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도 직장인이다? -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24세 때는 세 차례 연속으로 낙방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늙은 종이 자신을 달리 부를 호칭이 없어 '이 서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황은 과거 준비에 적극적으로 매진하여 28세에 진사시를 합격하고 마침내 34세에 문과에 최종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끊임없는 관직 출사와 사임의 반복은 당대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황이 사임을 요청할 때 마다 임금은 더 높은 직책을 주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에 다른 신하들 사이에서는 그가 사퇴를 빌미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이황 스스로도 세간에 그런 비판 이 많은 점을 알고 있었다.
이황은 관직에 등용된 이후에도 틈만 나면 공부했다. 뛰어난 젊은 인재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인 사가독서인으로 선발되었을 때는 말 그대로 독서만 했다.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하는 그의 자세에 대해 독서당 관리들이 칭송할 정도였다.
이황은 예비 은퇴인이었다. 언제든지 관직을 그만두어도 고향에 세운 도산서당에 내려가 교육을 할 수도 있었고 왕성한 저작활동을 할수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평소에 투자한 자기계발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이황은 오히려 자신과 잘 맞지 않은 관직 생활을 이어가기보다 빠른 은퇴를 꿈꿨다.
후금이 명나라 정벌을 위한 군사를 일으키자 명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요청한다. 하지만 광해군은 원군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원군을 보낸 본심은 조선을 위함이 아니라 다음 전쟁터가 자기 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막 끝난 시점에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 추천된 인물이 바로 강홍립이었다.
강홍립은 황당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파견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의 병 때문에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자, 광해군은 친히 어의를 시켜 약을 지어 보낸다. 파견 명령을 세 번이나 사양했지만 임금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거절할 명분이 부족했다.
강홍립의 능통한 중국어 실력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예상하지 못한 길로 이끌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후금과의 전쟁에 파견되고 항복한 장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데다, 8년간 억류생활을 거쳐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병으로 죽은 것이다. 이 모든 시작은 중국어를 잘해서였다.
정도전은 단순히 지식이 많고 말을 잘해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다. 위화도회군, 폐가입 진론, 과전법 시행 등 결정적인 시점마다 상사가 필요로 하는 성과로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