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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20. 2020

유비, 관우, 장비, 너네 조폭아냐?

다시 생각해보니, 속은 것 같다. 전혀 멋있지 않다

# 삼국지, 나의 세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 모두 직장에 다니셨다.  시간 동안, 집에는 나와 동생만 있었다. 자유시간 많았데, 두 가지 행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나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책 읽기'였다.


스타크래프트는 진짜 잘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보다 잘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책도 많이 읽었다. 집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집, 삼국지, 셜록홈즈 전집을 비롯한 다양한 책 가득했다. 게임이 지루해지면 책을 봤고, 책이 지루해지면 게임을 했다. 물론 게임을 훨씬 더 많이 했다.


한동안 삼국지에 빠져 살았다. 이문열 작가가 쓴 10권짜리 전집이었는데, 이걸 몇 번씩 읽었다. 태어난 시점과 장소,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도, 형제를 맺고 '한나라 부흥'이라는 숭고한 뜻을 이루겠다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결의 비장하고 멋졌다.


게다가 '흙수저 성장 스토리'와 흡사한 이들의 서사 인상적이었다. 좋은 집안, 좋은 부모, 좋은 인맥을 가지고 시작했던, 라이벌 조조, 손권과는 달리, 삼형제는 돈도, 빽도 없었다. 하도 머물 곳이 없어서, 지방 귀족인 '유표'의 지배 지역에서 셋살이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고, 유비는 '한중왕', 관우와 장비는 '오호대장군'에 등극했다. 때는 들의 성공이 내 성공인 것 마냥 짜릿했다.


관우가 죽었을 때는, 친구를 잃은 것처럼 슬펐다. 유비, 장비의 복수 시도가 실패했을 때, 분하고 허망했다. 삼형제의 말로가 좋지 않았을 때, 그들의 라이벌인 조조와 손권이 미웠다.


삼국지를 읽고나서 큰 꿈, 그리고 의리와 신념을 가지고 살자라는 생각을 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전해주는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자고 다짐했다. 그땐 그랬다.




# 그땐 멋있었는데, 지금은..?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의 행적을 다시보니 별로다. 나이 먹고도 '형님, 형님'하는 조폭 다는 느낌 받는다. 내 평가는 왜 이리 야박해졌을까?


결정적인 이유는 유비의 아마추어리즘이다. 유비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됐음에 되도 않는 전쟁을 일으켰다. 후대는 이걸 '이릉 대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대패한 후 유비가 세운 '촉한'이라는 나라는 쇠락에 접어든다.


이릉 대전(위키피디아)

221년 촉한의 황제 유비가 의형제인 관우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손권의 오나라를 침공해 발발한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유비는 육손의 화공과 뒤이은 공격에 의해 참패하고 백제성까지 물러났다.


이릉 대전의 목표는 '죽은 관우의 복수'였다.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관 오나라, 위나라의 협공으로 인해 죽었다. 유비와 장비는 참담했을 거다. 제때 돕지 못한 스스로 원망스러웠을 거고,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오나라와 위나라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을 거다. 이 감정을 잘 추스렸으면 좋으련만, 유비는 오나라에게 싸움을 걸었다.



당시 유비는 그림의 동그라미 지역 '촉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중국 대륙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다. 그러니 전쟁이라는 큼직한 결단을 내릴 때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계산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릉 대전은 어땠을까? 개국공신이자 최고의 브레인인 제갈공명, 조자룡을 비롯, 촉나라의 수많은 책사와 장수들 유비의 개전 결단을 극구 반대했다. 


그럼에도 유비는 전쟁을 개시했다. '의리와 복수'가 명분이었다. 옛날에는 이게 멋져보였는데, 이제 와서보니 이거 완전 또라이가 따로 없다.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에는 개인적, 조직적 감정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 집단'이 슬프다는 이유로, '우리 이념'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고집을 꺾지 않고 행동하면, 나라에 문제가 생긴다.


이릉 대전은 훌륭한 본보기다. 합리적 계산 없이, '우리 집단의 복수'를 위해 일으킨, 모두가 반대하는 전쟁이 잘 될 턱이 없다.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사망한 촉나라의 군사가 '8만명'이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뻘짓거리인가? 엘리트 집단의 맹목적인 감정 추종, 무식한 상황판단이 상황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 지배자층의 의리와 끈끈함, 어쩌라고?


유비와 장비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이념, 즉 '복수와 의리'를 달성하려고 수많은 사람의 꿈과 목숨을 갈아넣었다. 개인적 감정을 정책적 판단에 투사하는 '아마추어즘', 삼형제만 공감하는 이상한 '패거리 의식', 잘못된 판단을 굽히지 않는 '고집과 불통'은 촉나라를 망하게 했다. 난 이제 이 사람들이 맘에 안 든다.


대신 조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조조는 굉장한 악인으로 느껴졌다. 기존 질서를 망가뜨리고, 필요하다면 황제도 포로로 잡는 악랄하고도 비윤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조조 굉장히 진취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그 당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관 10명이 황제를 좌지우지하다가 반란까지 일으켰고, 핍박받는 백성들이 사이비 교주를 추 종하면서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잘 어울리는 시대였다.


조조는 썩은 체제를 갈아엎자는 혁명가다. 유비는 어떻게든 체제를 보완하자는 보수주의자다. 누가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가? 나는 조조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후한 왕조'는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고 본다. 누가 더 낭만적이고 멋있는가? 이 또한 조조라고 본다. 새로운 지배질서라는 '꿈'을 이뤄가는, 혁명가 조조가 더 진보적이다.


지배자의 위치임에도 '우리 삼형제'라는 '조직 논리'에 취해고, 동원 가능한 군사력, 유지 가능한 경제력 등 객관적, 현실적인 물적 조건에 대한 합리적 고려 없이 '리와 복수'라는 '미친 이념'에 빠져사는 유비, 관우, 장비의 신파가 짜증난다.


시간이 날 때, 다시한번 삼국지를 읽어봐야 겠다. 그때 나는, 조조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읽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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