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05. 2020

트럼프는 잘 하는데, 아베는 잘 못 하네?

미국의 중국 수출 규제,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의 차이점

# 일본미국의 수출 규제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품목은 크게 3가지다. (1) EUV용 포토레지스트, (2) 불화수소, (3) 플루올린 폴리이미드다.


<소재별 용도>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최신 공정인 EUV 공정에 사용된다. 반도체를 수채화라고 치면, 연필 같은 역할이다. 밑그림 그리는걸 도와준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불순물을 제거한다. 지우개 역할이다.

플루올린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사용된다. 이게 없으면 '폴더블 OLED' 같은 최신형 디스플레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일본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건드렸다. '18년 기준,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각각 부가가치의 16%, 5%, 고용의 4.2%, 4.7%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이다. 두 산업을 합하면 부가가치의 20%, 고용의 9%나 된다. 일본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관철시키고자 우리의 급소를 겨냥했다.


미국도 중국에게 싸움을 걸었다. 일본과는 달리 국은 타격의 대상을 '구체화'했다. 중국 최대의 IT 하드웨어 기업 '화웨이', 반도체 설계 기업 '하이실리콘', 반도체 생산 기업 'SMIC'를 저격한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 기술을 10%이상 사용했다면, 화웨이와 거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 SK는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동일한 규제 SMIC로 확대하고자 한다.


첨단기술 냉전 시대의 산업-통상전략 - 산업연구원(20.9)


빈번하게 언급되는건 화웨이를 비롯한 반도체 하드웨어 생태계지만, 플랫폼 기업 'TikTok', 인공지능 기업 'Time Sense'도 이미 규제 대상이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산업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한다. 물론 반도체가 그 중심에 있다.


중국이 성 좋은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면, 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VR/AR 등 미래 핵심 산업 육성은 물건너 간다. 사이버전쟁 같은 안보 분야도 밀린다.


미국과 일본이 공격에 나서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유사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중국은 미국을 빠르게 추격해왔다. 후발 주자의 추격이 매서우면, 선발 주자는 위협을 느낀다. 후발국의 추격 속도를 늦추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핵심은 경제력이다.


아래 1인당 GDP 격차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의 3배에 달했다.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더 심했다. 미국의 1인당 GDP는 중국의 35배에 육박했다. 하지만 약 20년이 지난 2019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의 1.2배이다. 격차가 엄청 줄어들었다. 미국과 중국의 격차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6배 차이밖에 안 난다.


국력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지금 내가 상대방보다 아무리 쎄도, 10년 후에 따라잡힐 것 같거나, 혹은 비슷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핵무기 개발에 따라, 강대국끼리 직접적으로 전쟁을 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한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지역에서 '대리전'을 했지만, 직접 서로에게 총질하지는 않았다. 핵보유국과 싸우는건 너무 리스키하다.


대신 '경제력'중요하게 됐다. 과거의 '물리 대결''경제력 대결' 대체됐다. 국가 경제력의 대표적인 척도는 GDP다. 지난 수십년 간, 중국은 미국보다, 한국은 일본보다 GDP 성장 속도가 빨랐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래서 격차가 좁혀진다면, 선도국가는 위기감을 느낀다.




# 일본의 공격 : 말만 요란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은 후발국에게 싸움을 걸었다.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공격력과 방어력'이 강해야 한다. 경제 전쟁에서 '공격력'은 상대국 경제에 피해를 주는 능력다. '방어력'은 상대국공격에도 크게 타격받지 않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이겨버리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일본은 스스로의 공격력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핵심 소재를 선택했고, 무기화했다. 이게 없면 우리 산업은 피해를 입는다. 일본의 공격력은 꽤 높았다.


반면, 일본의 공격의지는 빈약했다. 공격의지를 강하게 표출해서 상대방의 경계심을 잔뜩 자극해놓고는,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수출 규제에 나선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역효과불러왔다. 우리는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라는 전략으로 반격했다.


먼저 불화수소부터 보자. 한국 무역협회에 따르면, 20년 1~5월 기준,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12%로 줄어들었다. 작년만 해도 44%였다. 3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셈이다. 우리나라에 불화수소를 수출했던 모리타화학 실적 급감했다. 한국의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전략으로 인해 일본은 되려 손해만 봤다.



다른 2가지 품목인 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올린 폴리이미드의 일본 수입 비중은 각각 88%, 93%로 여전히 높다. 우리도 수입다변화,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일본은 이 2개 품목에서 여전히 우월한 공력을 보유한다.



그런데 싸움에서 이기려면 공격력 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강해야 한다. 일본 기업의 방어력 구멍이 . 일본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과 비례해서, 스스로의 방어력을 까먹는 구조에 처해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보자. 삼성전자, TSMC만이 EUV 공정을 도입했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수요처는 삼성전자, TSMC 뿐이다. 일본 기업이 삼성전자에 팔지 않는다면? 당연히 '판매량'이 줄어든다. 삼성전자향 납품이 줄어든만큼 TSMC가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다. TSMC 생 규모정해져 있고, 딱 그 정도만 필요하다.


게다가 가격 협상력 줄어든다. 이제 TSMC가 포토레지스트를 구매하는 '유일한 기업'이 된다. 1명보다는 10명, 10명보다는 100명에게 판매할 수 있을 때 가격 협상력이 올라간다. 같은 논리로, 구매자의 수가 줄어들수록 구매자의 가격 협상력은 높아지고, 판매자에게 낮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판매 가격'마저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플루올린 폴리이미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OLED를 '대규모 스케일로 양산'할 수 있는 회사는 삼성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 뿐이다. 중국의 BOE도 도전 중이지만, 아직 비할바가 아니다. 일본 기업은 삼디, 엘디에 제품을 안 팔면, 다른 납품처를 찾기 어렵다. 일본의 공격력은 강하다. 그런데 그 힘을 휘두르면 스스로도 해치게 된다.


물론 일본의 의지가 강했다면,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달려들었을 거다. 일본은 그렇게 안했다. 도대체 일본이 이 싸움에서 얻은게 뭘까? 최고 수혜자는 한국의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인 것 같다.




# 미국의 공격 : 이거, 장난이 아니다.


미국은 일본과는 다르다. 공격력이 엄청나다. 일본은 기껏해야 '3가지 소재'만을 무기화했다. 그런데 미국은 반도체 완제품, 장비, 소재, 그리고 소프트웨어까지 무기화했다. 곧 살펴보겠지만, 미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공격 대상전방위적이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IT 플랫폼 기업까지 공격한다. 여기서는 첨단 산업의 핵심 '반도체'를 좀 더 들여다본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는 뭐가 있을까? (1) CPU 칩의 창조자이자 종합 반도체 기업의 시초인 'Intel', (2) 자율주행차, 고사양 게임에 꼭 필요한 그래픽 카드 최강자 'NVIDIA', (3) 최고의 스마트폰 AP칩과 통신 부품 설계자 'Qualcomm', (4) 메모리반도체 세계 3위 기업 'Micron' 등 잘나가는 기업이 많다.


얘네들이 생산하는 칩이 있어야, 자율주행차, 컴퓨터, 스마트폰, AR/VR 기기, 5G 통신 장비 등을 만들 수 있다.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기반이다.


각 공정별 주요 미국 기업 - SK 증권 애널리스트 리포트 재구성


위에서 말한 기업들 꽤낯익다. 이들은 반도체 '완제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소비자와 접점이 좀 있다. NVIDIA의 Geforce, Qualcomm의 스냅드래곤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Intel은 들어봤을 거다


그런데 미국은 '완제품'과 더불어 '생산 장비' 강국이기도 하다. Lam Research, Applied Materials가 대표적이다. 일반 소비자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각 공에서 헤게모니를 유한다. 이 기업의 장비가 없으면, 최신 공정 구축이 어렵다. 위 그림에 표시해놨다.


화웨이의 중국 내 중요도는 '삼성전자'와 비견된다. 삼성전자와 다른 점은, 화웨이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얘네들은 납품을 받는다. 통신 칩은 Qualcomm, 메모리 반도체는 Micron으로부터 공급받는 식이다. 종종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희망하는 반도체를 '설계'한 후, 'TSMC' 또는 'SMIC'에 생산 요구한다.


어쨌든 납품 반도체 '완제품'을 조립해서 스마트폰,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만들어낸다. 아래는 부문별 매출 비중다. 진한 파란색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판매액, 연한 파란색이 5G 같은 통신 네트워크 장비 판매액이다.

유진투자증권 산업리포트(20.8)


미국은 Qualcomm, Micron의 화웨이 납품을 금지했다. TSMC도 화웨이에 납품을 그만뒀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삼성 디스플레이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화웨이는 이제 외국 기업에게 반도체 완제품을 공급받을 수 없다. 그래서 자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인 SMIC에 의존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SMIC도 제재할 전망이다. 미국의 장비 기업이 SMIC와 거래를 끊는다면? SMIC는 반도체 생산라인 구축 못한다. 납품도, 생산도 어렵다. 반도체를 구할 길이 없다.


미국의 방어력은 어떨까? 일본 기업은 우리를 공격하는 만큼 자신도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그 피해가 상당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화웨이 제재는 미국의 '장비' 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 화웨이는 반도체를 '납품'받지, '생산'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거래 관계가 없었다는 의미다. 대신 그간 완제품을 '납품'해왔던 Qualcomm, Micron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 산업리포트(20.8)


위의 그림을 보면, 마이크론의 화웨이 매출 비중이 12%로 꽤 높다. 단기적으로 마이크론은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화웨이 스마트폰 생산이 줄어드는 만큼, 애플, 삼성전자의 생산은 늘어난다. 이론적으로 따졌을 때, 마이크론은 애플, 삼성전자에 납품하면 된다.


마찬가지의 논리 SMIC 제재에도 적용된다. SMIC가 생산을 덜하면, DB하이텍 등 다른 반도체 생산 기업의 출하량이 늘어난다.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은 여기 납품하면 된다.


일본 기업은 우리 기업을 '대체할 수요'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공격하지 못했다. 미국 기업은 중국 기업을 '대체할 수요'를 찾기 쉽다. 단기적으로 미국 기업에 타격은 오겠지만, 어쨌든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미국은 공격력, 방어력이 모두 쎄다. 의지도 확고하다. 중국의 기술 패권을 누르겠다고 마음 먹었다. 승리를 위한 3대 요소를 다 갖춘 셈이다.





# 할거면 미국처럼


일본은 상황판단을 잘 못했다. 상대방의구심만 야기했다. 우리 기업은 일본을 신뢰하지 않는다. 소재 국산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대기업이 나서서 협력 업체에게 자금 지원, 기술 협력을 한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자국중심주의라는 시대적 트렌드 변화의 촉매제다. 기술력, 가격 경쟁력만큼이나 '국적'이 중요해졌다. 일본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이 아니다.


미국의 한방은 날카로우면서 묵직하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패권 경쟁에서 항상 이겼다. (아, 베트남전은..) 냉전 기간, 미국은 우월한 경제력을 토대로 소련에 '군비 지출' 싸움을 걸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미사일 방어 체계(MD) 등 '더 나은 무기 체계'라는 마라톤 시합을 열었다. 소련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스스로 기권했다.


70~80년대 일본의 성장이 매서웠다. 미국은 '환율'을 무기화했다. 미국은 일본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올리도록 강요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제품의 가격은 상승했다. 이는 가격 경쟁력 약화를 야기했고,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 일본은 휘청거렸다.


대응 과정에서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했다. 이게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에 거품을 만들어냈다. 실물 경제의 부진, 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자산시장 거품 붕괴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등장하게 된 계기다. 아래 Nikkei 지수를 보면 198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니케이 지수(Yahoo Finance 재구성)


미국은 이제 중국을 노린다. 이번 싸움의 핵심 트리거는 바로 '기술'이다. 미국의 목표는 '기술 강국 중국'의 싹을 자르는 거다.


중국의 대응 시작됐다. 기술 자립화를 시도한다. 장기적으로 미국 + 동맹국과 중국의 기술이 이원화될 거다. 지금도 미국과 동맹국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사용한다. 중국은 유쿠, 웨이보를 사용한다.


와 더불어 중국은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기반의 경제를 육성하려고 한다. 얼마전 중국 공산당은 '쌍순환 정책'을 발표했다. 밖에서 하도 때리니까, 우선 내부 정리 좀 하면서 맷집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하이투자증권 리포트(9.21)


중국은 일본처럼 쉽게 합의하고, 무너지지는 않을 거다. 중국의 국력, 인구는 일본보다 훨씬 강하다. 물론 미국도 쉽게 포기하지 않다. 현재의 갈등은 트럼프의 개인적 선호로 촉발된 게 아니다. 중국 견제는 미국 엘리트층의 컨센서스다. 트럼프에게 'Shut Up'을 외치는 바이든도, 화웨이 공격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우리나라도 노선을 확실히 정하라는 요구를 받을 거다. 벌써 받고 있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일개 기업'인 'LG 유플러스'에게 '화웨이 통신 장비'를 쓰지 말라고 '직접' 말했다.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시대가 이렇다. '국적', 그리고 '니편, 내편'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중국을 무시하기엔,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게 너무 많다. 미국을 무시하는 건, 글로벌 고립을 자초하는 셈이다. 머리아픈 시기가 도래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