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꿔놓은 인류의 역사 -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의 사망률은 4분의 3, 파도바의 사망률은 3분의 2 수준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는 무려 전체 인구의 80%나 되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라졌다고 추정된다.
페스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기 전인 1328년 프랑스 인구는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페스트 이전 수준까지 인구가 회복되려면 400년 이상의 기나긴 세월이 필요해,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인구수를 회복했다.
1350년 전후의 유럽 인구는 1억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페스트로 사망한 셈이다.
인건비 폭등은 활판 인쇄술과 대형 범선 등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군사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전쟁터에서 필요한 능력과 기술을 연마한 전문 기사와 용병을 고용하려면 고액의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고 활쏘기나 말타기 같은 기술이 숙련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농민에게 쥐어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총기가 급속히 보급되었다.
페스트로 크게 줄어든 인구를 오랫동안 좀처럼 회복하지 못한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16세기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덕분에 하급 장인과 상인 등 도시 주민의 살림살이는 나날이 넉넉해졌다. 형편이 나아진 사람들이 식탁에 고기를 올리는 횟수가 늘어나며 식육 수요가 증가했다.
또 연극 등 문화와 여흥, 오락에 돈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수입된 홍차와 설탕 등의 기호품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도시 주민이 늘어나 시장경제 규모가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