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나누는 삶의 의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헨리 멩켄/1880-1956) 어쩌다 보니 나는 사상에 대해 강렬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흥미를 품고 태어났으며, 그것들을 갖고 놀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그것들을 말로 옮기는 데 평균보다 나은 재능도 가지고 있지요.
나는 작가이자 편집자입니다. 언어의 중개인인 동시에 제조자이지요. 전반적으로 나는 정확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없습니다. 나는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글을 쓰고 출판을 해 왔으니까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사실 전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의심스럽고요. 내가 아는 건 삶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지속되는 동안 상당히 즐거웠다는 것 뿐입니다.
(윌 로저스/1879-1935)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그러니 웃을 일을 만들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자. 아무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지금 이 세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확실히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이전 세대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이전 세대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구하려'하지 말자. 간절히 구할수록 오히려 함정에 가까워질 뿐이니까.
하나의 이상에 헌신하지 말자. 그건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말을 달리는 일과 같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호수는 이미 없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관해 뭔가를 믿는건 괜찮지만 그곳이 이러이러할 거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지는 말자.
패배할 때마다 한 발짝 앞서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칼 래믈리/1867-1939) 내 경험에 따르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과도한 자기 성찰의 희생양 같더군요. 당신은 "무엇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나의 대답은 모든 헛똑똑이들도 비웃을 만한 것입니다.
바로 '일'이지요.
나는 내 아이디어가 형태를 갖추어 구체적 결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활력을 얻습니다. 많은 아이디어가 결국 실현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것이 실현될 경우의 기쁨을 앗아가진 못합니다.
나는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좋아하고, 내 일로 경제적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은 오롯이 일 자체, 그리고 성취감입니다.
내 생각에 그건 아마도 내 아이들과 손주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거의 광적인 열망일 겁니다.
당신이 "진리의 발견이야말로 인류 역사 최대의 실수였다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라고 적은 것은 농담인지 뭔지 모르겠군요. 대체 그런 발견이 언제 있었습니까? 내가 보기에 우리 모두는 여전히 자기 나름대로 진리를 발견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현자가 되어 지나친 추상적 사고에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우울과 절망을 받아들이느니,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업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헬렌 윌스/1905-1998) 인생에 관해 깔끔하고 완벽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느낌이야말로 젊음의 증거라고들 하더군요.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상당히 나이를 먹은 게 분명하네요. 그 무엇에 관해서도 좀처럼 확신할 수가 없으니까요.
내가 확실히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내 마음속에 항상 머물러 있는 듯한 불안을 해소할 수단입니다. 이 같은 불안, 어느 정도의 완벽함에 도달하려는 끝없는 바람이 특이한 형태의 자만심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내게는 바로 그것이 종교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매진함으로써 순간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슬픔과 초조와 분노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구나 자신의 감정이 유일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지금 내 마음속의 불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고 있고요. 하지만 어쩌면 이 불안한 나라에 사는 내 또래 모든 젊은이의 가슴속에서 똑같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계속 움직이면서 모종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설사 내게 재능이 부족하다 해도 움직이는 기쁨은 누릴 수 있겠지요. 게다가 희망은 항상 존재하니까요. 적어도 젊고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이지요.
내 생각에 아무래도 불안은 고질병 같아요. 테니스에 관해서는 별로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그것도 '불안에 따른 활동'이라는 분류 아래 속하니까요.
(조지 버나드 쇼/1856-1950)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