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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r 07. 2020

침 맞고, 한약 먹는거, 그거 과학적이야?

과학기술 사회학자의 한의학 분석 - 「하이브리드 한의학」, 김종영

「하이브리드 한의학」이라는 책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저자는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이 책은 서양 과학의 주류 패러다임과 차이가 있는 한의학이 제도화되고 과학화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책의 주요 논지 중 일부를 확인하고, 제 생각을 써보려고 합니다.

1. 보약 좀 지어줄까, 침 맞으러 가자
2. 「하이브리드 한의학」
3. 설명 불가능 = 존재하지 않음?
4. 젊은 애들은 한의원에 갈까?


1. 보약 먹자, 침 맞으러 가자


나는 한의학과 거리가 멀다. 아플 때 한의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좀 다르다. 내가 피곤해할 때마다 엄마는 보약 지으러 가자고 말하신다. 내가 허리 아프다고 할 때마다 친구는 함께 침 맞으러 가자고 말한다.


나는 그때마다 못 들은척 넘겼다. 평소에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내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게 중요하지만, 나는 그냥 한의학 = 비과학이라는 편견에 갇혀 있었다.


우리는 양의학(이하 '의학')이 주류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의학은 '근대'와 '과학'을 대표하는 학문이다. 한의학은 접근 방법, 사용하는 언어 의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한의학은 '반근대, 비과학, 미'으로 인식다.


식민지 시절, 일제는 한의학의 '의학' 지위를 박탈했다. 한의학은 '미개한 조선'의 비과학적 미신이었다. 그렇지만 한의학은 해방 후 지난한 투쟁을 겪으며 의료 체제 내에 다시 자리잡았다.


과학기술 사회학 책인 「하이브리드 한의학」은 한의학이 '근대 사회'에서 자리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의학은 '전근대, 미개, 비합리'라는 편견을 이겨내야 했다. 또한 '주류 과학'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 과정 '지식과 권력'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


책의 일부분을 살펴본 후,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동년배인 20대가 과연 한의원을 갈 것인지 좀 찾아봤다. 심심해서..








2. 하이브리드 한의학


인용구는 볼드체 + 색깔


일제시대의 한의학 : 미개


한의학은 조선의 공인 의학으로 국왕과 왕실에 대한 의료 활동을 담당했다. 조선은 의료 전문 인력을 과거(의과)를 통해 충원했었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익힌 사람들이 의료 체제의 중심을 형성했다. 그런데 이게 식민지 시기로 접어들며 변했다. 한의학의 지위는 순식간에 격하됐다.


서양 의학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문명과 진보의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문명 국가에서 '과학'으로 자리잡은 서양 의학과 비교할 , 한의학은 '미신'이나 다름 없었다. 세포, 분자, 백신을 이야기하는 서양 의학에 비해 음양오행, 침을 이야기하는 한의학은 너무 초라했다.


조선은  초라한 '미신'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사회였다. 한의학은 미개한 조선의 의학으로 여겨졌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한의학은 개화와 계몽의 대상이.


이에 따라 일제는 한의학 국가 의료에서 배제했다. 1913년 11월, '의사규칙', '치과의사규칙', '의생규칙'으로 의사 면허 제도가 도입된다. 이 법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서양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의사'로 규정한다. 한의사는 어떻게 됐을까? 한의사는 의생으로 격하된다. 일제는 의학을 전공한 '의사'를 육성하는데 집중했고, 한의학을 전공한 '의생'은 과도기적 존재로 인식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서양 의학이 공식적인 의학으로 규정되긴 했으나 오래된 전통은 단번에 끊기지 않는다.


1914년 통계를 보면 조선반도 내 의사총 641명이었고, 조선인 의사는 144명에 불과했다. 당시 1500만명이던 조선 인구의 의료를 담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에 비해 '의생'으로 지위가 격하된 한의사의 숫자는 5827명으로 의사보다 훨씬 많았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보통 사람'들에게, 한의사는 여전히 구원의 존재였다.


일제 시대에 한의학은 서양 의학에 흡수, 통일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의사가 제도적이고 중심적인 의료 체계를 이뤘고, 의생은 보완적이고 부가적인 역할만을 담당했다. 


이게 광복을 전후로 바뀌게 된다.


광복 후의 한의학 : 자리잡기


광복 후 한의학의 역사는 제도권에 진입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차 있다.


1951년, [국민의료법] 개정을 통해 한의사는 의사에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법적 승인을 받으면서 한의와 양의의 의원적 의료 체계를 갖게 되었다.


이게 거저 주어진 게 아니다. 해방 후, 다양한 의료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하지대다수의 법안이 한의사 '의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한의사들 위기의식은 엄청났다.


뭔가를 바꾸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의사들은 그렇게 했다. '5인 동지회'라는 이름의 부산 지역 한의사들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했다.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증언을 하는 등, 입법 과정을 주도했다.


다양한 논리를 만들었다. 장질 부사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한의술이 양의술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 한의학은 민족의 보물이라고 주장하며, 민족 감정과 역사 의식을 자극했다. 의약품의 해외 수입 의존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언급하며, 한약의 경제적 효율성을 말했다. 서양 의학의 기원인 히포크라테스의 병인론이 한의학과 유사하다는 말까지 했다. 흠..


한의학 제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원희 한의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한의사 제도의 이원제 국민의료법을 국회에 통과시킨 일은 하나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을 만큼의 위대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희생과 노력의 결과이며 피나는 투쟁의 대가로 얻어진 전리품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한의학은 다시 국가가 공인하는 '의료'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법적으로 인정 받았다는게 '과학'으로 인정 받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의학은 '과학적'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서양 의학에 의해 흡수, 통일되어야 하는 존재로 공격당할 것이다.


만약 한의학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다고 치자. 우선 사람들은 한의원, 한방 병원을 안 갈거다. 그리고 국가가 한의학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의문이 계속 제기될 것이다. 이게 쌓이면 한의학의 존재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 되어야 했다.


한의학의 인정투쟁 : 과학이 되고싶다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학의 언어로 표현되고 과학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한 교수의 인터뷰가 그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교수 인터뷰>

아무리 한의학이 우수해도 우리끼만의 언어, 우리끼리만의 컨셉으로만 환자를 치료하면 궁극적으로는 우리 내부에선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진 몰라도, 그것이 과학적 언어로서 표출이 되지 않으면 그건 미신의 범주로 들어가요.


전세계 과학자 커뮤니티가 분자, 세포, 뉴런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다 음양오행, 경락, 기 같은 말을 대뜸 하면 미쳤다는 소리 듣는다. 한의학은 자신을 '과학의 언어'를 통해 보여줘야 다.


논문이 중요하다. 과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발견,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을 뽑아내야 한다. 한의학계에서만 통용되는 논문이 아닌,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SCI급 논문' 발행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의학계는 이걸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의학연구원의 SCI 논문 수를 보면 95년에는 0편에 불과했으나 2013년 166편, 2016년 202편으로 크게 늘었다. 대학에서의 연구도 활발하다. 저자의 현장연구가 시작된 1999년 당시 SCI급 논문은 한의계 전체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으나, 경희대 암예방소재개발연구센터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52편을, 경희대 한의과학사업단은 128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출판 과정이 흥미롭다. 그들은 주류 과학 커뮤니티에 논문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내려놓는다.


<경희대 김호철 교수 논문에 대한 SCI 심사위원의 평가>

한약 추출액의 지질 및 플라보노이드 작용을 폐와 간의 경락과 병원성 풍열 제거(한의학 개념들)로 언급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현대 서양 과학적 원고는 대조되는 분석에서 입증되지 않은 이러한 용어를 소개할 수 없으며, 또한 데이터 토론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기도 어렵다.


연구원들은 한의학적 개념과 이론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다. 약효를 화학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한 뒤, 동물 실험과 세포 실험까지 병행한다. 한의학 저널에서는 안해도 무방한 일들이다. 어떻게든 주류 과학의 시각에 맞춰보려고 노력한다.


한의학계의 노력은 단순히 논문 생산에 그치지는 않는다. 필요하다면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 의구심 가득한 외부인들에게 한의학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봉한학이다. 봉한학은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를 탐구하는 연구를 의미하는데, 한의학에서 경락이란 기가 순환하는 통로를 의미한다. 한의사가 침을 놓는 곳이다. 주류 과학은 이 개념이 불분명하고 입증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인 소광섭 교수는 봉한 연구팀을 창설했다. 그 팀의 목적은 봉한관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믿게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수십년간의 노력 끝에 봉한관을 분리해내는 것을 시각화해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미국 워싱턴 대학의 실험실로 갔고, 다른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한관을 분리해냈다.


< 봉한 연구팀, 이병천 박사>

재현하기 전날 잠 한숨도 못 잤어요. 재현 안 되면 완전 국가 망신이고 사기꾼이 되는 거지.

근데 나오더라구요. 다행히 그때 명확하게 나왔거든요.


워싱턴 대학교 방사선과 아칠레프 교수는 이병천 박사가 재현하기 전에는 혈관과 림프관 이외의 순환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 연구팀의 재현 후, 아칠레프 교수팀도 봉한관을 적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아칠레프 교수가 봉한 연구에 뛰어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의학은 과학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류 과학의 언어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실험을 통한 시각화로 실체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 땅에서 태동한 한의학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전근대와 비합리의 표상'이 됐다. 그렇지만 그들은 근대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까지 불완전한 면이 있겠지만, 한의학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성과 합리성의 언어로 자신들을 재현해나갈 것이다. 물론 그걸로 재현해내지 못하는 것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생생한 묘사로 가득하다. 한의학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한의사들이 느끼는 한의학의 의미 등이 서술되어 있다. 국가 정책 변화 과정도 세부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약분쟁의 과정, 의미부터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의 대체의학 동향도 짚는다.


우리나라 의료 정책에 관심이 있거나, 한의학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또 '주변부 지식'이 '주류, 제도권 지식'으로 포함되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저번 글에서 다뤘던 (링크) 지배받는 지배자」를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도 분명 구미가 당길거다.





3. 설명 불가능 = 존재하지 않는 것?


나는 한의학이 낯설다. 왜냐하면 한의학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언어'로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알러지가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건 이해가 된다. 한의사는 열이 많아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이건 이해가 잘 안 된다.


<편강 한의원, 비염 설명자료>

한의학에서는 "코는 폐와 통해 있는 구멍"이라 하여 콧병의 원인을 폐의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폐에 열이 많다든가 차가운 데 기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여타 학문이 그랬듯, 지금 '비과학'이라고 비판받는 한의학도 언젠가는 '주류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나 하는 거다. 한의사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전공자들도 한의학 연구원에서 일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의학의 효능을 말한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과학 역사에 많았다고 들었다. 천동설로는 지동설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뉴턴 과학으로는 상대성 이론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느냐 마느냐와는 무관하게, 지구가 돌고 있었고, 시공간은 상대적이었다. 지금 당장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과학에 대해서는 X도 모르는 내가, 한의학이 완벽하게 미신이고 비과학이라고 판단내릴 수 있나 싶다. 그래도 나와 동년배 중 꽤 많은 사람이 한의학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한의학 시장은 어떻게 될지. 젊을수록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없다속설이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면 앞으로 한의학의 미래가 마냥 밝지 않을 것이다. 좀 찾아봤다.






4. 젊은 애들은 한의원을 갈까?


나는 나와 동년배들이 한의학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따라서 한의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련된 통계를 한번 좀 살펴봤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우리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향후 '1년간 한방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냐'고 물었고 그 중 60%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40% 없다고 응답했다. 2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한방 의료 이용 의사를 밝힌 비율이 유난히 낮다. 47.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과반이 안 된다.


2017년, 한약진흥재단에서 유사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1년의 조사보다 한방 의료 이용 의사를 밝힌 비율은 더 높아졌다. 특히 20대의 경우, 한방 의료 이용 의사를 밝힌 비율이 11년에는 과반이 안됐으나 17년에는 약 70%에 달했다.



두 결과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설문 문항에서 좀 차이가 다. 11년에는 '향후 1년간 한방의료 이용 가능성'을 물었고, 17년에는 '향후 의료서비스 필요 시 한방 의료 이용 가능성'을 물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설문 문항에서 긍정 비율이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쨌건, 내 예상이 틀렸다. 동년배에서 한방 치료 희망 의사는 꽤나 높았다. 나는 한의학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편협했고, 뭔가 꺼림칙한 것으로만 보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대체 의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트렌드를 몰랐던 것 같다.


[참고자료]

한방의료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 - 보건사회연구원('11)

한방의료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 - 한약진흥재단('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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