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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pr 20. 2020

아 그니까, '왜' 살아야 되는건데

철학자가 나누는 삶의 의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 도대체 '왜 살아야' 되는데?


서점에 널린 자기계발서, 유튜브에 깔린 인생 교훈은 '어떻게 사는지'를 말한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라는 '행동형',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멘탈형' 등 종류도 다채롭다.


어차피 나는 봐도 잘 못 따라하니까, 애초부터 잘 안 본다. 게다가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에 대 납득이 잘 안되서, 그런 류의 컨텐츠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이거야 내 사정이고, 요즘 대세는 역시 '어떻게 살아야 더 잘 살 수 있는지'에 관한 거다.


'어떻게'에 대한 담론이 '왜'에 대한 담론을 압도하는 시대인데,  '왜'에 대해 말하는 흔하지 않은 책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다. 100년 전 미국에서 출판됐다는데, 딱 보고 '아, 이거 재밌겠다' 싶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무지 재밌었다.



저자인 윌 듀란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문학자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경위가 흥미롭다. 한 남자가 자살하기 직전, 윌 듀란트에게 '왜 살아야하는지' 답해보라고 협박 같은 부탁을 했다. 제대로 된 답을 안주면 자살하겠다는 말덧붙였다.


쉽지 않은 질문에 최선의 답을 내려주기 위해, 윌 듀란트는 다양한 사람에게 '왜 살아가냐고' 묻는다. 약 100명 정도에게 물어봤다. 평론가, 작가, 연예인,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종교인 등 많은 사람이 답장을 줬다. 여기에는 조지 버나드 쇼, 버트런트 러셀, 마하트마 간디 등 유명 인사도 포함된다.


감명 깊었던 회신을 살펴보고, 내 생각을 써보려고 한다. 읽는 동안 재밌었다. 각 분야에서 인정받던 사람들이 나름의 생각을 펼쳐보인거라, 폭넓으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물론 '이게 뭔 소리냐?' 싶은 것도 있었지만, 가치관이라는 건 원래 사람마다 다른거니까.




#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박스 안은 인용구


(헨리 멩켄/1880-1956) 어쩌다 보니 나는 사상에 대해 강렬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흥미를 품고 태어났으며, 그것들을 갖고 놀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그것들을 말로 옮기는 데 평균보다 나은 재능도 가지고 있지요.

나는 작가이자 편집자입니다. 언어의 중개인인 동시에 제조자이지요. 전반적으로 나는 정확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없습니다. 나는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글을 쓰고 출판을 해 왔으니까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사실 전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의심스럽고요. 내가 아는 건 삶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지속되는 동안 상당히 즐거웠다는 것 뿐입니다.


미국의 평론가인 헨리 멩켄의 답장이다. 그는 미국 신흥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뭐랄까, 읽다보면 은근히 승리자 포스가 난다. 삶이 그에게 '상당히 즐거웠다'고 말하는걸 봐서는, 그는 무난-무탈하게 성장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느껴진다. 자신의 재능이 남들보다 낫다고 평가한다. 주체성과 성취감도 느껴진다.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하지는 않았지만, 남에게 만족을 줬다고도 말한다. 이 태도는 조금 이따 다룰 '헬렌 윌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헬렌 윌스'는 테니스계에 일가를 이룬 선수인데, 그녀는 자신의 실력에 항상 '불안'해한다. 이게 역사 이름을 남기는 사람과 그냥 한 시대 쫌 잘나갔던 사람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는 행복해 보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하고-재밌는 걸' 업으로 삼았고, 그걸 토대로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런데 재미와 행복을 말하는 그도, '인생의 의미'는 아직 깨닫지 못했나 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삶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상황에서, '왜 삶은 나에게 즐거움을 줄까?' 하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 없긴 하다.


(윌 로저스/1879-1935)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그러니 웃을 일을 만들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자. 아무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지금 이 세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확실히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이전 세대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이전 세대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구하려'하지 말자. 간절히 구할수록 오히려 함정에 가까워질 뿐이니까.

하나의 이상에 헌신하지 말자. 그건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말을 달리는 일과 같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호수는 이미 없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관해 뭔가를 믿는건 괜찮지만 그곳이 이러이러할 거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지는 말자.

패배할 때마다 한 발짝 앞서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수십 편의 대작을 창조해낸 영화감독, 윌 로저스의 말이다. 이 삼촌의 글이 더 깊어 보인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무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누구나 경험하게 될 '실패'를 담담히 마주하면서도, 한 발짝 더 나아가라고 말한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이런 류의 이야기와는 결이 좀 다르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 특별해 보이는 나도, 결국 60억 명의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의 '존재 의미'가 축소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가꾸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만 그렇게 안 되더라도, 그냥 받아들이고. 그도 내일 한 발짝 더 나아가고. 그는 내달림과 쉼을 적절히 배합하는 삶을 말한다.


관록과 여유,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한 자의 통찰 엿보인다. 특히 '뭔가를 헌신할 정도로 믿지 말자'는 말이 감명 깊다.


나에게는 이 말이 '모든게 헛되다'는 허무의 느낌 보다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포용의 자세로 다가온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악을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넓은 사람. 평생 마음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소개할 아저씨의 대답 멋지다.


(칼 래믈리/1867-1939) 내 경험에 따르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과도한 자기 성찰의 희생양 같더군요. 당신은 "무엇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나의 대답은 모든 헛똑똑이들도 비웃을 만한 것입니다.
바로 '일'이지요.

나는 내 아이디어가 형태를 갖추어 구체적 결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활력을 얻습니다. 많은 아이디어가 결국 실현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것이 실현될 경우의 기쁨을 앗아가진 못합니다.

나는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하고, 내 일로 경제적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은 오롯이 일 자체, 그리고 성취감입니다.

내 생각에 그건 아마도 내 아이들과 손주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거의 광적인 열망일 겁니다.

당신이 "진리의 발견이야말로 인류 역사 최대의 실수였다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라고 적은 것은 농담인지 뭔지 모르겠군요. 대체 그런 발견이 언제 있었습니까? 내가 보기에 우리 모두는 여전히 자기 나름대로 진리를 발견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현자가 되어 지나친 추상적 사고에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우울과 절망을 받아들이느니,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업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미국 최대의 영화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창립한 칼 래믈리의 글이다. 이 아저씨가 이 글을 쓸 때 아마 60살 정도 됐을 거다. 사업가 기질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넘치는 에너지, 과감함, 결단력'이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인생의 의미니 어쩌니 하면서 머리 아파하고 있으면 쓱~ 와서 "아니 뭐 답도 없는 문제를 풀고 있냐, 니 그거 평생 답 못찾아. 오늘 놀고, 내일 휴가 쓰고, 내일 모레부터 죽어라 일 해보자"고 말하는 큰 형님 느낌이 난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도 '생각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가 공존한다. '생각하는 나'는 추상적 사고를 하며 끝없이 의미를 찾아나선다. 왜 살아야할까, 왜 일해야할까, 뭐 이런거. 그런데 쉽사리 정답을 못 내리니 회의감이 딸려온다. 허무함도 밀려오고, 기분은 결국 쳐진다. 그래도 이 과정은 유익하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면, '행동하는 나'가 발동한다. '에이 씨, 인생 뭐 큰거 없다. 그냥 주어진거 열심히 하면서 재밌게 사는 거지' 하면서 또 달린다. 이 따라오는 성취와 인정은 나를 뿌듯하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생각해보면 - 물론 아쉬움도 있지만 - 초년차 였음에도 규모가 큰 신규 사업을 성사시킨 성취의 기억, '빨리 배운다, 영리하다'는 인정의 기억은 힘과 재미를 선사했다.


인생은 멈춰서 생각하다가 툭툭 털고 달려가고, 죽어라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이 아저씨는 괜히 멈출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멈춰봤자 답도 안 나온다고. 가다보면 길이 나온다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때때로 기습해오는 '생각하는 나'를 피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왜'를 물어가는 삶을 살았다. 왜 좋은 대학 가야하는지, 왜 시험을 붙어야 하는지, 왜 그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나름의 정답을 찾을 때까지 꽤 많이 고민하고 성찰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한번 정답을 찾고 나만의 '든든한 기둥'을 만들면, 남이 뭐라해도 무시하고 밀고나갈 힘이 생겼다. 물론 과정이 피곤하긴 한데, 나의 뇌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그래도 '추상적 사고에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우울과 절망을 받아들이느니,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업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하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빵 터졌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 '왜'를 물어보고 '정답'을 찾을 필요가 굳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삶의 의미를 찾는 '뻘짓거리'에 너무 힘쓰지 말라는 그의 조언. 


(헬렌 윌스/1905-1998) 인생에 관해 깔끔하고 완벽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느낌이야말로 젊음의 증거라고들 하더군요.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상당히 나이를 먹은 게 분명하네요. 그 무엇에 관해서도 좀처럼 확신할 수가 없으니까요.

내가 확실히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내 마음속에 항상 머물러 있는 듯한 불안을 해소할 수단입니다. 이 같은 불안, 어느 정도의 완벽함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바람이 특이한 형태의 자만심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내게는 바로 그것이 종교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매진함으로써 순간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슬픔과 초조와 분노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구나 자신의 감정이 유일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지금 내 마음속의 불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고 있고요. 하지만 어쩌면 이 불안한 나라에 사는 내 또래 모든 젊은이의 가슴속에서 똑같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계속 움직이면서 모종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설사 내게 재능이 부족하다 해도 움직이는 기쁨은 누릴 수 있겠지요. 게다가 희망은 항상 존재하니까요. 적어도 젊고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이지요.

 내 생각에 아무래도 불안은 고질병 같아요. 테니스에 관해서는 별로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그것도 '불안에 따른 활동'이라는 분류 아래 속하니까요.


윔블던, US 오픈, 프랑스 오픈 등 쟁쟁한 대회에서 20회 넘게 우승한 여자 테니스 선수, 헬렌 윌스의 말이다. 아마 20대에 이 글을 썼을 거다. 스포츠 분야에서 젊은 나이에 '일가'를 이룬 사람인데, 지금의 김연아가 이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불안의 해소'를 말한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데, 이게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걸 보완해서 완벽에 가까워지는게 인생의 의미라고 말한다. 좀 놀랬다.


그녀는 자기 분야에서 천재 아닌가? 그런 사람이 '부족함과 불안함'을 느낀다니. 나 포함해서 내 주위를 둘러보면, 별 것도 아닌데 "나 잘한다, 나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렇지만 진짜 고수인 그녀는, 자신의 성취보다는 부족함에 전착한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네 자신의 무지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고 말하며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지적 한계'를 지적했다. 18세기의 천재 예술가 베토벤은 "평범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기쁨보다 고통을 겪고 난 후에 차지하는 기쁨이 훨씬 값지다"고 말하며 '고난의 보편성'을 기본으로 깔고 말한다. 진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항상 '부족함과 이에 따르는 고통'을 느끼나 보다. (앞에서 다룬 헨리 멩켄은 자신의 재능이 평균보다 낫다고 스스로 평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헬렌 윌스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분명히 넘쳤을거다. "완벽함에 도달"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 기저에는, "나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이다"는 마음이 필히 깔려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성취보다는 부족함을 이야기한다. 탁월함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녀에게 중요한건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세운 이상향과 현재 자신의 위치 사이의 차이다.


와닿았다. 자신이 세운 이상향에 더 가까워지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삶. 여기서 중요한건, 그 이상향을 남의 기준과 인정에 의존한게 아니라 스스로 세웠다는 거다. 타인의 기준과 인정을 맞추려는 삶이 얼마나 피곤한가. 물론 이거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나도 어디가면 인정받고 꿀리지 않고 하는데, 이게 내 행복에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다. 이거에 영향 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나 스스로와 경쟁하고 인정받고, 그러고 살고 싶다.


이상향이라는 것도 꼭 '사회적 성공' 이럴 필요는 없을 거다. 좀 더 이쁘게 말하고, 남에게 상처 덜 주고, 가족과 친구에게 더 잘하고, 덜 나쁜 짓 하고. 이거 소박해보이는데, 내가 보기에 이거 잘 하는게 '사회적 성공'만큼이나 어렵다. 물론 사회적 성공도 하면 좋고. 돈은 많을수록 좋다. 지위는 높을수록 좋을까? 안 해봐서 모르겠다 이건.


나만의 기준을 달성해나가는 삶. 그러다 사회적 보상을 받기도 하고. 아니면 말고.


(조지 버나드 쇼/1856-1950)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두 문장을 보고 '됐다, 이거다' 싶어서, 책을 덮었다. 그래도  권은 다 읽고 끝내야 개운해서 나머지는 쓱쓱 넘겨가 읽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 80 정도에 답장을 썼다. 나이와 커리어를 고려해보면 심오 답이 나올 법도 하지만 답장은 딱 두 문장으로 끝난다. 맥주 한잔 하면서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했을  같다.


"아 뭐 그딴 질문을 해 술맛 떨어지게, 그냥 마셔. 니 이상한 생각 좀 그만해라, 그냥 사는거지. 꼴리는 대로 살아"


속이  시원하다. 살아가는 내내 '내가  사는가'라는 질문이 난데없이 찾아오거나, 정확한 목적지도 모르고 죽어라 뛰어갈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경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거다. 왜 그러고 있니?


그때 아마 답을 잘 못 내릴 거다. 그럴때는 그냥 적당히 하고 '답은 아무도 모르는거야'면서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답이 나올거고, 안나와도 어쩔  없고. 그런 질문에 누가 제대로 정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살다보면 찾게되고, 또 까먹고 뭐 그렇게 될 것 같다.




# 심심할때, 머리 아플때 읽으면..


이 책은 약 100년 전에 살았던 청년, 중년, 장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글에 담지 못했지만, 버트런트 러셀,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등 쟁쟁한 사람들의 편지도 들어있다. 물론 철학자인 저자의 생각도 담겨있다.


학문적 지식이나 팩트를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읽는게 무겁지는 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꽤 많은 사람의 '삶에 대한 시각'이 담겨 있는지라, 독자에게 와닿는 이야기가 적어도 하나는 있을 거다.


다양한 사생각엿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삶의 이유'에 대해 명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이거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니까 그렇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점유한 사람의 생각만이 담겨 있다는 거다. 그 당시를 살아가던 '보통 사람'의 생각은 어떨지가 궁금하다. 뭐 그건 나중에 다른 책이나 영화로..


한 자기계발서가 지루했던 사람, 삶의 이유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치관이 궁금한 사람, 심심한데 머리아픈 책은 싫은 사람이 읽으면 분명 재밌게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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