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죽음, 그 애도일기00 - 늦은(?) 연애(?) 성장기
올 3월에 멋진 썸을 탔다.
올 4월에 고백을 했고
올 5월은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6월에서야 관계를 정리했다.
그 후, 현재 사춘기스러운 감정의 요동을 겪고있지만... 그렇다고... 친구, 아는 사람, 같은 직군의 팔로워도 많은 인스타그램에 자칫 내 이야기를 하고 후회할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브런치를 켰다. 내 직업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스물한살부터 영화관 알바를 했고, 스물넷부터 상업영화 연출부 일을 해왔기에 업무능력이나, 업무철학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잘 다져오고 잘 커왔다고 평가한다. 반면... 몇년 전에 알았다. '일만'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을.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한 없이 경험이 적고 부족하다.
이십대와 삼십대 초반, 내겐 일과 돈이 제일 중요했다. 정황상 내 스스로 자립해야했고, 성향상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의 자유'를 만드는 일이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실은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일이 너무~~ 재밌었다.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대 내내 친구보다 일이 좋았다. 거기에 집중했다. 다행히 3-4년 전쯤 알았다. 인간 관계에 대해 그간 다소 무심했기에. 관계에 있어 마음 아팠던 쓰라린 경험도 없고, 동시에 미친듯이 즐거웠던 경험도 적었다는 걸. 결론적으로, 그것이 삼십대가 된 후에도 관계에 있어 굉장히 미숙한 인간으로 귀결되는 파국을 낳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중요하게 깨달은 점은, 결국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오래된 친구들은 다- 내 노력이 아니라 내 친구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과거에 일이 바쁠 때, 1-2년도 쉬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친구였다. 나쁜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지하고 존재 자체로 예뻐해준 친구들이 지금까지 유지된 관계들이라는 걸 3-4년 전쯤부터 알아챘다. 알고 나니 고마웠다. 그 후로는 친구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더 애틋하고. 친구들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보다 더 미숙한 영역은 '연애'였다. 그간 내가 연애를 안 한 것은 아니다. (21살 첫 연애 이후로 횟수로 4-5회, 기간으로 1년반-2년) 남들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진심 다해 연애한 것은 딱 1번, 바로 1년 전에 끝난, 직전의 연애라는 사실을 서른다섯 먹고서 최근에야 깨달았다.
결국 타인의 기준(?)에 따르면, 남들 20대 때 다 겪는다던 그런 사랑의 열병을 연애 때도 안 겪어본 그것을 서른다섯 먹고서 최근의 썸과 이별의 과정에서야 겪었다. 일하는 나의 직업 자아 성숙도와 굉장한 괴리를 보이는 내 관계 자아 성숙도를, 그 미숙함을 지켜보며 요 근래 나는 내 스스로에게 아주 가슴 깊-이 당황했고, 실망했다.
서른다섯 먹고 발견한 나의 미숙함이기에 그 미숙함을 어디 쉽게 꺼내보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내일부터 여기 브런치에 매일 꺼내보이려고 한다. (멋진) 썸과, (처음해본) 낯선 고백과 (보류로 알았던) 애매한 거절과, 그리고 (미친) 후폭풍을. 내가 느낀 화와 서운함은 무엇을 향한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그 요상한 감정들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실은 어제 관계를 끊어내고 관계의 죽음을 맞이했기에 이제 시작이다. 애도의 시작.
관계의 죽음.
오늘부터 애도1일.
사람이 죽고나면 절에서는 사십구(49)재를 지낸다. 이 개념을 가져와 나는 내게 소중했던 관계의 죽음에 대한 애도일기를 매일매일 쓸 것이다. 그렇게 49일째 되는 날, 관계에 영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그 영혼을 구천으로 떠나 보내주려고 한다. 시작은 같이했지만 죽음은 원래 혼자하는 것. 나만의 사십구재를 치룰 것이다. 기뻤고, 또 슬펐고, 또 반짝였고, 가여웠던 나의 한 시절에 대한 가슴 깊은 애도를 위해. 또 예상치 못할 그 다음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