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죽음, 그 애도일기 07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부엌에 놓아둔 감자가 보였다. '저거 저렇게 두면 금새 싹이날텐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제 보령 농협에서 가져온 야들야들한 부추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어제 갑작스럽게 잡힌 목요일 이후 제주 스케줄이 생각이 나며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들의 생사에 대해 걱정한다. 후루룹짭짭 느타리버섯과 당근을 썰어 넣고 소금 밑간과 올리브유를 두른 밥을 안친다. 따뜻한 물에 다시마물을 내어 계란2개와 함께 쉐낏쉐낏. 파를 총총 썰어 국간장과 참기름을 휙- 둘러 전자렌지에 넣는다. 이것은 계란찜. 감자 하나를 강판에 갈아 물을 쪽 짜내고 달궈진 후라이팬에 부쳐낸다. 옆에 빈자리에 밥에 넣고 남은 당근을 채 썰어 기름에 같이 굽는다. 띠띠띠. 어느새 완성된 계란찜을 먼저 전자렌지에서 꺼내고, 감자전을 뒤집고, 짜투리시간을 활용해서 부추를 썰어 고추가루,다진마늘,참기름,매실청,진간장을 넣고 쪼물쪼물 손으로 무쳐낸다. 왠지 모르게 지방 야채들은 서울 야채보다 향긋하다. 향긋한 부추향에 취해있을 때쯤 감자전이 완성되었다. 얼마 전에 사둔 실고추를 뿌려서 기분을 내고 접시에 감자전과 부추겉절이를 각각 담아낸다. 띠-이- 타이밍 좋게 전기밥솥 밥이 완성되었다. 후루룩짭짭. 정성어리지만 매뉴얼없는 엉망진창 내 아침이 완성되었다.
밥을 한숟갈 뜨며 오늘 해야할 일들을 떠올리다가 요물요물 씹던 중에 어제 엄마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스물셋에 시집와서 그해 나를 낳은 엄마는 나의 절친이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그에 대해서 이미 익히들어 알고 있다. 게다가 자기 배로 낳은 내가 어떤 성격의 인간인지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다. 며칠 전 보령에 다녀온 이야기, 쓰고 있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중 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엄마는 살아보니까 일과 남자는 함께 올 때가 많은데 둘 다 잡기는 힘들다는 삶의 지혜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더니 어느새 주치의마냥 내 현 상태를 진단했다.
"너가 네 생각이 완전히 정리되기도 전에 말이 앞서서 그런 걸거야. 인연의 끈이라는 게 너가 그렇게 무 자르듯 자른다고 잘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네가 잘했다고 봐. 다만, 너 스스로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채 말부터 뱉고봤으니 말에 따르는 책임을, 그 무게를 네가 느끼고 있는 거지."
맞다, 말을 무게와 책임.
"나쁜 말일수록 곱씹고 고민하고 감정이 정리된 후 해야한다는 걸 네가 배우고 있는 거지. 큰 딸은 나쁜 말이나 거절의 말을 잘 하던 사람이 아니니까 안해보던 일을 해보면서 그걸 배우고 있네. 이번 선택은 지나봐야 알겠지만 네가 맞을 거야. 네가 직감이 발달했잖아?ㅎㅎ 본능이 알려준 답일거야."
엄마는 참 신기한 사람이다. 친구들에게 그의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운데 나의 현 상태를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에 대해 비난부터 듣기 십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몇번 얘기를 꺼내봤다가 그 후로는 그래서 입을 꾹 다물었다. 반면 엄마는 자기 딸이지만 굉장히 균형있는 시선에, 나에 대한 이해를 더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준다. 엄마의 대화법엔 중심이 그에게 있지 않고 내게 있다. 동시에 나에 대해서도 비난보다는 기존에 엄마가 알고 있던 내 성향. 그에 비춰 바라본 지금 내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이 내게 어떤 배움을 주고 있는지 설명한다.
나는 평소 사람들에게 기대를 사는 것도 조심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기대를 산다는 건 언젠가 그 감정이 돌아서면 미움이나 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누구와 친해지고 마음을 사는 일에는 사려깊고 섬세해야한다 생각했고, 늘상 조심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이건 나만의 발상법이 아니라 우리 엄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엄마는 늘상 말했다. 좋은 말일지라도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혹여나 상대가 내게 예상치 못한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했다면 내게도 책임이 있는 거라고.
예전에는 '뭘 얼마나 조심하고 살라는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은 엄마의 그 사고회로가 이미 내게 체화되어있었고, 이제는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알 것도 같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말에는 무게가 있고 책임이 따른다. 특히 '선택'이 담긴 말은 그 선택의 반대상황,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내포되어있다. 따라서 말을 한다는 것은 보기엔 참 쉬워보이지만, 실상은 리스크를 내포하고있다. 결국 말을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감내하는 용기가 필요한 행위인 것이다.
K-장녀로 자랐고, 프로젝트마다 작가 아니면 감독이라는 직함으로 매번 책임지는 삶을 살아왔기에 책임감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건만 서른다섯에 또 새로운 책임에 대해 배운다. 말에 따른 책임. 이걸 내가 아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또 매순간 결정하는 상황에서 내 결정에 대한 책임에 대해, 내 지위가 주는 권력과 그에 따른 책임과 무게에 대해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니까. 실은 자주 통감하니까.
한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가벼이여긴 인간관계와 남녀관계조차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 (여기서 가벼이라함은 일과 달리 생존에 있어 필수가 아니라 좋으려고, 즐거우려고 맺는 관계들에 있어 좋으면,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다.) 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나 또한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떤 관계든 가벼울 수 없다.
게다가 삶에서 진정한 기쁨과 보람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일이 즐거운 이유에 일 그자체도 있지만 여러사람이 섞여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가 크지 않은가!
애도일기를 쓰며 의외로 나에대해 알게된 점이 워크 앤 라이프가 올인원인 삶을 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사적 인간관계와 일에서 만나는 관계를, 남녀관계와 인간관계를 정확한 기준없이 감으로 분리하며 살았다는 사실. 하지만 이 모든 게 결국 내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말은 이 모든 것이 유기체처럼 내 삶을 구성하고,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것. 따라서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매순간, 모든 관계에 있어 내 행실과 발언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싶다. 타인의 행실과 발언에 대해 생각하기 앞서 내가 자동반사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조차 사소한 선택부터 무게있는 선택까지 다양한 선택과 책임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해야겠다.
이렇게 또 한뼘 성장해간다. 배움과 성장엔 끝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