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저성장 - <성장의 종말>, 디트리히 볼래스
많은 사람들이 저성장이 문제라고 한다. 신문이든, 유튜브든, 저성장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거라고 한다. 우리는 고성장을 좋은 것, 저성장을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휴스턴대학교 경제학자 디트리히 볼래스는 그의 저서, <성장의 종말>에서 다른 시각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저성장은 '자연스러운 진보의 결과'다.
그는 '저성장'에 호들갑떠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바하지마. 우리가 잘 살게 됐으니까 저성장이 온 거야. 옛날보다 자동차도, 텔레비전도, 의료 수준도 높아졌어. 더 잘 살게 됐잖아. 그래서 고성장이 안 되는거야."
도대체 무슨 말일까?
경제학은 경제성장을 '작년보다 올해, 얼마나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느냐'로 정의한다. 작년보다 '현대의 자동차, 삼성의 반도체부터 우리동네 분식집의 김밥, 떡볶이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경제성장이다. GDP 성장이라고도 부른다.
저성장은 GDP 성장 속도 둔화다. 어쨌든 성장했다는 점에서, GDP가 감소하는 개념인 '역성장'과 구별된다.
GDP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일하든가, 더 많은 기계가 있든가, 더 좋은 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올해 더 많이 생산하려면,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많이 일하고, 더 큰 공장에 더 많은 기계가 있어야 하고, 더 좋은 기술과 생산 공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옛날보다 더 살만해졌다. 그래서 옛날만큼 '일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GDP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
거의 2세기 동안 모든 선진국에서는 1인당 GDP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다.
출산율 하락은 미국이 20세기에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증거다. 이 뿐만이 아니라 20세기 동안 발생한 기술변화도 출산율 하락에 기여했다.
애당초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생각이 생겨난 이유는 제쳐두고, 노동 절약형 가전제품 덕에 집안일에 소비하는 시 간이 줄어들었으므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더욱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나자, 베커의 원래 주장과 비슷하게 자녀를 출산해 키우는 기회비용이 증가했고 출산율은 낮아 졌다. 게다가 기술 발달은 남녀를 막론하고 독신 생활을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하고, 결혼 연령을 늦추고, 전반적인 결혼율을 저하시키는 데 기여했다.
피임약과 기타 피임장치를 사용하면서 여성은 역사상 유례없이 독립적으로 출산 관련 결정을 내 릴 수 있게 됐다
과거보다 풍요로워졌다. 여성들도 좋은 교육받고, 월급도 높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자리에 많이들 취직한다. 출산으로 인해 포기할게 많아졌다. 이러면 옛날만큼 아이를 안 낳는다. 노동 인구는 장기적으로 감소한다.
아래는 미국의 출산율 추이다. 조출생률, 합계출산율 모두 100년전에 비해 뚝 떨어졌다.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세계 선진국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노동 시간도 감소했다. 우리 아빠는 주6일을 일하셨다. 나는 주5일을 일한다. 발빠른 일부 대기업은 주4일을 외친다. 초과근무와 야근은 줄어드는 추세다. 일을 덜 하는거, 이게 선진국형 경제다.
일할 사람이 적어지는데, 일도 덜한다. 그 결과가 아래 표다. 미국 경제성장률에서 1인당 인적자본이 미치는 영향이다. 1950-2000년에는 0.96%였다. 그런데 2000-2016년에는 오히려 -0.15%다. 노동자 감소, 노동시간 감소라는 사회적 변화가 경제성장률 저하 요인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묻는다. 이게 나쁜가? 옛날처럼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 둬야 하나? 옛날처럼 죽어라 일해야 하나? 그간의 역사는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않는 방향으로, 일과 생활을 쟁취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이게 진보다. 저성장은 진보의 결과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경제 구조도 변했다.
지출이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경제는 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이동 현상은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성 증가율 하락의 절반 가량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하락은 우리가 물리적 상품을 저렴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나타난 결과다.
상품을 생산할 때는 더 적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이 기존의 노동력을 활용해 에어컨, 자동차, 노트북을 더 많이 생산할 방법을 고안하거나, 더 적은 노동력을 활용해 같은 수의 상품을 생산할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비스를 생산할 때는 더 적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30분짜리 호른 5중주 티켓을 구매한 사람 중 10분 동안만 연주하고 끝내는 공연을 반길 사람은 없다.
저자에 따르면 선진국은 '서비스 경제'로 전환해왔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이제 핸드폰, 자동차, 냉장고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든다. 요즘 우리나라는 의료, 음악, 드라마, 영화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운다.
위 그림은 미국 GDP 추이다. 서비스업이 꾸준히 증가했다. 내구재와 비내구재는 감소했다. 저성장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장 짓고 상품 만들때는, 생산품 증가 속도가 빨랐다. 사람 더 뽑고, 기계 더 사면 된다. 제조업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서비스업은 아니다. 이건 사람이 한다. 생산성 증가 속도에 한계가 있다. 더 많은 노동자를 뽑고,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의사의 수술 기술이, K-Pop의 퀄리티가, 기생충의 작품성이 작년보다 10% 증가한다고 단언할 수 있나? 아니다.
이러한 서비스업이 제조업을 대체했다. 과거 속도로 성장하려면, 서비스업 성장 속도가 제조업만큼 빨라야 한다. 근데 그게 안 된다. 온전히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계가 있다. 하루에 10명의 머리를 다듬는 미용사가 10년 지난다고 100명을 커버할 수 있을까? 없다. 성장 속도는 느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도 문제는 아니다. 진보의 결과다. 과거보다 제조업 상품의 가격은 낮아졌고, 품질은 높아졌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높아졌다. 남는 돈으로 의료, 여가, 문화, 패션과 같은 서비스업 수요가 늘어난다. 삶이 풍요로워졌다.
저자는 되묻는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서 서비스업 수요가 늘어났다. 서비스형 경제로 전환됐다. 이게 문제인가?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불평등 증가 등 다른 요소가 저성장에 영향을 미친 거 아닌가? 저자는 말한다. 어느정도 타당한데, 출산율 하락과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만큼의 영향력은 아니다.
위의 그림은 저성장에 미친 각 요소별 파급효과다. 불평등, 세금과 규제, 대중국 무역 모두 저성장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저자는 주로 미국과 선진국 경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남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저성장으로 유명하다. 아래 그림은 지난 40년간의 경제성장률과 출산율 추이다.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쓸 수 있는 '인적자본'이 별로 없으면, 선택지가 두 개 남는다. 쓸 수 있는 '물적자본' 투자를 늘리거나, 기술개발, 공정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거나. 우리나라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이 일을 하고, 더 많은 노인이 일을 하고, 더 많은 투자가 일어나야 하고, 더 스마트하게 일을해야 한다.
말이야 쉽지..
이 책은 '저성장이 문제다'라는 상식에 도전한다. 참신하고, 재밌다. 그리고 쉽게 쓰여 있다. 경제학자가 쓴 책이지만, 최대한 나같은 일반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 경제와 사회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