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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r 11. 2020

브런치 일년, 구독자 백명, 나에게 글쓰기는..

심심해서 끄적이는 잡생각

구독자가 얼마 전 백명이 됐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나름 신기하고 뿌듯하더라구요. 1년 정도 브런치를 했는데, 그간 느꼈던 점을 끄적여보려고 합니다.


<1> 도대체 왜 글을 쓰는가?


저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상력과 묘사력이 부족해서 소설을 쓸 능력이 없습니다. 느긋한걸 좋아하고, '성공'으로 내세울 점도 없어서 자기계발서를 쓰면 비웃음만 살 겁니다. 조그마한 부분에서 삶을 꿰뚫는 인사이트를 캐치하지도 못해서 에세이도 못 씁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책을 몇권 내는게 목표긴 합니다만.. 이것도 경험과 내공, 그리고 지식이 쌓여야 가능한 미래의 일이니까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사람들도 만족할 만한 책을 내는건 아주 한참 뒤의 일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냥 심심해서 씁니다. 원래 책 읽는 걸 엄청 좋아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는 제가 활자중독이라고 합니다. 과자 사면 성분표시 보고, 비행기 타면 매뉴얼 읽고, 뭐 그런 스타일입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건 우선 읽고 봅니다. 그리고 읽는 것 만큼이나 쓰는 걸 좋아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궁금했던 걸 좀 찾아보고 써내려가는게 재밌습니다. 게다가 가끔 주위 사람들이 재밌다고 말해줄 때가 있는데, 기분이 꽤나 좋습니다. 특히, '도움이 됐다'는 말보다 '재밌다', '시간 때울 때 괜찮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재밌어서 하는걸 남들도 재밌어해주다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랄까요?

휴직 상태여서 종종 심심함을 느낍니다. 할 게 크게 없습니다. 헬스장 가서 운동하기는 귀찮구요. 옛날에는 게임을 곧잘 했는데, 이제는 잘하는 게임도, 잘 아는 게임도 없습니다. 새로 배울 엄두도 안납니다. 나이가 이제 서른인데, 채팅창에서 '엄마 없냐'는 소리를 들을 생각하면... 거참...(요즘에는 왤케 부모욕을 하는지요) 넷플릭스, 유튜브도 질립니다. 심심함을 달래주는 가장 효과적인 행위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2> 글쓰기의 효과


심심해서 재미삼아 하는건 맞는데, 쓰다보면 열을 많이 받습니다. 무식함과 무능함을 느낍니다. 발행한 글을 다시 읽어보면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출되는게 느껴집니다.


왜 이것밖에 표현을 못할까, 이 정도 분석이나 통찰밖에 안될까. 게다가 가끔씩 오타가 보이거나, 숫자가 틀리면 화가 납니다. 기본도 못 지켰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컨텐츠나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글이랍시고 발행했으니, 맘에 안드는거야 뭐.. 어쩔수 없죠. 그래도 심심하니까 어느샌가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을 쭉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가 없습니다. 잘나가는 커리어맨의 인생 컨설팅, 고군분투하는 워킹대디의 일상,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에서의 일상. 이 정도는 돼야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텐데요. 저는 서점에서 산 책을 읽고, 끄적거리고 있습니다. 읽는 책마저도 하품을 유발하는 '사회과학 서적'입니다. 게다가 제 글쓰기가 뭐 엄청나게 탁월한 것도 아니구요.

'글쓰기의 효과' 측면에서 볼때, 이게 제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나 받고 있고, 제 커리어와 상관도 없습니다. 이거 한다고 어디서 돈이 나오나요? 게다가 여기다 '싸지른' 설익은 생각, 헛소리가 캡쳐되어서 두고두고 욕먹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10년 후 제가 쓴 글을 보면, 스스로 엄청 쪽팔릴겁니다.


"와 내가 이 정도로 무식했고, 아는 것도 없었는데, 글이랍시고 써제끼 사람들에게 보여줬구나"

거 할 시간에 운동을 했다면 건강과 외적 매력 둘 다 쟁취했을 겁니다. 책보고 글쓴답시고 앉아 있으니 허리는 휘고 목은 튀어나옵니다. 어학 공부를 했으면 '인적 자본'이라도 축적했을 겁니다. 나중에 유학갈 때 훨씬 수월합니다. 이 시간동안 잠이라도 잤다면 피부도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텐데..


게다가 현타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요. 공들여 쓴 글은 호응이 없습니다. 뭐 이건 내공이 없어서 그랬다 치고. 근데 별로 힘도 안들이고 대충대충, 맥주먹고 쓴 게 공들 것보다 인기가 많을때는 현타가 씨게 옵니다.


"아니 xx, 도대체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진짜 신기한건,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샌가 자판기 들고 쓰고 있습니다. 그냥 재밌으니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재미란 도대체 뭐고, 인간은 왜 재미를 느낄까요?


저에게 글쓰기는 취미입니다. 재밌는 취미. 다만 그 취미는 짜증을 유발하고, 자아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쓰고 나니까 도움이 안되는게 더 확실해보이네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이게 뭐 도움이 될까요 제 인생에? 취미가 꼭 도구적 효용이 있어야 하는지 물을 수 있긴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글쓰기의 효과를 묻는다면, 뭐라 해줄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임을 취미로 삼는 사람에게 "게임의 효과가 뭐에요?" 라고 물으면, 딱히 크게 할말이 없을 겁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겠죠? "심심함을 달래주고 재미를 줍니다." 현재 글쓰기는 저에게   정도의 의미와 효과입니다.


<3> 백명의 의미


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있는 취미 생활인데, 100명이나 구독해주셔서 기분 좋습니다. 누군가는 "뭐 얼마 되지도 않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기분이 좋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ㅎㅎ

제 글은 한번도 브런치 메인에 실린 적이 없습니다. 다음 메인에 올라간 적은 있는데, 그것도 몇시간 정도만 걸려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캡쳐해보려고 몇번 찾다가, 하도 안나와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조회수가 순식간에 몇만을 찍는 경험은 못해봤습니다.

대신 하루에 150~200명 가량 꾸준히 들려주십니다. '당신은 상위 몇 프로 인가요?'는 글이 (링크) 그 중 50%를 차지합니다. 가끔 마약 사건이 터지면 '코카인, 대마초, LSD...' (링크)라는 글도 조회수가 확 오릅니다. 별 생각없이, 크게 어려움 없이 썼던 글들입니다.


이게 기분이 묘합니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를 다룬 글(링크), 코로나를 다룬 글(링크), 제조업을 다룬 글(링크)을 좀 공들여 썼던 것 같은데 얘네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밀도 깊은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나가는 제 능력이 부족한게 근본적인 원인이겠지만...



내 브런치 방문 통계



혼자 재밌으려고 하는거라, 구독자나 조회수에는 신경 안쓰려고 합니다. 이거 신경쓰기 시작하면, 취미생활이 스트레스가 될 것 같습니다. 싫습니다.


더 재밌는 취미를 발견하거나 삶에 엄청난 격변이 벌어진다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글쓰는  행위'를 평생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 복귀하거나, 결혼/육아를 하게 되면 그 빈도수가 낮아질 수는 있겠지만..

꼭 써보고 싶은 글도 있습니다. 제 직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인터넷을 보면, '행정고시 붙으면 차관은 무조건 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낙관론과, '집에도 못들어 오는데 시급은 알바보다 못한, 가성비 최악의 직업'이라는 입을 삐쭉 나오게 하는 (과연 완벽히 뻥일까....?) 비관론만 난무합니다.


이 시험을 붙으면 뭘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선후배 중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은 학교에서 행정고시를 목표로 하는 경우, 정보 접근성이 제한됩니다.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다르면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다만 이건 시간과 경험이 더 쌓이면 하려고 합니다. 인지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은데, 성숙하지 못한 생각을 쓰면 동료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고와 관점을 숙성시켜서 꺼내놓으려고 합니다.

어쨌든, 앞으로 더 괜찮은 책을 읽고, 더 괜찮을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글쓰는게 계속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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