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의 히잡 분석 - <히잡은 패션이다>, 김형준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인도네시아에서 히잡 쓴 여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현지 조사를 했던 마을에서 히잡을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도시에서나 히잡 쓴 여성을 이따금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자 거리에서 히잡 쓴 여성을 찾아보기가 수월해졌고, 대학에서는 히잡 쓴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잡 유행이 대학교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사이에서 착용 비율이 상당히 높다. .. 히잡 미착용 여성은 사회경제적으로 중하층, 지역적으로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는 뜻이다.
패션으로서의 히잡에 열광한 또 다른 집단은 '비싼 차를 모는 상류층 여성, 경영인, 유명 연예인, 고위 관료, 전문직 종사자, 사회정치 분야 활동가'였다.
히잡 착용의 주요 목적은 종교적 의무 충족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대학생들은 이러한 의무가 신체를 적절하게 가림으로써 충족된다고 생각했다.
아니사(대학교 졸업)와의 인터뷰
1년여 동안 그녀는 차다르를 착용했고 결혼 후 차다르를 벗었다. 차다르 쓰고 벗기에는 이슬람이 개입됐다. .. 또 다른 요인은 불특정 다수 남성의 시선이었다. 남성의 치근거림, 성욕으로 가득찬 시선, 성적 상상은 차다르를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히잡에 대해 '교과서적' 시각을 드러냈고, 강력한 남성 중심적 시각을 내재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가족으로 국한된다고 지적한 후 자신의 몸은 궁극적으로 자신과 남편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성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가 보수적 무슬림에게서 나왔고, 그것이 급진적 무슬림에 의해 강력히 추동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복장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현대적이고 서구화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히자버는 보수 세력의 비판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인 중 이슬람 신자인 사람은 극소수이며, 국내 무슬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이주자 역시 자기 목소리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없는 처지다. 상황이 이렇다면 노력을 시작해야 하는 쪽은 한국인이 아닐까. 그래야 주변 세계를 좀 더 관용적으로, 배타적이지 않게, 균형 있고, 편견 없이 존중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히잡 연구를 시작했고, 이 책을 쓰게 됐다. 미진하나마 이 책을 통해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복장을 착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슬림 여성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과의 교류를 스스로 제약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