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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r 18. 2020

세계 1위 한국 조선업, 근데 잘 모르죠?

사회학자의 조선업 분석 -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1.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평소에 배에 관심이 많았다. 고철덩어리가 바다에 떠있는 게 신기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마음 먹으면 아프리카도, 남미도 항해할 수 있는 '배'라는 존재는 자유의 표상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배가 '세계 1등'이라는 소리를 익히 들어서 그런지, 항상 호기심 있었다. 다만 뭔가를 알아가는 건 필연적으로 귀찮음을 수반하는데, 그동안 귀찮음이 호기심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만났다.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조선업의 도시' 거제도를 다룬 사회학 서적이다. 우리 조선업의 역사를 설명하는 동시에 거제도 발전사를 조망한다.


거제의 일상도 다룬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간 지위 격차, '시골 생활'을 기피하는 밀레니얼 세대, 노동자 남편 - 주부 아내라는 전통적인 가족 체계의 변화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대우조선해양에서 5년간 근무했기에, 산업 현장과 괴리되지 않는 학문적 분석에 성공했다.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 출판문화상도 받았다. 잘 정리된 서평과 후기가 많다. 그러니 내가 뭘 보탤 필요가 없다.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대신에, 책을 읽는 과정에서 궁금했던 부분을 좀 찾아봤다. 조선업은 우리의 주력 산업이고, 세계 1등을 고수하는 분야다. 대강이라도 알고 싶었다.


선박의 종류, 조선 산업 업황 추이, 거제도에서의 조선업의 의미 등을 좀 찾아봤다.






2. 선박의 종류


배라고 다 같은 배가 아니다. 선박은 크게 상선, 특수작업선, 어선, 그리고 군함으로 구분된다. 어선, 군함은 이름만 들어도 감이 온다.


특수작업선이라는 이름이 좀 특이한데, 얼음을 깨는 '쇄빙선', 바다에 있는 원유-가스를 캐낼 때 쓰는 '드릴십' 등이 포함된다.


우리에게 낯익은 화물선부터 크루즈선까지, 다 '상선'이다. 그리고 '운반 대상'을 기준으로 상선의 세부적인 유형이 구분된다. 액체, 고체, 그리고 사람이 구분 기준이다. 먼저, 액체를 운반하는 선박을 살펴보자.


석유, 원유를 운반하면 유조선이다. 크기가 커지면 담을 수 있는 용량도 커지는데, 자동차가 그런 것 처럼 선박도 클수록 더 비싸다. 크기에 따라 한 척 600~900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관련정보1), (관련정보2)


요즘 친환경이 대세다.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 말뿐일 수 있겠지만 -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한다. 그리고 화석연료의 대체재 중 하나가 바로 액화천연가스, 'LNG'다. 이걸 운반하는 바로 LNG선이다. 이 배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해서, 쉽게 못 만든다. 비싸다. 한 척당 2,200억원 가량이다. 단가에서부터 유조선과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가 현재 1등을 유지하는 분야다. (관련정보) 화석연료 사용 억제를 규정하는 IMO 규제에 따라 성장에 더욱 탄력을 받을걸로 예상되는 선종이다.


앞의 두 선박이 '액체'를 운반했다면, 컨테이너선벌크선은 '고체'를 운반한다. 컨테이너선은 '화물선'이라고도 불린다. 이름 그대로, 화물을 '컨테이너' 안에 넣어서 운반하기 때문에 컨테이너선이다. 이것도 은근 단가가 쎄다. 한 척에 1300억원 정도다. (관련정보) 세계 경제가 안 좋아지면 즉각적인 타격을 받는 선종이다. 물동량이 줄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선이 포장한 '화물'을 담는다면, 벌크선은 '곡물, 광석' 등을 담는다. 단가 약하다. 한 척당 평균 300억원이다. 중국이 '저가 공세'를 앞세워 우위를 점하는 분야다.


대충 정리해보면 컨테이너선은 아이폰과 같은 공산품을, 벌크선은 곡물 등의 원자재를 운반한다. (관련정보) 


컨테이너선(좌) / 벌크선(우)


이 정도만 알아둬도, 미디어에서 '선박'에 대해 말할 때 이해가 더 쉬워질 것 같다. 이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걸 좀 찾아보려고 한다.






3. 우리의 주력 산업, 조선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객관적으로 볼 때, 2010년대에 조선산업에는 호재가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경기가 상승하고 '중국 경제의 부상→ 해운 물동량 증가 → 선박 건조량의 증가'로 이어지는 호재가 있었다.

2010년대 중반 ... 제조업의 선두주자인 조선산업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몇십년 전만해도, 조선업 강자는 일본이었다. 1970년대에 일본이 세계 시장의 과반을 점유했다. 그들은 90년대까지 세계 1위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전환점은 90년대 중반이었다.


1973년, 78년의 오일쇼크는 조선 산업에 극심한 불황을 가져왔고, 일본은 '구조조정'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숙련 노동자를 해고했고, 사업을 정리했으며 회사 규모를 축소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였다. 우리는 생산 능력을 감축하는게 아니라 확충했고, 인적•물적 투자를 감행했다. 이때 축적한 잠재성을 발판으로, 이후 찾아온 기회를 낚아다. '역발상'이 성공한 셈이다.


통계청 - 광업제조업조사


조선업의 매출액과 제조업 매출액 중 조선업, 반도체업 비중을 시각화해봤다. 90년대는 발돋움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91년, 조선업 매출액은 4조 가량이었다. 이게 95년에는 9조원, 2000년도에는 16조원로 급성장했다.


대망의 2000년 초, 중국 경제 급성장했고 글로벌 무역량 증가했다. 교역량이 증가하자 해운•조선 산업은 호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우리 조선업은 호황의 수혜자 중 하나가 됐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매출액은 급속도로 커졌다. 2000년 매출액은 16조였다. 5년 뒤인 2005년의 매출액은 30조 였고, 정점을 찍은 2011년, 77조원을 달성했다. 5년 단위로 2배씩 성장한 셈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제조업 매출액 중 조선업 비중이 반도체보다 높은 걸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노란색 부분) 조선업 비율은 6.6%, 반도체는 3.6%로, 조선업이 우리 경제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에, 조선업은 '역성장, 위기에 처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산업이 됐다.


11년에 77조원은 찍었던 매출액은 17년 42조원이 됐다. 거의 절반 가량 쪼그라든 셈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했다. 17년 제조업 매출액 중 조선업 비중은 2.8%인데 반해, 반도체는 8%다.


그런데 누군가는 여기서 궁금증을 제기할 수 있다. 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조선, 해운 산업 폭망의 촉매제라고 하는데, 왜 조선업 매출액은 3년이 지난 2011년부터 감소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건수량'과 '수주 잔량'도 살펴봐야 한다.


Clarkson Research


선박 한 척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설계 기간 7~8개월을 포함, 평균 1.5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를 적용해보면, 2010년의 매출액은 07-08년에 계약했던 선박이 완성됨에 따라 창출된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조선업 매출액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올해까지 얼마나 계약했는지', '만들어야할 배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건수량, 수주잔량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만들기로 약속한 선박'을 수주량, '다 만든 선박'을 건조량, '앞으로 더 만들어야 할 선박'을 수주잔량으로 이해하면 된다. 지금 당장 매출액이 없어도, 수주잔량이 높다면 미래 매출액은 높아진다. 반대로 당장 매출액이 높아도 수주잔량이 없으면, 미래 매출액은 0에 수렴하게 된다.


위 그림을 보면, 2000년대 중후반에 수주잔량 영역이 가장 넓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2년후인 2010년대 초반, 조선업의 매출액이 높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무역량 감소로 수주잔량 감소에 따라 조선업 불황이 닥쳤고, 설상가상으로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도 매서워졌다.


그 결과, 11년 중국보다 높았던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년후인 13년 중국에 추월당하게 된다(중국 : 40%대, 한국 30%대). 수주잔량 영역이 감소하는게 눈에 확연하다.


만들어야할 선박이 줄어드니, 만들 사람은 옛날보다 덜 필요하게 됐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2016~2017년에 걸쳐 단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직영 생산직 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사내하청업체들은 줄도산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동남권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오롯히 하청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었다

               

수익성 악화가 누적됨에 따라 조선업은 16~17년에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다. 구조조정에 따라 그간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던 해양 플랜트 등 여러 사업이 청산됐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통계청 - 광업제조업조사(10인 이상 사업체 대상)


15년, 16만명이던 조선업 종사자는 1년 후인 16년, 14만명으로 감소한다. 그리고 2년후인 17년에는, 11.7만명으로 쪼그라든다. 2년만에 25% 가량 감소한 셈이다. 올해 100명의 동료가 있었다면, 2년후에 75명만 남 상황이다.


실직자의 대다수가 '사내하청'으로 불리는 '비정규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대책」의 자료를 살펴보자. 16년 6월, 현대중공업 근로자 수는 15년 말에 비해 7936명 줄었다. 같은 기간 사내 하청이 8348명이 줄었다. 대우조선해양도 1만명 가량 인원을 줄였는데, 이 중 사내하청 근로자가 7천명 정도 줄었다.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부터 우선 감축했다.


실직이 개별 기업의 문제라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되지만, 산업 자체가 불황이다 보니 동종 업계 이직비율이 옛날보다 낮아졌다. 퇴직 후 1개월 내 조선업에 재취업하는 비중이 15년 12월에는 86%였으나, 16년 9월에는 67%로 급감했다. 단순히 사람이 떠나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체화하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도 잃어가는게 문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유병세 전무는 '조선산업은 3D 산업'이라고 말하며, '향후 일감이 많이 생겨도 인력 수급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신규 인력 유입감소에 따른 조선산업 종사자의 고령화는 생산성 저하와 기능(기술)전수의 단절'로 귀결된다고 우려한다.


아주 간단하게나마 조선업의 매출과 고용을 살펴봤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또 다른 토픽, 거제시를 살펴보려고 한다.






4. 거제도의 흥망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남성과 여성의 일이 칼같이 분리되고, 노동자 공동체가 조직되고, 회사가 직원들을 결속력 있게 엮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산업도시 거제의 중공업 가족이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업 대표기업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가 거제도에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어촌 도시'에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조선회사 2개가 다. 근데 거제시는 얼마나 작을까?


우리나라 기초 지자체의 면적을 줄세워보면, 220개가 넘는 기초 지자체 중 거제시가 121위다. 면적은 402km2다. 솔직히 느낌이 잘 안온다. 그래서 세종시와 비교해봤다. 세종이 460km2정도 된다 세종... 후....


나는 세종시에서 많이 답답했다. 자유로운 서울 라이프를 즐기다가 세종에 왔을 때, '앞으로 평생 여기에서 사는건가' 싶어 살짝 우울하기도 했다. 문화생활 공간이 마땅치 않다. 홍대-이태원 같은 핫플도 없었다. 평일 저녁 이태원에서 술마시는 내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가끔 'XX'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를 더 옥죄었던건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알 수 있는 동종업계 사람들이 어딜가나 있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그만큼 좁다.


그런데 거제는 이것보다 더 작다. 그러니 이 작은 도시의 경제가 조선업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건 우연이 아닐거다.


한국은행 - 산업연관표


조선 산업의 특성부터 좀 살펴보자. 국산중간투입률, 고용유발계수, 생산유발계수 모두 조선업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도체는 소재·장비를 일본, 유럽 회사에서 많이 수입한다. 국산중간투입률이 낮다. 그렇지만 조선업은 국산중간투입률이 높다. 즉 국내의 부품, 기자재 업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 인근에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있다. 실제로 16년에 거제시에는 250개의 조선업 회사가 있었다.


고용유발계수는 최종수요 10억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근로자의 수와 이로 인해 타 부문에서 간접적으로 고용되는 근로자의 수를 합한 값이다. 자동차와 더불어, 조선업의 고용유발계수가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의미하는 생산유발 효과도 상당히 높다. 자동차보다는 조금 낮지만, 제조업 평균보다는 확실히 높다. 조선업이 1단위 성장할 때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제조업 평균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하여간 조선업은 생산유발계수, 고용유발계수, 국산중간투입률 모두 제조업 평균보다 높다. 산업생태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무지 큰 산업이다.


통계청 광업제조업 조사 - 경상남도 통계


그러니 거제시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은 조선업에서 나온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다. 2011년도에는 거의 99%를 찍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국토지리학회논문 다시 확인했다) 침체기에 돌입한 2010년대에도, 창출 부가가치 중 조선업 비중이 70%를 상회함을 알 수 있다. 이 도시의 운명은 조선업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한다.


조선업이 옛날만큼 잘되면, 거제시도 잘 될 확률이 높다. 사람들도 많아지고,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그 주위에서 장사하는 서비스업도 잘 될 거고. 그렇지 않으면, 거제시는 힘들어 진다. 조선업은 어떻게 될까?






5. 우리 조선업은 옛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13년 기준, 전세계 선박의 95%가 화물선이다. '물동량'은 조선업의 불황-호황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물동량은 글로벌 경제 상황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UNCTAD, OECD, IMF


위 표를 보면, 물동량 증가율(빨간색)과 세계 경제성장률(노란색), OECD 국가의 경제성장률(회색)의 추세가 유사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세계경제 성장률은 상승 추세였다. OECD 국가의 성장률도 그랬다. 물동량 증가율도 상승 추세였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물동량 증가율, 경제성장률은 급감했다. 이후 약간 반등했으나, 과거와 같은 높은 증가율-성장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나아질까?


전문가들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글로벌 저성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지금의 단기적 충격을 극복하더라도, 미-중 패권 경쟁, 각 국가의 자국 우선주의, 소득-자산 불평등으로 인한 가계 소비 여력 저하,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기업 투자 저하로 인해 과거와 같은 성장을 바라기는 당분간 어렵게 됐다.


게다가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18년 한-중-일 조선산업 경쟁력을 비교한 「산은조사월보」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중국, 일본에 비해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벌크선, 중소형 탱커선을 제외한 VLCC,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부문에서 격차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것만 보면 희망적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할 게, '싼마이’로 들이대는 중국의 벌크선, 중소형 탱커선은 더 이상 우리나라가 만들기 어렵게 됐다는 의미다. 중소형 조선사는 옛날보다 어렵게 됐다.


실제로, 08년의 수주잔량을 보면 벌크선 20%, 탱커선 25% 정도 됐다. 영광의 시대, 우리 조선업은 모든 모델을 만들었다.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들며 이 분야를 중국이 가져갔다. 이제는 '집중과 특화'의 시대가 됐다. 옛날처럼 엄청나게 큰 규모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LNG선으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 선종'에 '집중-특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선박 보수, 핵심 기자재-부품 생산 등 니체마켓 개척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이 상황은 거제시에 두 가지 시사점을 말해준다. 조선업은 옛날만큼 부를 창출해주지 못하고, 따라서 산업 생태계에 '조선업'만 존재하는 건 엄청 위험하다는 것. 생태계 다양화 장기적인 발전과 안정에 도움이 될거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 이건 좀 더 내 뇌피셜에 가까운데 - 설사 조선업이 호황에 접어들어도, 거제시 '주민'은 옛날처럼 많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산업이든 그렇겠지만, 조선업 고부가가치는 '잘 배운 핵심 인재'를 필요로 한다. 그런 '잘 배운 핵심 인재'가 과연 '거제 생활'을 끝까지 감내할 것인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주말에는 '서울 사람'으로 지내면서 학원에 다니거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는 청년, 또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과 소개팅 등을 통해 끊임없이 결혼을 타진하면서도 거제에서의 '외벌이'는 기피하는 사무직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배움과 성장의 양식이 달라졌다. 산업 보국을 위해 뛰었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이 '현장 중심' 기풍과 이른바 '쟁이 근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한다. 분산화된 방식으로 자기 구역을 온라인상에서 코등하듯 해결하려 하고, 실시간 온라인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삼성중공업은 판교에 R&D센터를 건설했다. 현대중공업과 합병 얘기가 나오는 대우조선해양은 서울에 R&D센터가 있다.


회사의 기술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인재들의 주무대는 거제가 아닌 서울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가정을 이루고, 서울에서 돈을 쓴다. '고부가가치화'가 중요해질수록 '기술'이 중요해지고, 이들에 의존하는 정도도 올라갈 거다. (물론 수도권 집중 바람직하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각 개인들에게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생활'을 평생 감내하라는건 다른 문제다)


옛날만큼 조선업이 잘나간다고 해도, 거제시에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거제시에 풀리는 돈이 옛날 같지는 않을 거다. 거제시는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책은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여기서는 조선업만 언급했지만, 책에는 해양플랜트도 상세히 분석되어 있다. 조선업황의 변화,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 지역 경제 구조, 비정규직 - 정규직 노동자간 일상의 위계질서, '학문적이면서도 소설같이 생생한' 글쓰기가 궁금한 사람은 재밌게 읽을 것이다.


「참고자료」

선박건조 및 수리업 - 한국안전기술협회('11)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대책 - 한국노동연구원('16)

거제시 조선산업에 대한 지역경제의 잠김 효과 - 국토지리학회('18)

한-중-일 조선산업 경쟁력 비교 - 산은조사월보('18)

최근의 수출부진과 주요 업종의 경쟁력 추이 - 산업연구원('19)

전환기의 한국 조선산업 - 산업연구원('19)

삼성중공업 PR센터 - 선박기초상식(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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