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에 대하여

그녀의 b컷 시선은, 그녀의 목소리다.

by 로이아빠

어렸을 적 나에게 가장 큰 친구는 책이었다. 하지만 딱히 책을 그리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니 늘 책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에서 국어국문과가 썩 잘 맞는 것 같다. 수업 듣는 게 재밌고 어려운 과제를 하면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손에 잡혔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작가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회는 작가와의 만남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몇몇 작가들과의 만남은 즐거움과 동시에 질투가 났다.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그들의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면에 있는 글임에도 나에게 말을 거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해 주는 이야기에 난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 손에 잡히는 행복을 나만의 목소리로 얘기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글은 재미가 없었다. 나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내 머릿속에서 떠돌았던 생각들이 내 손끝으로 펼쳐진 순간 빛을 잃었다. 마치 바닷가에 있던 조약돌을 집에 가져왔을 때처럼 윤기를 잃었다. 그러던 중 성우를 준비하는 형이 나에게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유명 작가들의 글은 소리 내서 읽을 때 어색함이 없어.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누가 내 뒤통수를 후려 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장 나의 글을 소리 내서 읽어 보았다. 어색하고 끊어지고 자연스럽지 않았다. 억지스러웠고, 옹졸했고, 나 밖에 모르는 글이었다. 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 생각을 모를 거라 생각했다. 나만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독자를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잘나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진리라도 발견한 양 떠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브런치에서 'b컷 시선'이라는 책을 출간한 청민이라는 작가가 부러웠다. 청민이라는 작가가 쓴 글 밑에 달린 댓글이 부러웠다. 속으로는 '별거 아냐'라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더 잘 써'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발견한 그녀의 책을 집으로 가져왔다. 책을 펼친 이후 나는 책만 읽었다. 그녀가 해 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의 마음은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었고 그녀와 대화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글을 읽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녀의 글은 오직 그녀만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솔직함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기만하지 않고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담담하게 자신이 느끼는 것을 풀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친구가 해 준 이야기를 듣듯이 공감했다. '아 그래?, 정말?, 맞아 나도 그랬어.' 그녀의 글 앞에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가 글 앞에서 솔직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가 있는데 처음, 그 친구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았던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너무 매력적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를테면, 소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쉬어가지만 정작 그는 사시사철 서 있었다. 그 소나무가 너무 좋았고 때로는 소나무가 내게 기대었으면 했다. 소나무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다가가고 싶었다. 그때 했던 나의 고백, 나의 행동은 지금도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친구에게 전달했던 나를 글 속에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내려놓고 솔직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에게 중요한 얘기를 해 주고 대화해준 청민에게 고맙다. 그리고 늘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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