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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n 10. 2019

부자 나라, 그리고 자유무역이라는 환상

경제학자의 세상분석 :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에릭 라이너트

1. 자유무역, 자유금융


8년 전 대학 입학 후 경제학 수업에서 항상 들은건, 자유무역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거였다.

대부분의 교과서와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있던 학교가 유독 심했을 수는 있으나, 주류 경제학의 기본 스탠스는 자유무역 긍정이다.

물론 무역의 자유만큼이나, 금융의 자유도 긍정한다.


학교와 책에서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수십년간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패권적 위치에 있었다.


WTO, WB, IMF 등 국제 경제기구는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를 지지한다.

자유 무역·금융이 세계 경제의 규칙이 됐다.

이 말은, 자유무역이 기본적인 원칙이 된 것.


우리 정부가 위험성을 이유로 후쿠시마 농산물을 수입금지 하려면, 수많은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인정받아 한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무역이 기본 규칙이고, 예외 조치는 특별한 경우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학과 주요 경제기구는, "자유 무역을 통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2. 근데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이 산업은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게 아니다.


정부가 기술·금융·세제 등 각종 지원추진하고, 관세·Quota 등을 통해 외국 제품으로부터 보호해서 육성했다.


외제차에 높은 세금을 물리고, 국내 조선소에만 선박을 발주하는 등, 우리 기업들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특히 철강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중요하다고 판단, 처음부터 포항제철소 지을때 직간접적인 개입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가 자유무역만 주구장창했으면, 계속 설탕이나 신발만 만들고 있었을 거다.


그니까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은 학문에서 배웠던 세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유무역이 답이 맞아?


3. 한 경제학자의 튀는 주장


(1) 누굴까?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라는 책의 저자인 에릭 라이너트.


경력이 화려하다.

스위스에서 학사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MBA를,

코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회사를 경영해봤다고도 한다.

인생 진짜 재밌게 사는구나.


하여간 이 사람은 학문의 탑만 쌓은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좀 굴러본 모양이다.


이 경제학자는 책에서, 자유무역 신봉자가 들으면 짜증부터 낼 주장을 한다.



"가난한 나라가 무턱대고 자유무역을 하면,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자 나라는 계속 부유해질거다."

왜지?


(2) 메커니즘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보겠다.


<1> 경제학의 자유무역 이론은 각 나라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2> 못사는 나라는 농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 잘사는 나라는 반도체·자동차 등 기술집약산업에 집중하고 서로 교환하는 거다.

<3> 근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소위 돈이 되는 산업은 반도체 같은 기술집약 산업이다.

노동집약 산업은 부가가치 확대에 한계가 있다.

<4> 만약  두 나라가 자유무역을 하면, 기술집약 산업을 가진 나라만 계속 부강해진다.

왜냐하면 기술집약 산업은 부가가치 증가의 가능성이 노동집약 산업보다 높기 때문이다.

<5> 그러니 못 사는 나라가 잘 살고 싶다면, 무턱대고 자유무역을 하면 안된다.

<6> 대신에 보호 무역과 산업 육성을 통해 기술집약 산업, 소위 첨단산업을 키워야 한다.

<7> 그리고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 역사와 똑같다.

’50~’90년대에 농업 → 경공업 →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함과 동시에, 관세·Quota로 수입을 제한하고, 세제지원·보조금 등으로 산업을 육성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산업이 컸다 싶으면, 무역보험공사의 수출보증 등 여러 지원을 통해 무역을 적극 도왔다. 


만약 자유무역 이론에 입각했다면, 노동집약 산업인 신발이나 설탕만 팔아야 했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었을 거고.


(3) 현실로 좀 나와라


저자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 현실과 너무나도 괴리됐다고 말한다.

또반 WB·IMF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못사는 나라에게 자유무역이론에 근거한 잘못된 성장전략을 처방한다고 비판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경제학 이론 자체는, 이론적 엄밀성 뛰어나다.

그러니 수십년 동안 학문적으로 수용됐다.


문제는 경제학에서 용되는 언어 경제, 정치, 역사, 심리가 모두 혼합된 현실 세계의 답을 찾으려 할 때 발생한다.


미국은 200 철강에 100프로 관세를 때렸다.

철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철강은 지금의 반도체 정도 되는 첨단산업.

어느 정도 키운 후, 미국은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해외에 팔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


저자는 요즘의 경제학이 위 같은 역사적 경로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세상은 경제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닌데, ‘경제학 이론’하나에 너무 많은 권한과 권위를 줬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4. 미·중 무역갈등


경제학만으로는 화웨 사태로 대표되는, 두 강대국간 갈등을 설명하기 힘들다.


세계 제1의 패권국인 미국.

그리고 여기에 도전하는 신흥국인 중국이 있다.


패권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신흥국을 제압할 동기를 가진다는 게, 국제정치이론의 중요한 함의다.

이제 다시 정치가 중요해졌다


30년 전 미국은 패권을 추격하는 일본을 제압했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은 엔화절상을 해야 했다.


일본의 수출은 타격을 입었고, 이를 만회하고자 실시한 금리 인하가 버블경제의 시발점이 됐다는 게 주된 시각이다.


중국이 신발이나 만들며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할 때는 자유무역 이론이 부흥했다.


하지만 중국이 반도체·전기자동차 등 경제 패권에 중요한 첨단 산업에 진출하는 현재, 자유무역 이론은 조용해졌다.


5. 겸손함과 자기비하, 그 사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라는 사람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걸 다 해석할 수 있어’라는 학문도 오만하고 위험하다.


후자가 중요한 사회적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때 더 그렇다.


아마 직업과 관심사를 고려할 때, 난 경제학과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것 같다.     

‘내가 아는 이 학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아는 이 학문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찾아야겠다.


전자의 태도는 멋대가리가 없고, 후자의 태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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