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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늦깍이 신입사원의 '오늘을 사는 얘기'

영화감독 준비하다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작가의 근황.

by 심심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빠른 세상 변화에 대한 겁. 이것이 올해 자주 느낀 감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에스토니아로 열흘 가까운 시간을 출장 다녀왔어요. 제가 쓴 글로 찍는 광고 촬영에 따라갔다왔어요. 영화 연출부는 많이 해봤지만 광고현장은 첨이고 외국 출장도 첨이고... 인스타그램도 끄적끄적 해보다가 떠오르는 상념은 많고 감정이 다 해갈되지 않아 오랜만에 몇자 끄적여봅니다.


상업영화 준비 하다가 영화가 밀리고 광고 프로덕션으로 넘어 온지 벌써 7개월이 넘어갑니다. 스토리작가(명함은 자진해서 Creative Writer라고 팠어요. 광고시장에 썩 어울리는 작명센스라고 자찬하며)라고 쓰고 글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회사에서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혼란스러워하던 6개월이 지나고 이제는 적응?이라기 보다는, 흔들리는 이 삶에 조금이나마 익숙해 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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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사회생활 한참 선배인 사내 피디님이 어느날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직장 생활 1년차 땐 1년 내내 흔들린다고. 다른사람처럼 안 살고 싶어 아등바등 하는 제게도 그 말은 꽤나 위안이 되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직장인으로 사는 것에 안주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알 수 있죠? 무언가 나에대해 규정지어지는 것에 겁이 참 많다는 저라는 어쩔 수 없는 캐릭터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를 차버린 스파이>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봤어요. 구남친이 스파이라는 걸 알게되고 구남친의 유언인 미션을 수행하러 유럽으로 떠나는 LA에서 캐셔로 일하던 여자 (그 여자는 밀라쿠니스라는 게 함정ㅋㅋ)이야기에요. Uber 운전 기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주말에는 디제이로 활약하고 욜로족?으로 짐작되는 젊은 운전기사였는데 그가 밀라쿠니스와 그녀의 절친의 도주를 돕게되죠. 이렇게 말해서 주요 에피소드처럼 오해받을 수 있지만 3분 남짓한 매우 짧은 씬이에요. 별거 아닌 디테일일 수 있지만 이런 디테일이 '이건 오늘을 사는 이야기다!'라고 느끼게 해주더라구요.


스크린샷 2019-11-19 오전 6.22.51.png 출처 : 넷플릭스 <나를 차버린 스파이>


그러고 보니 요즘 제가 재밌게 느낀 콘텐츠들은 대체로 '오늘을 사는 이야기'더라구요.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오늘들을 담고있는 이야기. 따라서 쉽게 휘발 될 얘기일 순 있어요. 하지만 이 순간을 사는 내게, 약간의 안도와 공감, 유머를 선사하는 이야기들. 제가 근래 재미를 느낀 이야기를 되새겨보면 이렇습니다.


- 넷플릭스 드라마 <GIRLS>

- 노아 바움백 감독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 2011년작이라 좀 철지났다 생각할 수 있지만 <프렌즈위드베네핏>

- 넷플릭스 드라마 <코민스키 메소드>

- 어제 본 <나를 차버린 스파이>


긴 시간 비행후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변하는 대중들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한 상품을, 때때로는 집단 무의식 변화를 뽐뿌질하는 새로운 상품을 발 빠르게 알리는 광고 일을 하는 게 어쩌면 '오늘을 사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나와 전혀 쌩뚱맞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때요.


29살 꽃다운 나이에 감독 제안을 받고 어깨에 뽕이 들어갔던 걸까요? 내심 큰 기대 없던 제 삶에 제 스스로 기대라는 상상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에 잘못된 양분을 꽤나 오래 주고 지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브런치든 짧은 스토리든, 긴 영화 스토리든 멈추지 않고 쓰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글을 써야 작가지. 작가라고 말한다고 작가가 아니라는 걸 이제라도 알아챈 저 자신을 칭찬해 줄래요. 제 얘기는 진부하기 짝이없지만 앞으로도 기-승-전-자기반성 혹은 기-승-전-새로운 다짐일 예정이에요. 잘못된 초등 일기교육의 폐해라고 치부해두자구요. (얼마나 자주 브런치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써야 작가라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을 사는 글을 좀 더 자주 써낼 내 자신에 대한 기대를 또 한번 속는 샘 치며 걸어보며! 이 글을 마무리 할게요.


오흐브아.

2019년 11월 1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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