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에 선입견이 있었다. 그게 회사 입사하고 생겼다. 연수원 처음 들어가자마자, 뭐 예행연습 같은 걸 했었다. 장관님인가? 높은 분이 오신다기에 편한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옆자리 앉은 형은 끊임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계속 핸드폰을 껐다, 켰다 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랑 썸타고 있나 싶었다. 훗날 그 형이랑 기숙사 같은 방을 쓰면서 친해졌다. 주식하는 형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일하면서 저거 못하겠다. 멘탈 녹아내리겠다, 관심끄자.'
그러다 얼마 전부터 주식을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었다. 돈 따는 것도 짜릿하기는 한데, 뭔가 새로운 거 알아가는게 진짜 재밌었다. 게다가 이게 내 흥미랑도 매칭된다. 산업 구조 공부하고, 리서치 페이퍼 찾아보고, 기업의 사업보고서 보면서 성장 스토리 알아가고 하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러다 워렌 버핏이라는 할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재산이 80조가 넘는다는데, 도대체 뭘 한거야? 그간 워렌 버핏이 버크셔 헤서웨이라는 회사를 통해 투자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좀 찾아봤다. 수익률은 얼마나 되고,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되고..
# 시장을 이기는 버크셔 헤서웨이
Berkshire Hathaway Letter to the Shareholder('20)
위의 그래프는 버크셔 헤서웨이 주가와 S&P500 지수의 연도별 성장률을 보여준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버크셔 헤서웨이의 성장률이 S&P500보다 높았다. 특히 60-90년대에 압도적으로 높았다.
워렌 버핏은 매년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주주 서한이라고도 불리는데, 거기 맨 앞부분에 이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1965-2019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은 버크셔 헤서웨이 20%, S&P500 지수는 10%다.
버크셔 헤서웨이가 2배 가량 높다. 시장을 압도했다. 만약 1965년, 버크셔 헤서웨이에 1달러를 투자했으면, 지금쯤이면 2.7만 달러가 됐다. 1000원이 3천만원이 된 셈이다.
2019년을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이때는 S&P500 지수 수익률이 훨씬 높았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성장률은 11%인 반면, S&P500 지수의 성장률은 30%다. 버핏이 꽤 크게 졌는데, 이건 그의 포트폴리오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자.
# 할아버지, 뭘 사신거에요?
포트폴리오 구성은 종종 바뀐다. 찾아보니까 소스가 꽤 다양했다. 그 중에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CNBC가 발표한 자료를 골랐다. CNBC는 (1) 2019년 12월 31일에 워렌 버핏이 미국 SEC에 보고한 자료와 (2) 20년 4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포트폴리오 관련 자료를 취합해서 발표했다. (링크)
19년 말 기준, 버크셔 헤서웨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총 2,480억$이었다. 20년 1분기에는 1,800억$으로 감소했으며 각각 300조원, 200조원에 달한다. (환율 1200원 적용)
위의 그래프는 포트폴리오 비중 상위 20개 기업을 보여준다. 저 20개 기업 비중이 95.7%나 된다.
이걸 보고19년 버크셔 헤서웨이의 수익률이 S&P500 지수보다 낮았던 이유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19년에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으로 대표되는 '테크 기업'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했다. 얘네들이 주가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버핏의 포트폴리오는 좀 올드하다. 상위 20개 기업 중 '빅 테크' 기업은 애플, 아마존 두 개 밖에 안 보인다. 뱅크오브 아메리카, 비자,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크래프트 하인즈 같은 금융, 소비재 기업이 다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트렌드와는 좀 동떨어져 있다.
버핏은 데이터·AI 시대의 총아라고 불리는 페이스북, 구글에는 관심을 안 준다. 전기차에도 관심 없나? GM은 샀으면서 테슬라는 안 샀다. (물론 GM도 전기차 시도하긴 한다) 인텔, 엔비디아, AMD 등 잘나가는 반도체 회사에도 눈길을 안 준다. 미국에는 길리어드를 비롯한 유수의 제약 회사가 있지만, 바이오 회사는 Davita 하나 뿐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보유 비중이 높은 20개 중 10개가 금융 회사다. 소위 '신산업'과 관련된 회사는 잘 안보인다.
그런데 또 웃긴건금융 회사를 주로 보유하고 있는건 맞는데, 보유 금액으로 따지면 '애플'에 40%가 몰빵되어 있다는 거다. 옛날에 금융경제학 공부할 때 포트폴리오 이론을 배운 적이 있다. '모든 계란을 단 하나의 바구니에 담지 말라'였나. 대충 '몰빵은 필패다'는 게 요지였다.
근데 그는 수천조를 굴리면서 그 중 40%가 애플이라는 기업에 몰빵되어 있다. 물론 다른 기업보다 급성장한 것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경기 상승주-하락주가 결합된 아름다운-과학적인 포트폴리오를 기대했었다. 이건 뭐..
막상 까보니, 별 재미가 없었다. 이거 찾아보면서 미국의 유망 기업을 공부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난 엔비디아에는 관심이 있지만 코카콜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는 코카콜라에만 관심을 줬다. 아쉬웠다.
오히려 버크셔 헤서웨이가 SEC에 제출한 사업보고서가 흥미로웠다. 2019년말, 워렌 버핏은 현금 보유 비중을 대폭 늘렸다. 미래에 사용할 '총알'을 엄청나게 확보해 놨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재무상태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보유액과, 이게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보면 알겠지만, 19년을 기점으로 확 올라갔다. 우리 언론은 현금성 자산이 1,280억$로 사상 최대치라고 보도했는데, (링크) 그건 미국 국채 보유액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그런데 사실, 국채까지 포함한 금액으로 따지면 2019년에 특별히 높아진 건 아니다. 그 값이 18년에 1,129억$, 17년에 1,100억$ 정도 됐었다.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년 15.7%, 18년 16.0%로 오히려 19년에 줄어들었다.
바로 쓸 수 있는 총탄인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늘어난 게 중요하다. 이게 19년 전까지는 전체 자산 중 4%대였다가, 19년에 8%로 급증했다. 18년 300억$에서 19년 645억$로 2배 이상 늘은 셈이다. 19년에 돈을 안 썼다. 그는 기업의 주가가 고평가됐기 때문에 살만한 주식이 없다고 말했다.
20년 3월, 코로나가 주식시장을 붕괴시켰다. 주가는 엄청나게 싸졌다. 그는 현금을 썼을까?
5월 4일날 미국 SEC에 제출한 버크셔 헤서웨이의 1분기 사업보고서다. 워렌 버핏은 현금을 썼다. 분명 무언가를 구매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640억$에서 430억$로 줄어들었다. 어디다 썼을지 짱구를 굴려보자. 미국채 보유액은 증가했고, 주식 보유액은 감소했다. 그러면 미국 국채를 주로 산건가?
단정지을 수 없다. 미국 국채 보유액이 638억$에서 946억$로 증가한 건 맞다. 그런데 요즘 미국 국채 금리가 엄청 낮아졌다. 미국 국채의 가격은 올라갔다는 거다. 이 경우 미국 국채를 구매하지 않았어도, 미국 국채 자산의 평가액은 증가한다.
주식 보유액은 2,480억$에서 1,807억$로 감소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주가는 그간 녹아버렸다. 작년에 100원 짜리였던게 지금 70원 밖에 안 된다. 추가 구매를 10원 정도 해도, 주식 자산은 80원 밖에 안 된다. 주식 보유액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주식을 안 샀다고 확언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분명 어디에다 돈을 쓰긴 했다. 주식도 샀을 거고, 채권도 샀을 거다. 주식을 분명 사긴 했을 텐데, 정확히 확인하기는 아직까지 좀.. .
버핏의 포트폴리오를 찾아보고 느낀 건,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는 거다. 재미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재밌었다. 애플 몰빵 포트폴리오, 금융주 위주의 포트폴리오.. 흠.. 유망 기업들 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