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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ug 16. 2021

사표를 품은 월급쟁이, 퇴계 이황

정승도 직장인이다? -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 역사 + 자기계발


이황, 정도전, 유성룡, 역사에 관심 없어도 들어봤을 이름이다. 후세는 이들을 '위인'이라고 부른다. 나도 이들을 위인이라고 배웠다. 내 기억속의 그들은 범접이 불가능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조선 정부에서 일했던 '월급쟁이'였다.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기에 위인이 됐다. 같은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니, 그들과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다.


얼마 전 읽었던 <조선 직장인 열전>은 이들의 직장를 다룬다. 이황, 정도전, 유성룡, 황희, 맹사성, 조광조, 김육 등 조선 위인들이 정부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서술한다.



저자인 신동욱은 역사학자는 아니다. 대학 때 역사를 공부한 직장인이다. 그는 역사와 직장을 접목시켰다. 이 책은 역사책과 자기계발서,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게, 일화 중심으로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다. 깊이 있는 분석은 조금 미흡한 대신, 선배 직장인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


이 책에는 10명 정도의 위인이 등장한다. 나는 이황, 강홍립, 정도전의 일화를 다룬다.




# 사표를 마음속에 품은..


* 박스 안은 인용구


퇴계 이황을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분은 근엄하고, 천재적이고, 기계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인간적이다. 퇴계 이황은 장수생이었다.


24세 때는 세 차례 연속으로 낙방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늙은 종이 자신을 달리 부를 호칭이 없어 '이 서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황은 과거 준비에 적극적으로 매진하여 28세에 진사시를 합격하고 마침내 34세에 문과에 최종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소년급제와 고속 승진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의 삶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하긴 했는데, 시험 준비보다 책보고 고민하는걸 더 좋아했다. 그러니 시험은 잘 안 됐다. 장수생의 서글픔을 느꼈을 거다. 이 사람이 시험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다.


일을 시작하고, 사표도 엄청 썼다. 은퇴 전까지 80번 가까이 사표를 제출했다. 임금한테 일 안하기 싫다고 개긴거다. 부적응자 아닌가 싶을 정도다. 웃긴건, 그때마다 임금이 허락을 안했다. 오히려 그때마다, 더 좋은 직책을 줬다.


끊임없는 관직 출사와 사임의 반복은 당대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황이 사임을 요청할 때 마다 임금은 더 높은 직책을 주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에 다른 신하들 사이에서는 그가 사퇴를 빌미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이황 스스로도 세간에 그런 비판 이 많은 점을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안 좋게 본다. 나는 죽어라 일하는데, 쟤는 사표 쓴다. 그런데 승진하네? 이게 무슨.. 다른 사람들불공정하다고 느을 거다. 그래도 임금님의 이황 사랑은 계속됐다.


사직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야 가능하다. 저자는 이황의 '믿는 구석'은 바로 '실력'이라고 언급한다. 이황은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했다.


이황은 관직에 등용된 이후에도 틈만 나면 공부했다. 뛰어난 젊은 인재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인 사가독서인으로 선발되었을 때는 말 그대로 독서만 했다.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하는 그의 자세에 대해 독서당 관리들이 칭송할 정도였다.


렇게 연구하고 노력했기에, 성리학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을 거다. 지금으로 치면 회사 다니면서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 따고, 박사 학위 취득한 느낌이려나? 물론 회사일 완벽하게 끝내놓는걸 기본으로 하고 말이다. 이 정도 해야 '퇴계 이황'이라는 이름을 후대에 남기는구나 싶었다.


이황은 예비 은퇴인이었다. 언제든지 관직을 그만두어도 고향에 세운 도산서당에 내려가 교육을 할 수도 있었고 왕성한 저작활동을 할수도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평소에 투자한 자기계발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이황은 오히려 자신과 잘 맞지 않은 관직 생활을 이어가기보다 빠른 은퇴를 꿈꿨다.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황의 일화다. 나는 어떻게 살고있는가?




# 해도 안되는 경우


근데 열심히 살아빛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강홍립이 대표적이다. 이 분의 직장생활, 눈물난다.


후금이 명나라 정벌을 위한 군사를 일으키자 명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요청한다. 하지만 광해군은 원군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원군을 보낸 본심은 조선을 위함이 아니라 다음 전쟁터가 자기 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막 끝난 시점에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 추천된 인물이 바로 강홍립이었다.


'사지에 몰린다'라는 말이 있다. 강홍립의 상황다. 망해가는 명나라에 조선군을 이끌고 지원을 가야다. 고생길은 훤한데, 출구가 잘 안 보이는 길이다.


이 사람도 죽어라 공부했고, 관료가 됐다. 과거시험 합격했을 때, 온 집안의 잔치였을 거다. 와, 근데 죽게 뻔한 일을 맡게 됐다. '폐급'이라 맡게된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어학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강홍립은 황당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파견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의 병 때문에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자, 광해군은 친히 어의를 시켜 약을 지어 보낸다. 파견 명령을 세 번이나 사양했지만 임금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거절할 명분이 부족했다.

강홍립의 능통한 중국어 실력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예상하지 못한 길로 이끌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후금과의 전쟁에 파견되고 항복한 장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데다, 8년간 억류생활을 거쳐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병으로 죽은 것이다. 이 모든 시작은 중국어를 잘해서였다.


중국어 잘한다고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표로 파견을 보낸다. 뻐겨봐도 모두가 가라고 하니, 버틸 재간이 없다. 결국 명나라에 조선군을 이끌고 출정했고, 8년 후에 죽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은 꼬였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노력도, 맘대로 안되는 일이 많다.


앞으로 일할 날이 꽤 많이 남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할 때까지 하고, 나머지는 신에게 맡기자." 입사 준비 할때도 그렇게 했고,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 같은 보통의 인간은, 세상이라는 파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게 참 힘들다. 굳이 거스를 일이 있나? 파도를 잘 타는것만 해도 힘들다.




# 킹메이커


내 인생에 큰 전환이 없다면, 나는 지금 일을 꽤 오래 할 거다. 여기서 나는, 실무자,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길게 할 거다. 밖에서 보면 크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는, 그런 위치다.


하지만 실무자와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정도전을 보고 느꼈다.


정도전은 '혁명'까지는 생각 못했던 이성계를 꼬셔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게 했다. 그는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었고, 그를 통해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사회에 반영시켰다. 재상이 이끄는 나라, 조선을 만들었다.


정도전은 단순히 지식이 많고 말을 잘해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다. 위화도회군, 폐가입 진론, 과전법 시행 등 결정적인 시점마다 상사가 필요로 하는 성과로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이성계가 필요로 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위화도회군, 과전법은 이성계가 채택한 솔루션이었다. 정도전은 뛰어난 실력으로 이성계를 납득시켰고, 이성계를 통해 일했다.


옛날에 지나가다 들은 말이 있다. 진짜 실력있는 실무자는, CEO처럼 일할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윗선에게 싹 다 납득시켜서, 그 방향으로 일을 이끌어간다는 의미다. 그게 쉽나?


그래도 그걸 정도전은 해냈다. 그래서 후대에 이름을 남겼나보다. 실력이 참 중요하다, 싶었다.





# 자기계발서 보다는 재밌는 일화


재밌게 읽다. 조선 정부의 성공한 직장인은 어떻게 회사를 다녔는지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사람 사는게 참 비스무리 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 글에서 황희, 강홍립, 정도전을 서술했지만, 이 외에도 조광조, 유성룡 등 걸출한 위인들의 일화가 다수 적혀있다. 무겁지 않고 재밌는 역사책 혹은 자기계발서를 원한다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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