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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pr 27. 2021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다

#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


산업화가 시작된 18세기부터, '인구 증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1, 2차 세계대전과 같이 인구를 대폭 감소시키는 사건을 겪었음에도, 지구인은 꾸준히 늘어왔다. 아래 그림은 지난 1만년간의 지구인 숫자를 보여준다.


Our World in Data 참고


기원전 1만년, 지구에는 4백만명이 살았다. 1만년이 지난 후 이 숫자는 2억명으로 늘었다. 만년동안 50배 정도 늘었다. 이게 1700년에는 6억명이 됐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구 증가 속도는 엄청 빨라졌다. 1700년에 6억명이던 지구인은, 2019년에 77억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했다. 300년만에 12배가 늘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영양분'과 '더 나은 의료' 그리고 '더 나은 생활환경'을 선물했다. 역사는 이를 '진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진보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UN는 2050년에는 지구에 100억명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는 예외다. 인류는 증가하겠지만, 한반도 거주민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이다. 2020년 우리나라 인구는 2019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아래 표는 우리나라 인구 추이다.

대한민국 통계청


주민등록인구는 2019년 5,184만명에서 2020년 5,182만명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에 우리나라에서 사망한 사람은 30만명이고, 태어난 사람은 27만명이다. 죽은 사람이 태어난 사람보다 3만명 많다. 이민 등의 외부적 요인이 없다면, 인구는 당연히 감소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만 많아서 먹고 살기 힘들다. 차라리 사람이 줄어서 경쟁이 줄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겠느냐고.




# 글쎄, 더 나아질까?


물론 사람이 줄면 경쟁이 덜 치열해질 수 있다. 다만, 그건 제한된 가정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 가정은 바로 '인구가 줄었음에도, 파이의 크기는 줄지 않는다'는 거다.

가령, 내가 치킨 판매한다고 치자. 인구 감소로 경쟁 자영업자가 줄면, 내 치킨을 사먹는 사람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치킨 소비자의 수가 과거와 동일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만약 인구 감소에 따라 치킨 소비자도 줄어들면? 파이가 줄어드니, 경쟁이 완화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치킨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병원을 가는 사람도, 변호사를 찾는 사람도, 치킨을 먹는 사람도, 집을 사는 사람도, 다 줄어든다. 내수시장이 쪼그라든다.

내수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매출이 줄어들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고용이 줄어든다. 고용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한다. 소비가 감소하면, 내수 기업의 매출은 또다시 줄어든다. 악순환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삼성전자처럼,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혁신적인 수출기업'을 육성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힘입어 성장했고, 앞으로도 수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그게 살 길이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수출의 전제조건인 '뛰어난 혁신'은 '사람 수'와 무관하지 않다. 똑똑한 사람이 많아야 하고, 이들이 자신의 똑똑함을 잘 발휘할 수 있어야만, 혁신 경쟁에서 치고나갈 수 있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인구가 많을수록 똑똑한 사람이 많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인구가 많을수록 개인의 똑똑함이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왜냐하면 똑똑함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 그게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 더 크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은 사회에는 더 많은 돈이 있고, 따라서 같은 수준의 혁신이어도 더 큰 보상이 주어진다.




미국 내수시장은 우리나라의 20배가 넘는다. '테슬라'가 우리나라에 상장했다면, 저 정도의 자본을 못 끌어모은다. 똑같은 자율차여도, 5천만명에게 판매하는 회사가 3억명에게 판매하는 회사의 시장가치는 당연히 다르다. 미국의 혁신이 더 큰 보상을 받는건 당연하다.


그러니 미국은 전세계의 뛰어난 젊은이들은 흡수한다. 똑똑함과 패기를 갖추고, 통크게 놀아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종착지로 꼽는다. 똑똑함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미국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똑똑함이 더 잘 발휘된다. 이렇게 되면 경제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똑똑함에 대한 보상도 더 커지게 되고, 따라서 똑똑함을 더 끌어당길 수 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다.


인구는 '혁신'에도 중요한 요소다.


인구가 감소하면, 사회보장제도의 안정적인 유지도 어렵다. 연금을 예로 들자면, 내 주위의 2030 세대는 연금을 수령 가능성을 잘 안 믿는다. 내가 노인이 될 2060~70년에는, 미래 세대가 달달이 세금을 내줘야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달달이 세금을 내줘야 할 미래 세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든다면? 100명이 내줄거라고 생각하고 연금 제도를 설계했는데, 몇십년 뒤에 보니 내줄 사람이 50명 밖에 없다면? 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보험 등 '세금'이 필요한 수많은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마주할 확률이 높다.


인구 감소는 득보다 실이 크다. 중국, 미국의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적었다면, 지금의 중국, 미국은 없다. 인구는 그 나라의 장기적인 경쟁력과 영향력,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소다. 인구가 많다고 경쟁력과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인구가 적으면 경쟁력과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이민에 관대하지도 않고, 미국처럼 외국인들이 이민을 오려는 나라도 아니다. 결국 핵심은 아이가 얼마나 태어나느냐인데, 2020년 한국의 출생률은 0.84명으로 전세계 꼴지다. 이게 단기간에 전환될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동거, 혼외 출산에 대한 눈초리가 심하다. 결혼이 육아의 선결조건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한다. 2020년 혼인건수는 21만건으로 2012년에는 32만건이나 됐다. 그렇지만 2012년 이후 9년 연속으로 감소했다.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고, 하고 싶어도 잘 못한다.


결혼 하기전에 끝내야 할 숙제가 많고, 어렵다. 국책연구기관인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2020년 결혼을 망설인 이유를 조사했다. 응답자 중 과반 이상이 '결혼 비용' 때문에 망설인다고 답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 살만한 집이 필요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도 문제다. 어쨌든 아이가 태어나면 사회에서 큰 어려움 겪지않고 살았으면 하는게 부모 마음이다. 그렇지만 아이 한명을 그렇게 만드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지식 경제 사회에서 아이의 미래 임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를 뽑으라면 결국 '교육'이다. 남들보다  나은 교육을 시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수능 시험장은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 싸움이라는 갑옷을 입은 아이들의 싸움이다. 좋은 갑옷, 좋은 능력을 가진 아이는 앞서 간다. 능력은 조금 떨어져도 갑옷이 좋은 아이는 어느 정도 묻어갈  있다. 갑옷도 없고, 능력도 없다면? ..



적나라한 통계가 있다. 지난 '18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들의  일자리 임금 수준이 높다. 부모의 소득이 으면서, 서울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임금 수준이 가장 높다. 이들은 같은 서울권 대학을 나왔어도, 부모의 소득이 낮은 집단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 더 집중적으로 준비하기가 쉬워서였을 거다. 변호사시험 준비를 1년간 했다고 해도, 낮에는 알바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던 준비생과, 돈 걱정없이 마음껏 공부한 준비생간의 아웃풋에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2030 세대는 아이를 잘 키우려면 많은 게 필요한 걸 잘 안다. 그러니 겁이 난다. 결혼도 어렵고, 육아는 더더욱 어렵다.




# 이거 근데 제일 시급한  아닐까?

분명 내 주위에는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비혼이 대세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아래의 통계청 자료를 보면 여전히 남성, 여성의 50% 내외가 결혼을 원한다. 이러한 욕망이 사회적으로 발현되지 않는 건,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일 거다.



이 문제를 기업이, 관료 집단이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정치밖에 없다. 정치의 영역이 민주주의와 독재,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균형,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대립같은 거대 담론을 다루는건 물론 필수불가결하다. 그렇지만, 결혼, 직장, 거주, 육아휴직 같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실, 이런 사소해보이는 문제가 국가의 장기적인 존속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그게 과연 언제까지 유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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