면 평양에서 점심을 신의주에서 석식을 하겠다고 막말을 했다.
채병덕은 정보장교들이 북한군 침략 징후를 보고했음에도 6월 10일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했고 6월 24일에는 장교구락부에서 파티를 열어 군 상층부 인간들이 곤드레만드레가 되게 했다.
신성모 채병덕 두 놈은 이다음 통일이 되면 북한 비밀문서를 열람해 반드시 이적죄를 물어야 할 놈인데 백선엽은 채병덕장군 평전을 국방부 예산으로 만들게 한 자다.
민식이 니 이거 아니 무식한 놈이 장관이라고.
채병덕이 북한과 명태교역을 김석원 장군이 항의한 건으로 김석원 장군과 채병덕이 깊이 해직되었는데 채병덕은 몇 달 후 복직되고 김 장군은 민간인이 되었다.
김석원 장군은 친일파 비난은 받았지만 일본군 보병 대대장으로 실전에서 용맹을 떨친 분이다.
이 함문평 이 졸업한 서울 성남중고등학교를 설립했고 교훈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이다.
이 나라는 의로운 사람은 천대받고 불의한 놈들만 승승장구하는 나라다.
백선엽 자서전 초판에는 간도특설대 활동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니 재판에서 은근슬쩍 뺐다.
위 사진에 보이는 좌측 백서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지작 백서는 1980년 광주사태를 진압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태책의원회를 만들어 행정수반 최규하 대통령을 보필한다고 하면서 최규하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경 선생과 최규하는 가경은 학교라고는 가본 적이 없이 한문공부만 하였지만 정말 말이 통하는 유일한 벗이었다.
그해 8월 16일 하야하고 간 곳이 최규하의 고향 원주 운곡 원천석이 태종이 어린 학동 시절에 사서삼경을 가르친 변암이 있는 각림 사지 뒷산이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한 것을 소설화한 <의인> 12.12군사반란에서 8.16 하야까지 과정을 소설화한 <기미정란> 국보위의 100일간의 개혁을 그린 <백서>등을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각종 신문사 신춘문예 접수를 받는 곳은 다 보냈으나 비겁한 신문사들이 예선에 쓰레기통으로 보냈다.
그때는 분하고 뭐 이런 비겁한 문단이야 하고 투덜거렸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쓰레기통에 던진 분이 나에게 귀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위 <백서> 작품집이 5공이나 6공 시절에 발행되었다면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과 작가는 뼈도 못 추슬렀을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