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에게 돈을 빌렸다. 끝까지 미루고 하기싫었던 일이지만 꼭 필요했기에 그렇게 했다. 전과 달라진 점은 그 말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나는 무거워지지 않았다. "안그래도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돈을 좀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어. 보내줄게." 기꺼이 빌려준다는 엄마에게 나는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한테 지금 돈 빌리는 게 부끄럽지 않아. 왜냐면 좋은 미래를 준비과정에서 벌어진 일, 그 일을 수습하는 데 있어 도움이 필요한데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그저 고맙거든."
엄마가 내 걱정을 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엄마에게 심어준 내 발언에 대해 엄마는 답했다. "걱정 안해. 너 잘 될거니까.(웃음)" 통화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어제 엄마가 다시 전화가 왔다. 부쳐주기로 했던 돈 중의 절반을 아직 못 부쳤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전화를 준 것이다. 엄마의 사려깊음♥ 아주 급하지는 않아 문제 없었다. 그와중에 엄마가 나를 걱정할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또 말을 많이하기 시작했다.
"엄마, 슬픔 안에도 항상 기쁨이 있더라? 나 5년 전이랑은 많이 달라. 이젠 찰나의 기쁨을, 감사한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고 아까워~" 그러자 엄마는 "안그래도 아빠가 네가 좀 달라졌다고하더라." "아! 아빠도 5년 전 내가 잔뜩 기죽어있는 모습을 대구 상영 때 본 적이 있잖아. 그 때의 모습과 다르단 말이겠구나." "그래 그 때, 네모습이 아빠에게 얼마나 가관이었겠니~(웃음) 너가 엄청 빨리 자라. 볼 때마다 쑥쑥 커있어서... 엄만 혹시 다음에 만날 때 내가 너의 대화를 못 따라가면 어쩌지 하는 겁이 나~"라고 말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엄마의 고민고백에 놀라 "엄마 딸이 성장속도가 빠르긴 해? ... 다 엄마아빠 유전자 덕분이야.하하." 최근 웨이트하면서 근력이 빠른 속도로 향상한 것, 학창시절 친구가 해준 이야기까지 떠벌려가며 어찌저찌 엄마아빠의 유전자 덕분이라는 말로 내 성장속도는 엄마아빠를 닮은 것이기에 내 성장속도에 엄마아빠가 못 따라갈 걱정할 필요없다는 결론을 엄마 스스로 도출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뭐, 내 의도대로 엄마가 걱정을 내려놓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전화를 끊고 엄마의 걱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엄마는 죽을 때까지 엄마이고싶어한다. 그 의지를 꺾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 딸이 잘났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엄마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란 꼭 엄마가 아니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싶은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일 것이다. 엄마한테 이렇게 대답해줬으면 어땠을까? "나도 그래~ 엄마." 하고 말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엄마에게 언제나 쉽게 말할줄 아는 딸이 되어야겠다고.
엄마는 내가 쓴 글과 이야기를 제일 처음 봐준 독자이자, 그것에 대한 첫 감상평을 남겨준 사람이다.
"큰 딸, 글은 언제나 따뜻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던 중학생 내 방에 들어와 바닥을 닦아주다가 우연히 엄마는 던져놓은 내 글을 읽게되었고,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는 와중에 멈춰 한참을 읽어보더니 저와 같은 말을 했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 말이 씨앗이 되어, 그 씨앗에 물을 주다보니 내가 지금까지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임을. 그 이후에도 나는 엄마한테 내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했다. 대학을 오고나서도 나는 힘든 상황에는 엄마한테 말을 잘 못하고, 그 힘든 일을 다 이겨낸 이후에 후일담 형식으로 내가 겪은 상황과 함께 내가 그 상황을 겪으며 느낀 감정들을 엄마와 공유했다. 지나고보니 그것들이 쌓여 지금 이야기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음을 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내 이야기의 1번 청자이자, 신뢰하는 청자다. 따라서 내가 글밥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떠드는 이야기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실은 내가 엄마를 무지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사이의 교감이 끊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엄만 내 이야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에 내가 그것이 더 싫다. 엄마의 걱정이 걱정에서 그칠 수 있도록, 말을 쉽게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