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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이 내 안에

[생각정리] 4월14일 소나기가 오는 새벽

by 심심

사람들을 만나면 푸념을 늘어놓기 일수였다. 나쁜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것 같아 그만해야지 생각했다.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국왔을 때 강연 녹화방송을 보게되었다. 사는 게 무엇인지, 잘 죽는 것 어떤 건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진행되는 강연이었다. 내 관심사이기도 했기에 유심히 봤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잘 사는 것에 대해 타인의 소리에 귀기울이기 전에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길했다. 표현은 이렇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몹시 공감가는 내용이고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더불어사는 세상에서 타인의 영향과 진짜 나를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그와 유사한 생각을 자주하면서도 괜히 딴지를 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오늘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는 걸 알지만 그 안에서의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한다.


어쩌다보니 요며칠은 조금 알찬 나날들이었다. 어젠 아는 언니가 글을 쓴 연극을 보러갔다. 기대 이상으로 연극이 좋았다. 비극이었지만 극 중 가장 밝은 부분에서 감정이 복받쳤다. 한국사람, 과거를 지낸 부모와 현재를 사는 우리가 충돌하는 지점을 잘 보여주는 연극이었다. 교내 공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극이 올려지면 좋겠다. 그런데 이게 참 재밌는 게 내가 쓰는 글이나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희망적인 마음이 잘 안샘솟는데 반해 언니의 작품은 명백히 좋기에, 명백히 좋다는 확신이 들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기회가 분명 있을 것 같다.


4년 전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언니가 해준 이야기가 내가 글을 쓰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어제 공연 이후 잠깐 나눈 대화에서도 언니는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야기를 쓰는 방법론적인 지점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부분까지. 물론 언니도 나름의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나보다 훨씬 견고하고 건강해보였다. 건강한 예술가라니.


오늘은 즉흥적으로 입금해버리면서 시작된 뜨개질 첫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루만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급한 성미가 여념없이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그래도 시간이 흘렀고 수업은 끝이 났다.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겠지.


저녁에 친구를 잠깐 만나고 집에와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깼다. 읽다 만 채근담을 들어 읽기시작했다. 베르나르베르베르 강연을 볼 때 부터 시작된 고민과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요즘 내가 자주하는 말이 "왜이렇게 사는게 멋이 없지?" 였다. 그리고 어제 연극을 보면서도 그외에도 일상에서 잦은 빈도로 내 삶이 구질구질해질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또 지금 현재가 구질구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채근담 '수신과 성찰' 부분을 읽던 중이었는데, 조금씩 마음이 노곤노곤 연해지다가 아래 페이지를 읽던 중에 앗차. 했다.


"사치에는 한도가 없으니 사치하려고 들면 아무리 부자라도 밤낮이 모자랄 것이다. 검소한 사람이 가난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겠는가. 능란한 사람은 애써 일하고도 원망을 한몸에 모은다. 서투른 탓에 한가로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겠는가. 위만 쳐다보고 살면 마음 족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한 가지만 어긋나면 백 가지 공이 모두 원망으로 바뀌는 법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앗차했던 기분을 잘 복귀하고 싶은데 논리적으로 잘 풀기가 어렵네... 음. 정확한 인과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멋에 대해 생각해게 되었다. '멋이라는 게 결국 내 안에 있는 거구나. 빛이라는 것도 결국 내 안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몇시간 전에 바꾼 카카오톡 대화명을 다시 바꿨다. 부끄럽지만 몇시간 전 대화명은 <불씨 지키기>였다. 이것은 세상을 혼란하게 보고 내 불씨를 지켜야지하는 건방진 마음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바꾼 것. 다시 바꾼 건 <밝은마음>. 참 스스로가 간사하고 또 오글거리지만 내 안의 밝은마음을 지녀야겠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쓰다보니 위선이 아닌가 한번 더 의심해봤지만 정말로 이런 교과서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살고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잘 죽는 것에 대해서도 '내가 죽을 때 뭔가 의미있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근래 했다. 그러면서 '어떤게 의미있는 걸까?' 하고 자주 반문했는데 답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그 '의미'를 자꾸 외부에서 찾고있었다.


사실 오늘이 지나고 또 매일을 살다보면 얼마나 빨리 다시 외부에서 의미를 찾고 있을지 내모습이 안봐도 비디오 같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삶은 내가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의미도 내 안에, 내 안에서!


너무 고무적인 일기라 좀 간지럽지만 이 좋은 기분을 품에 안고 다시 잠이 잠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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