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불행한 분이다.
마음에 없는 결혼 어머니 의사는 전혀 고려 없이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돈 하자고 해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나는 장손이라고 횡성에서 할아버지 소 99마리 중에서 몇 마리 팔아 초등학생 시절부터 유학을 해서 잘 몰 갔는데 바로 아래 여동생 말에 의하면 아버지에게 맞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도 맘에 없는 결혼을 하고 화풀이를 할아버지에게 못하고 어머니에게 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유당시절 낙원상가 근처에 보건사회부가 있을 때 정식 공무원이 아니고 임시직인 촉탁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관공서에서 완장 차고 위생검열 나왔다고 하면 완장찬 공무원이 사무관인지 주사인지 촉탁인지 확인도 못하고 봉투부터 주었다.
봉투를 한 바퀴 돌고 오면 돈을 정리해 보사부 장차관은 빼고 아래 공무원들을 직급별로 봉투에 담아 돌렸다고 한다. 원래 촉탁은 정식 공무원이 아니라 월급도 없었기에 기술적으로 잘하는 촉탁이 그 부서에서 이쁨 받는 촉탁이었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4.19 혁명으로 밥줄 끊어져 횡성에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어머니 안흥 여자를 만났으니 얼마나 불만 많은 결혼을 했을까 상상이 된다.
서울에 야리야리한 여자들과 술 마시다 촌 여자와 번개 결혼을 했다. 외할머니가 중풍 맞은 것을 아버지가 총각시절에 고쳐주었으니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사위가 된다면 얼마마나 좋았을까?
사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데 전혀 두 분 의사는 고려 없는 결혼이었다.
요즘 여자들은 이해 못 할 일이지만 그 시절은 그랬다. 한 번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때리기도 하고 맘에 없으면 이혼을 하거나 도망을 갔어야지 왜 그렇게 사셨냐고 물었더니 장손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혼하거나 도망가면 약하디 약한 나에게 계모가 와서 구박하거나 때리면 죽을까 봐 이혼도 못하고 도망도 못 가신 거라고 했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편히 사실까 했는데 치매가 왔다.
어떤 때는 장남을 알아보시고 우시거나 손을 꼭 잡으신다. 정신이 나가면 누구세요 하신다.
2023년 1월에 종이책을 발행하고 어머니 계신 원주요양병원을 방문했다.
아들이 쓴 책이라고 드리니 눈물을 흘리셨다.
지난번에는 아들을 보고 누구세요? 하던 어머니가 오늘은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문평이에요. 자주 못 와 죄송해요 했더니 손을 꽉 잡으셨다.
나도 말없이 어머니 손만 잡고 묵묵히 있었다.
군대처럼 정확한 요양원 식사시간이라 어머니 식사하는 동안 나도 1층 식당서 밥을 먹고 올라갔다.
요양원 간호사가 어머니 식사나 다 하거든 나가시지 어머니가 밥을 받아 놓고 통곡을 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식사를 부탁해 어머니 식사하는 동안 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들 책 <백서>를 보시는 어먼위 장면은 1월 10일 책이 발행되어 그 주 일요일에 면회를 했다. 정신이 돌아온 상태라 아들이 책을 쓴 것을 기뻐하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자주 찾아봬야 했었는데 봄이 지나고 장마철에 어머니는 요양원과 원주의료원 중환자실을 왕복했다.
중환자실은 친족 면회도 하루에 한 집 3남 2녀가 요일을 정해 돌아가면서 면회를 하다 8월 15일 광복절에 돌아가셨다.
혹시라도 이글 독자분 중에 부모님이 치매인 분은 정말 경험담인데 면회 자주 하는 것이 돌아가신 후 후회 덜 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