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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n 22. 2020

애플은 스마트폰 회사가 아니다

왜 아이폰 SE를 출시했을까

# 저가형 모델, 아이폰 SE의 출시


아이폰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대명사다. High-End 시장은 아이폰과 갤럭시로 양분되어 있는데, 그 중 아이폰이 더 '영'하고, '엣지'있어 보인다.


괴짜 천재인 스티브 잡스의 성공 스토리, 한 발 빠른 고급 디자인 등이 지금의 아이폰을 만들었을 거다. 게다가 높은 가격을 당당하게 제시하는 아이폰은, 사치재의 아우라도 뽐낸다. 갤럭시 S시리즈도 아이폰만큼 비싸지만, 느낌은 좀 다르다.


그랬던 애플이 얼마 전 399$ 짜리 스마트폰, 아이폰 SE를 출시했다. 전작에 비해 반값도 안 된다. 전작인 아이폰 11 PRO의 가격은 1,000$을 훌쩍 넘겼다. 비싼 가격이지만 잘만 팔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갤럭시 S10 시리즈가 3,600만대 팔리는 동안, 아이폰 11 시리즈는 6,100만대가 팔렸다. (링크) High-End 시장에서 애플은 삼성을 압도한다.


애플의 전반적인 경영 실적도 우수하다.


지난 5년간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20%를 꾸준히 상회했다. 최근 발표된 20년 1분기 영업이익률도 24%로 매우 높다. 제조업 기업 중 이렇게 높은 영업이익률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회사 몇 안 된다. 20년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0%대이다.


https://finance.yahoo.com/quote/AAPL/financials?p=AAPL


애플의 수익성은 누구나 만족할 만큼 높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왜 굳이 저가형 모델을 런칭하나 싶었다.  페라가모가 40만원 짜리 가방을 계속 팔아제끼면, '페라가모' 브랜드 가치는 하락할 거다. 애플도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보고 있는데, 아랫 급간의 제품을 출시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심심해서 좀 찾아봤고, 몇 가지 가설을 만들어냈다. 나는 대단한 컨설턴트도 아니고, 애널리스트도 아니다. 다만 재무제표랑 리서치 보고서 몇 개를 좀 찾아봤더니, 숫자에 기반을 둔 추측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려고 쓴 글이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길..


애플은 왜 저가형 모델 아이폰 SE를 만들었을까?





# 휴대폰 점유율의 저변을 확대하자


앞서 언급했듯, High-End 시장에서는 애플이 삼성보다 잘나간다. 이유를 한 두가지로 콕 찝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아이폰 11이 갤럭시 S20보다 더 '있어' 보인다. 스펙과 성능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브랜드에 입혀진 '스토리'문제가 아닐까 싶다. 테슬라의 전기차와 폭스바겐의 전기차는 느낌이 좀 다르다.


https://gs.statcounter.com/vendor-market-share/mobile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스마트폰은 삼성 갤럭시 시리즈다.  시장조사기관 Statcounter에 따르면 20.5월 기준, 전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은 삼성이 30.2%, 애플이 26.7%로 삼성이 더 높다. High-End 시장에서 애플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급-저가형 모델에서 삼성이 애플을 압도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북미와 유럽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애플보다 확연히 높다. 북미 지역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50%를 상회하지만, 남미에서는 10%, 인도에서는 한 자릿수이다. 유럽 전체로 보면 삼성은 30%를 훌쩍 넘지만 애플은 이에 못 미친다.


https://gs.statcounter.com/vendor-market-share/mobile


기업의 목표이윤 극대화라고 단순하게 가정할 경우,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저가형 모델의 목적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바로 '그간 열위에 있었던 저가형 시장에서의 저변 확대'가 목표라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다. 20%대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달성하는, 세상에 몇 안되는 회사인 애플이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저가-보급형 모델을 출시했냐는 거다. 자꾸 '저가형 모델'을 공급하면 프리미엄 이미지가 떨어질 수도 있고, 이는 High-End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는 애플의 재무제표를 좀 들여다 봤고, 점유율 확대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봤다.


애플은 지금 스마트폰을 '하드웨어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보고 있으며, 더 많은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 유입되는 걸 목표로 하는 것 같다. 플랫폼 진입 비용이 저렴해야 사람들이 부담없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저렴 모델, 아이폰 SE를 출시했다. 그렇다면 애플은 왜 플랫폼 유저 수를 확대하려고 할까? 재무제표를 좀 더 살펴보자.

 





# 재무제표를 좀 뜯어보자


애플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재무제표다. 애플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고,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가 기재되어 있다. 이에 더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냐'도 적혀있다.


아래 그래프는 20년도 1분기 매출액의 구성요소다.   


https://www.sec.gov/ix?doc=/Archives/edgar/data/320193/000032019320000052/a10-qq220203282020.htm


전체 매출을 100이라고 할 때, 아이폰 판매를 통한 매출이 50%가 안 된다. 20년 1분기 매출액 580억$ 중 아이폰 판매액은 289억$다. 나는 그래도 한 70%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출액 중 아이폰 판매액 비중이 낮았다.


대신 에어팟 등 악세서리가 63억$, MAC이 53억$, 아이패드 판매액이 43억$로 각각 10.8%, 9.2%, 7.5%를 차지한다.


나머지 23%는 앱스토어, I-Cloud와 같은 소프트웨어 매출액이 점유하고 있다. (133억$) 소프트웨어 매출 비중이 20%가 넘는 제조업 회사 찾는게 쉽지 않다. 과거의 애플이 제조업 회사 였다면, 이제 플랫폼을 소유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성격이 가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매출의 50% 가까이가 아이폰 판매에서 창출되기 때문에, 애플을 제조업 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애플 매출요소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생각이 좀 바뀔 수도 있다.


https://www.sec.gov/cgi-bin/browse-edgar?CIK=AAPL&action=getcompany&owner=exclude


5년전인 2015년, 애플 매출액의 66%가 아이폰 판매에서 나왔다. 그때만 해도 소프트웨어 매출액 비중은 10%도 안 됐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소프트웨어 매출액 비중은 2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이폰 판매액 비중은 49.7%로, 5년 전에 비해 약 20%p 감소했다. 아이폰 팔아서 버는 돈보다,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를 통해 버는 돈의 무게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 변동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라고 볼만 하다. 요즘 사람들은 은행에 안 간다. 스마트 뱅킹으로 다 한다. 원격 의료가 활성화되면, 굳이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앱만 다운 받으면 된다. 앞으로 삶의 많은 분야에 '스마트폰과 앱'이 섞여들어 갈 거다.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 수익, 즉 소프트웨어 매출액은 꾸준히 우상향하게 된다.  


이는 '수익의 퀄리티' 측면에서도 애플에게 유리한 변화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제품 생산 비용이  소프트웨어 개발&유지 비용보다 훨씬 높다. 똑같이 100만원의 수익을 기록할 경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이 남겨 먹는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https://www.sec.gov/cgi-bin/browse-edgar?CIK=AAPL&action=getcompany&owner=exclude


20년 1분기 애플의 매출액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제품 판매로 약 450억$ 벌었다.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 매출액은 약 134억$이다. 규모로 보면 약 3배 차이다.


그런데 매출액에서 원가를 제외 매출총이익을 살펴보면, 그 차이 급감다.


매출총이익의 경우 제품 판매 부문이 136억$, 소프트웨어 부문이 87억$다. 매출총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둘의 차이는 1.5배로 좁혀진다. 소프트웨어 부문의 원가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매출총이익률은 제품 부문이 30%, 소프트웨어 부문이 65%로 소프트웨어 부문이 2배 이상 높다.


애플 입장에서는, 소프트웨어 매출액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들 거다. 더 많이 남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깟 아이폰, 싸게 넘겨줄게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용해야 한다. 가격 문턱이 낮아져서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애플 생태계'에 들어오기만 하면, 앱스토어 등을 통 소프트웨어 수익을 꾸준하게 거둬들일 수 있다.


큰 비용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앱스토어 운영한다고 대규모 공장이 필요한 건 아니다.  데이터 센터 등 초기 인프라만 잘 구축해놓으면, 낮은 한계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핸드폰 파는 것보다 남겨먹는 비율은 더

높다.


아이폰이 박살나기 전까지, 소비자는 자의든 타의든 앱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앱을 계속 다운받는다. 사람들은 종종 게임을 하면서 결제도 할 텐데, 중간에 애플은 수수료를 떼어간다. 아 참, 애플페이 수수료도 따로 있다. 껌 한 조각에도 부가가치가 붙는 것처럼, 애플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수수료를 매긴다.


돈이 되는 OTT 시장에도 진출했다. 얼마전 애플은  OTT 서비스 애플 TV+를 출시했다. 아이폰으로 넷플릭스 좋은 일 시켜주지 말고, 직접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거다. 사용자와 넷플릭스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거둬가는 '중개비용'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헬스케어 시장도 넘본다. 애플워치4는 심전 측정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아이폰과 연계할 경우, 하루 이동량, 심전도 등을 토대로 맞춤형 건강 컨설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래에는 애플워치가 심근경색 등 건강 이상을 확인하고, 아이폰을 통해 구조대를 호출하거나 적합한 병원을 추천해주는 게 가능해질 거다.


이처럼 소비자가 구매한 모델이 아이폰 11 PRO MAX든, 아이폰 SE지와는 무관하게, '아이폰 생태계'에 들어오기만 하면 애플은 꾸준히 소프트웨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게다가 에어팟 등 액세서리 판매 수익도 쏠쏠하다. 지금 매출액의 10%가 여기서 나온다. 아이폰을 쓰는 사람이 굳이 갤럭시 버즈를 살까? 아마 에어팟을 살 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용하게 되면(그게 저가형 모델이라도), 액세서리 판매 수익은 당연 더 증가할 거다.


이번 아이폰 SE는 애플 플랫폼 확장을 위한 '미끼'로 느껴졌다. 아이폰 SE 팔아서 돈 벌어먹겠다는 것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애플 플랫폼'에서 돈을 쓰게 만드는 '미끼' 같은 느낌이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살짝 두려웠다. 워렌 버핏이 구글 알파벳 등 Big-Tech 기업의 주식은 매수하지 않았으면서, 왜 애플 주식은 보유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애플은 단순히 '높은 성능의 스마트폰'을 팔아먹는게 목표 아닌 것 같다. 뭔가 자기들만의 '제국'을 만들려는 느낌이 든다.


스마트폰은 애플 제국에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 같은 거고, 이 제국 안에서 앱 스토어, 애플 페이, 애플 TV 세금을 계속 거둬가는.. 실제로 유럽에서는 앱스토어 수수료를 Apple-Tax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금은 탈세라도 가능한데, 앱수수료는 이마저도 힘들다.


이에 반해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아직도 뭔가 '휴대폰 제조사' 느낌이 확확 난다. '성능이 더 좋은, 디자인이 파격적인', 뭐 이런데 집중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혹여 그렇게 해서 애플과 하드웨어 경쟁에서 이겨도, 슬그머니 웃고 있는건 구글일 거다.


삼성이야 핸드폰 한번 팔아먹으면 끝이다. 그렇지만 구글은 삼성이 팔아먹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앱스토어 운영을 통해 수수료를 거둬간다. 플랫폼 생태계를 갖춘 애플은 승리의 과실을 온전히 본인들이 독점하지만, 우리 삼성은 남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


애플, 좀 무섭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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