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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y 08. 2020

우리나라 복지제도, 마음에 드세요?

사회학자의 한국 복지제도 분석 - <복지의 원리>, 양재진

# 복지국가 대한민국


20세기 중반까지, 국가가 왜 복지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지를 두고 많이 싸웠다. 가난과 불운은 개인 책임이라는 측과 반대 측이 갈등했다. 결국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 인한 고통은 국가와 개인이 분담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2020년 현재, '복지 제도를 나라가 왜 운영하냐'고 따지면 '올드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나 복지의 당위성을 인정한다. 다만 '어떤 복지'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을 뿐이다.


그간 '한국에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보험 제도를 비롯해 국민연금, 실업보험 등의 복지 제도가 있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전공책 읽기도 부담스럽고 해서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양재진 교수가 쓴 <복지의 원리>라는 책을 만났다. 부제목이 <대한민국 복지를 한눈에 꿰뚫는 10가지 이야기>다. 나 같은 문외한도 한눈에 읽어나갈 수 있는 친절한 책이다. 내용도 알차다.


이 책은 복지국가의 역사적 배경, 주요 국가와 비교한 우리의 복지 수준, 의료보험, 국민연금, 퇴직연금, 노동시장 정책, 기본소득, 증세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간추려보려고 한다. 또한 저자가 계속 주장하는 '증세'가 가능한지 확인하고자, 우리나라의 조세 현황과 시민들의 인식을 좀 찾아봤다. 이게 좀 흥미로웠다.






# <복지의 원리>

* 박스안은 인용구


국민연금


현재의 국민연금이 저부담-고급여 체계이기 때문이다. 약속받은 연금에 비해 보험료를 너무 적게 낸다.


그간 국민연금은 쥐꼬리만한 돈을 준다고 욕을 꽤 먹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후한 편이었다. 우리 국민연금은 걷은 돈보다 더 나눠준다.


서구 복지국가를 평균적으로 따져보면, 연금 보험료는 소득의 20%,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40% 수준이다. 우리는 소득 대체율은 40%로 동일하지만, 연금 보험료는 9%에 불과하다.


국민용돈이니 뭐니 하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납입한 기간'이 짧아서 그런면이 크다. 이제 곧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재직기간 내내 연금 보험료를 납부했다. 그들이 받게될 연금의 가성비는 뛰어나다.


미래에 받는 연금액이 예측 가능하고 사망 시까지 받을 수 있는 확정급여 방식의 공적연금이 노후소득 안정성 측면에서 단연 유리하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고령화시대에, 국가는 재정 파탄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저자는 듣기 싫은 말을 한다. 그는 보험료를 더 내거나, 지급액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은 '퇴직하면 A만원 드릴께요'라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대한민국은 고령화 속도와 출산 감소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설계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수급 인구도 급증한다. 인구의 20% 가량을 점유하는 386세대가 곧 연금을 받는다. 가장 수가 많고, 가장 부유한 세대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너그러운 연금을 받을 거다. 저자는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만큼, 그들의 손자-손녀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웨덴은 1999년에 연금 제도를 손봤다. 그들도 원래 우리처럼 '퇴직하면 A만원 드릴께요'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상황 봐가면서 줄께요'라고 선언하고, 보험료도 올렸다. 반대와 저항이 엄청났지만, 제도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의료보험


OECD의 그 어떤 복지국가보다도 건강 관련 성과가 가장 우수한 국가가 되었다.

5가지 핵심 지표 중, 평균수명과 65세의 기대수명은 OECD 평균 이상이고, 심혈관질환 사망률, 치매 유병률은 OECD 평균보다 훨씬 양호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전세계의 이목을 끈다.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 비용으로, 높은 혜택을 얻는다. 70년대부터 도입된 의료보험제도가 이를 가능케 했다. 미국은 우리보다 1인당 의료비 지출이 더 높지만, 건강 지표는 우리가 더 우수하다.


저자는 또 싫은 소리를 한다. 그는 의료보험도 손 봐야한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이용률을 눈여겨 봐야한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문턱이 낮아서,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병원을 간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이게 더 큰 문제가 된다.


종전까지 우리는 OECD 국가에 비해 고령화율이 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 수준이었다. 헌데 고령 사회 진입이 본격화되고 있고, 따라서 의료비 지출은 급증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의료비 경감 대책으로 문재인 정부는 웬만한 비급여항목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으로 바꾸고 신규 급여항목의 수가를 낮추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모든 의학적 비급여항목의 급여화(초음파/MRI 등), 둘째 국민들에게 부담이 큰 3대 비급여항목(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의 해소, 셋째 본인분담금 상한액을 대폭 하향 조정 ..


지금 우리 의료보험이 나아가는 방향은 '보장성 강화'다. 그간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은 잘 케어해줬지만, 암과 같은 중증 질환은 케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에 따라 중증 질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걸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도 '보장성 강화'라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한다. 그러나 재원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장성만 강화해서는 지금의 시스템이 유지되기 어려울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의료비 지출 통제를 병행할 것을 주문한다. 시민들의 과잉 이용, 의사들의 과잉 진료를 막아야 한다. 상급병실-선택진료-간병비는 '필수의료'로 보기 어렵기에, 급여화는 신중해야 하며, 상급병원 과잉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주치의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앞으로 가야할 길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 복지국가의 복지 프로그램 구성에서 특이한 점은, 고령화와 연관된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통제되어 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보육 등 사회서비스, 그리고 아동수당-육아휴직급여-실업급여 등 근로연령대 인구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일본 같은 나라들은 연금과 의료비 지출 비중이 높고, 근로연령대 인구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스웨덴과 이탈리아 중 복지에 누가 더 많은 돈을 쓸까? 2016년 OECD 발표에 따르면 GDP 중 공공 사회지출 비율은 스웨덴이 26.4%, 이탈리아가 28.3%다. 이탈리아가 스웨덴보다 복지에 더 많은 돈을 쓴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더 나은 복지 체계를 갖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돈을 잘 써야한다.


저자는 직업 교육, 육아휴직 수당, 실업 급여 등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도 잘 가꿔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라는 나무에 열매가 꾸준히 열려야, 그 열매를 분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빚내지 않고 늘어날 복지비용을 감당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저자는 복지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증세'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이게, 쉬운게 아니다.


서구 복지국가의 고부담-고복지 체계는 자본주의 황금기인 20세기 중반에 완료됐다. 그 나라들, 성장률이 9%까지 올라갔었을 때다. 그런데 우리는 1-2%대 저성장 국면에 돌입했다. 세금 더 걷는다고 하면, 글쎄..


선거제도도 우호적이지 않다. 지역구-대통령제 국가라,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모든걸 가진다. 비례대표제-의원내각제의 유럽 국가는, 선거에서 진 야당 출신이 재무장관도 하고 그런다. 연립내각이라고 부르는데, 정치적 책임이 분산되니까 시민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거, 같이 욕 먹어가면서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전히 '여당'이 책임져야 한다. 이걸 누가 하고 싶어할까? 저자는 이러한 점을 들어 큰 폭의 증세가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같은 고부담-고복지 사회가 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재밌게 잘 봤다


이 책은 우리 복지 제도 전반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다양한 통계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이론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스웨덴과 자주 비교해주는데, 이것도 인상 깊다. 복지국가는 변수가 아닌 상수다. 우리 시대의 장기적 트렌드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세금'과 관련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국민은 세금 걷는걸 반대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낼까? 연구 결과를 좀 찾아봤다.





# 돈을 더 내는건 싫은데?   


2014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발표했다. 이거, 하나하나 뜯어보면 되게 재밌다. 나이, 성별, 지역 등을 고려해서 우리 국민 5,940명을 뽑았고, 이들에게 정부의 역할, 삶의 만족도를 물어봤다. 나는 여기서 '세금' 부분에 집중하려고 한다.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14)



본인이 내는 세금 수준이 '낮다'고 응답한 사람은 6%도 안 된다. 무려 44%에 달하는 시민이 '높다'고 응답했고, 50%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지금 많이 내거나 적당하게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세금 더 내라고 하면 화내지 않을까? '나 말고 더 여유있는 사람한테 걷어가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14)



실제로도 그렇다. '고소득층의 세금 수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무려 80%의 사람이 '낮다'고 응답했다. 지금 상황에서 증세를 추진할 때, '세금 부담이 적은 고소득층한테 더 걷어가라'는 반발에 마주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14)


5,940명의 계층 의식을 조사해봤더니, 무려 91%의 사람이 '중상층 미만'이라고 대답했다. 하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0%이고, 중하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32%나 된다. 찾으면 찾을수록, '나말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내야지!'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14)


대놓고 물어봤다. '소득세 수준은 어떠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12%만이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낮춰야 한다는 비율도 40%은 달했다. 정치인이 '증세 담론'을 꺼려하는 이유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얘길 은 기억이 있다. 가족을 죽인 원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돈 뺏어가는 놈은 평생 기억한다고.


통계적으로 볼때, 사람들은 '부자가 세금을 많이 안 낸다'고 생각한다. 그게 과연 사실일까?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분석 - 예산정책처('18)


2018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분석>이라는 보고서다. 통합소득은 근로소득 + 사업소득 등을 모두 합한 소득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때, 상위 1%가 소득세의 40%를 낸다. 상위 5%까지 포함하면 66%, 상위 10%까지 범위를 넓히면 80%다.  


통합소득 기준, 상위 10%가 소득세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소득을 다 가져가서 그런거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다. 일정 부분 맞다.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분석 -  예산정책처('18)


세전 소득을 기준으로,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내는 소득세가 전체의 90% 정도다. 누진세 구조 때문이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잘 모른다. 그래서 세금 부담이 낮다-높다,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려고 쓴 글도 아니고. 다만 지금까지 나온 통계를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추론 정도는 가능해보인다.


(1) 일반 시민들은 소득세 인상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2) 대신 부자 증세는 찬성한다.

(3) 헌데 부자들은 이미 소득세를 꽤 많이 내고 있다.

(4) 어느 계층의 시민에게도 세금을 더 걷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복지의 원리>의 저자 양재진의 말마따나,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정치가 나서야 한다. 책임감 있는 지도자가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금이 필요하다. 책임지고 잘 써보겠다. 믿어주시라'고 말하며 담론을 펼쳐나가야 한다. 아니면 복지를 줄이든지.. 빚을 계속 내든지..


흥미로운 통계 하나를 던지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국세청 통계다. 2017년 연말정산 신고자는 1,800만명 정도인데, 이 중 세금을 안 내는 비율이 40%다.


국세 통계연보 - 국세청('18)


[참고자료]

정부역할과 삶의 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14)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분석 - 국회 예산정책처('18)

국세 통계연보 - 국세청('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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