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기업과 산업이 튼실하면 수출이 잘 되고, 아니면 안 된다. 기업과 산업이 수출로 성장하면 일자리도 생기고 세금도 걷힌다.
수출 실적은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서강대학교 김영익 교수는 수출자료과 KOSPI 지수와의 관계를 분석했다. 아래 그림이다. 수출과 KOSPI 지수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http://now.rememberapp.co.kr/2019/09/18/5008/
그간의 수출 추이만 대강 봐도, 투자자와 노동자의 입장에서 도움될 점이 꽤 있다. 투자자는 보유중인 주식의 매도 여부, 유망한 투자 산업을 파악할 수 있다. 노동자는 취업, 이직 섹터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수출은 거시적으로는 대한민국 경제의 성적표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산업과 기업의 스토리가 있다. 이 글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다룬다.
(1)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2) 지난 15년간 10대 수출 품목의 변화 양상, (3) 주요 수출 품목의 국민경제 파급효과와 앞으로 예상되는 수출 트렌드를 살펴본다. 짧게 짧게, 그림과 숫자로 정리한다.
#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수많은 지표가 있다. 고용률, 실업률, 설비투자지수, 주가지수 등 여러 가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GDP다.
GDP는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가치의 합'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한 국가에서 창출된 경제적 부가가치의 총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GDP는 2019년 1조6421억 달러로, 전 세계 10위다. (링크) 우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남들은 우리를 경제강국으로 본다. 우리나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 총생산에 대한 지출 - 한국은행
GDP 대비 수출 비중은 70년대초 10%대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세계에 내다팔 만한 부가가치 높은 상품이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섬유, 식품 등 경공업 산업이 주축이었다. 딱 봐도 되게 싸게 팔릴 것 같다. 하지만 70년대부터 국가 주도로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 산업이 수출증가를 이끌었다.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70년대 이후 수출이 지속 증가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자 GDP의 40-50%를 수출이 차지하게 됐다. 글로벌 무역갈등이 본격화된 2018년 이후에도 수출 비중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 증가와 수입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우리의 주력 산업은 중화학공업이다. 이 산업 구조의 특징이, 주요 장비-소재를 일본, 독일과 같은 기초 기술 강국에서 수입하는 점이다. 그러니수출이 잘 될수록, 장비-소재가 더 필요하기에 수입도 많아진다.
그러니 수입 증가를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한 나라가 모든 제품을 생산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핵심 장비-소재를 수입에 마냥 의존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재작년,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겁박했다.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재료로, 이게 없으면 생산이 어렵다.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수출을 막았다면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겼을 거다. 당연히 수출도 어그러졌을 테다. 생산에 핵심적인 부품, 소재는 국산화가 필요하고, 우리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특히 핵심 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얘네들은 2000년대 초반 반도체 만들 때, 90년대에 가전제품 만들때, 그전에 자동차 자립화할 때도 우리가 좀 성장한다 싶으면 부품공급을 끊었다.
어쨌든, 다시 수출로 돌아와서.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수출에 많이 의존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수출 비중은 어느정도일까?
GDP Component - OECD
18년 기준, 국가별 GDP 대비 수출 비중이다. 한국 42%, 독일 47%로 양국의 수출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 일본, 중국은 10%대이며 세계 평균도 30%에 불과하다.
높은 수출 비중은 양날의 검이다. 수출이 있기에기업과 산업이 경쟁력을 토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분쟁, 세계 경제 침체 등 외부 요인으로 수출이 흔들리면 우리 경제도 위험에 노출된다. 수출 비중이 10%인 국가보다 40%인 국가가 수출 저조에 따른 타격이 더 큰 건 자명하다.
미국, 중국은 수출 비중이 10%대이다. 필요하다면 희생을 감수하면서 무역의 벽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양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두 국가가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는 거다.
수출 통계 - 한국무역협회
17년 기준, 우리 수출에서 중국이 25%, 미국이 12%를 차지한다.
두 강대국이 싸운다. 미국은 보스턴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중국은 청두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철거시켰다. 시진핑은 미국 NYT, WP, WSJ의 기자들을 추방시켰다. (링크) 트럼프는 코로나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발원했을 거라고 말했다. 수긍할만한 증거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링크) 관계는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적 갈등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갈등도 진행중이다.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 기업인 LG 유플러스에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직접 명령했다. (링크) 미국 상무부는 미국 부품을 탑재한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링크) 경제를 무기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옛날부터 그랬다. 지난 17년, '싸드 설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여행 금지, 한류 금지를 명하는 '한한령'을 발표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고 있다.
앞으로의 수출은 산업, 기업의 경쟁력 같은 '경제적 역량'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 빠르게 적응하는 국가와 기업의 '정치적 역량'도 중요해질 거다.
# 우리나라의 수출구성
지금까지 거시적 차원에서 수출을 조망했다면, 이제 미시적 차원에서 수출을 분석해보자. 지금까지 다뤘던 수출은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을 의미한다. 재화는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으로, 서비스는 기생충, 게임, K-Pop 등 문화상품으로 이해하면 대강 맞다.
우리는 '수출'하면 부산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를 떠올린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배에 실어서, 다른 나라에서 판매하는 게 수출의 이미지다. 이건 '제조업 수출'로 분류되고, 수출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전체 수출 중 80% 이상이 제조업 수출이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전체 수출 중 10% 가량이 서비스 산업에서 나온다는 말도 된다. 2010년대, '한류'라는 용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드라마 도깨비, 영화 설국열차, 방시혁의 방탄소년단 등이 대표적인 한류 상품이다. 한국의 문화 상품이 세계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The Economist는 얼마전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18년, 우리 수출에서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 상품 수출액이 전통적인 '백색 산업' 수출액을 역전했다는 게 주 내용이다. 아래 그림이 이걸 보여준다.
Korea Special Report - The Economist('20)
보면 알겠지만, 도깨비,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문화 상품' 수출액이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가전 제품' 수출액을 뛰어넘었다. 문화 상품 수출액 증가도 고무적이지만, 이것의 파급효과도 주목할만 하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축적되면, 일반 제품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화장품이 대표적이다.
한류가 대두된 2010년대 초반부터, 화장품 수출액 규모가 커졌다. 2009년과 2019년비교 시, 수출 비중으로는 12배, 수출액으로는 14배 상승했다. 2019년 화장품 수출액이 65억 달러 정도 된다. 환율 1200원을 가정하면 8조 정도 규모다. 2009년에는 6천억원도 안 됐다.
화장품 산업 수출 추이 -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게다가 문화 산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산업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효과가 높다.(직관적으로 따져봐도 이 분야는 기계나 로봇보다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수출 중 80% 이상을 제조업이 차지한다. 이걸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15년간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한국무역통계 - 관세청
19년 기준, 제조업 수출액은 반도체가 1위 자동차가 2위다. 삼성전자, 현대차가 대표 기업이다. 경제에 큰 관심이 없어도, 두 기업이 제일 크다는 건 누구나 안다.
15년전인 2005년에는 어땠을까? 그때는 자동차, 석유화학 순이었다. 순위는 좀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주력 수출품의 종류 자체는 큰 변화가 없다. 2005년에 잘나갔던 10개 품목 중 7개 품목이 2019년에도 잘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산업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고 한다. 별다른 혁신이 없으니, 파는 물건만 계속 판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변화는 있다. 옛날보다 '남들이 만들기 어렵고, 그래서 더 돈이 되는 제품을 더 많이 팔게' 됐다.
즉,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의 수출 비중이 증가한 반면, 그렇지 못한 산업은 감소했다.
높은 기술이 필요한 산업을 고위기술 산업이라고 말하는데, 반도체, 의약, 통신기기가 대표적이다. 그보다 덜 높은 기술은 중고위기술이고 자동차, 석유화학이 포함된다. 이것보다 더 낮으면? 중저위기술로서 철강, 조선이 포함된다.
아래 그림을 보면, 고위기술 산업과 중고위-중저위 기술 산업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한국무역통계 - 관세청
전체 수출 중 고위기술 산업의 비중은 2005년대 23%에서, 2019년 36%로 증가했다. 중고위기술 산업은 2005년에 32%에서 2019년 40%까지 성장했다. (고위기술 + 중고위기술 산업 수출 비중)은 2005년 60%에서 2019년 70%로 10%p 증가했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셀트리온, 현대기아차가 고위기술, 중고위기술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에 반해 중저위기술산업, 저위기술산업의 수출 비중은 감소세다. 중국, 베트남 등 산업 후발국은 낮은 인건비와 국가 주도의 집중 투자에 힘입어 이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기술력만큼이나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분야라, 싼마이로 들이대는 그네들과 경쟁하기가 좀 힘들다. 앞으로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철강기업 포스코, 조선기업 현대중공업이 중저위기술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10대 수출 품목의 종류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순위 변동이 있었고,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의 비중이 확연히 높아졌다. 즉,우리 수출은 '고부가가치화' 되어가고 있다.
이제 각 산업이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각각의 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얼마나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지'를 확인한다.
# 기술군별 수출 산업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산업일수록 진입장벽이 높다. 그러니 아무나 만들기 어렵다. 경쟁이 덜 치열해지고, 독점력은 높아진다. 가격 협상력은 제고되고, 부가가치가 상승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더 많이 남겨먹을 수' 있다.
매출액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 즉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업경영분석 - 한국은행
18년 기준, 반도체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100원 어치 팔면, 인건비와 공장 가동비를 빼고 회사에 40원이 들어온다는 의미다. 엄청난 숫자다. 반도체와 함께 고위기술산업으로 묶이는 의약, 통신기기도 각각 8%, 20%에 달한다.
이에 비해 중고위, 중저위기술 산업인 자동차, 철강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1%, 6%대이다. 한때 잘나갔던 조선업은 세계교역량 저하, 중국과의 경쟁 격화로 영업이익이 적자다.
기술수준이 높은 산업일수록 영업이익률은 높다. 그리고 앞서 살펴봤듯, 우리 수출에서 기술수준이 높은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고용 측면을 고려하면 아쉬운 점이 있다. 기술수준이 높은 산업일수록, 성장이 고용으로 연계되는 효과가 좀 떨어진다.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취업유발계수란 '산업부문에 10억원 투자될 경우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취업자의 수'를 의미한다.
산업연관표 - 한국은행
위 그림을 보면, 취업유발계수는 반도체 2명, 통신기기 3명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자동차, 철강, 조선은 각각 8명, 5명, 8명나 된다. 그나마 의약 정도가 고위기술 산업 중에서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편이다.
과거 우리의 주력 산업이었던 자동차, 철강, 조선은 고용창출 효과가 큰 산업이었다. 그렇지만 새로이 떠오르는 반도체, 통신기기 등 IT산업은 과거 산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낮다.
그렇다고고용창출 효과 하나만 보고 조선, 철강에 옛날만큼 힘을 싣기도 어렵다. 중국, 동남아시아의 저가공세를 장기적으로 이겨내기 어렵다. 우리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부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만 봐도 부가가치가 낮은 벌크선, 컨테이너선 부문은 중국에 많이 잠식당했다.그렇지만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LNG선은 우리가 1등이다. 우리는 여기에 집중한다. 옛날만큼 '더 많이 만드는 전략'은 힘들고, '더 어려운 걸만드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파이가 좀 작아지게 되고, 옛날보다 고용은 덜 된다.
결국 반도체와 같이 우월한 기술이 필요한 첨단 산업을 더 많이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Post - 반도체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 앞으로의 발전 방향
18년, 19년 각각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1%, 18%를 차지했다. 국민 수출에서 하나의 산업이 20%를 차지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반도체는 고용과 변동성 측면에서 리스크가있다. 타 산업 대비 고용창출 효과가 좀 약하다. 특히 우리의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사이클'이 있다. 잘 될때는 무지 잘되고, 잘 안 될 때는 안 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억'을 담당한다. 클라우드 시스템, 핸드폰, 컴퓨터의 저장 장치로 사용된다. 이게 매일 새롭게 필요한 게 아니다. 한번 쟁여두면 몇 개월, 혹은 몇 년동안 돌아간다. 우리가 핸드폰 사면 최소한 1년은 쓴다. 그러니 핸드폰 교체기, 클라우드 확장기 등 수요가 늘어나면 확 늘어나고, 아니면 잠잠하다.
아래 그림의 왼쪽은 반도체 산업의 매출액, 투자 증가율이고 오른쪽은 영업이익 증가율이다. 보면 알겠지만, 선이 훅훅 바뀐다.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분석 - 한국은행
반도체 산업은 큰 돈이 된다. 그런데 고용창출 효과는 떨어지고, 변화의 폭도 꽤 크다. 국가경제가 여기에 너무 많이 의존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경제와 수출에서 주목할 점은, Post- 반도체 산업의 성장 여부다.
바이오 헬스 산업은 영업이익률도 준수하고, 앞서 살펴봤듯 고용창출 효과도 높다. AI-친환경과 연계된 미래자동차 시장도 높은 영업이익률과 고용을 가져다 줄 걸로 예상된다.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훨씬 규모가 큰 시스템 반도체 시장도 노려볼만 하다. 이게 지금 현 정부가 육성하려는 산업이다.
추가로 '신재생에너지' 산업도 눈여겨볼 만 하다. '탄소 에너지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패러다임이다. 태양광, 풍력, 수소, 2차 전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우리가 잘하는 분야가 있는 산업이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