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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n 03. 2020

동물을 기계로 생각했던 오만한 나

영장류학자의 동물 분석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프란스  드 발

# 멀게만 느꼈던 '인간 외' 존재


나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나는 개, 고양이의 귀여움을 잘 못 느낀다. 공원에서 제일 마주치기 싫은 존재가 바로 개, 고양이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가능해야만 사랑도 느끼고, 정도 들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인간 외의 존재'가 나와 의사소통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나에게 다가오는 동물을 귀찮은 존재로만 느꼈다. 이 태도의 근원에는 '동물은 본성이나 호르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어느날 서점에서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만났다. 네델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에모리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이 썼다. 한눈에 봐도 쉬운 책은 아니었고, 표지가 세련되지도 않았으며, 책도 두꺼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펼쳐보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서문의 문장 하나를 읽게 됐고,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종이 다른 포유류와 감정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사람만의 특유한 감정이 무엇인지 찾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 여행자들과 공유한 감정적 배경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무식하고 오만한 인간아, 침팬지도 혐오감, 수치심, 죄책감, 공정성과 같은 고차원적 감정을 가지고 있어. 권력 의지와 정치적 감각도 있고, 기억력도 좋아서 복수도 하고 은혜도 갚고 그런다. 도대체 너가 뭐가 잘났다고 동물을 자꾸 무시하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구매를 미룰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인간중심적인 나의 가치관과 편견을 박살냈다. 책의 많은 부분이 흥미로웠지만, 이 브런치 글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침팬지인 '마마'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아래 동영상은 죽기 직전의 마마가 오랫동안 교제해온 인간 친구를 만나는 장면이다. 2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감동의 여운은 꽤 길다. 마마를 중심으로 이 브런치 글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동영상 시청을 권한다. 성격이 급하다면 40초부터 보면 된다.


https://m.youtube.com/watch?v=INa-oOAexno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박스 안은 인용구 


선홍색 레인 재킷과 대조를 이룬 백발이 눈길을 끄는 얀은 오래전에 내 논문을 지도한 생물학 교수이다. 이 둘이 서로 알고 지낸 지는 40년이 넘었다.

마마는 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나서 긴 팔 하나로 얀의 목을 붙잡고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렇게 포옹을 하는 동안 마마는 손가락으로 얀의 머리와 목 뒤쪽을 리드미컬하게 톡톡 두드렸다.

이것은 침팬지가 낑낑거리는 새끼를 달랠 때 흔히 사용하는 위로의 제스처이다. 마마는 얀이 자신을 보러 와서 행복했다.


마마는 기력이 쇠한 할머니 침팬지다. 지금은 힘이 빠졌지만, 그녀는 한때 암컷 무리의 대장 노릇을 한 '알파 침팬지'였다. 그리고 저자의 지도 교수인 '얀'과 40년이 넘는 오랜 우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얀이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마마는 잠에서 깬 것 처럼 보인다. 누가 바스락거리니까 '이게 뭔가'하고 살핀다. 그러다 친구인 '얀'을 인식하고는,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굳이 침팬지가 아니어도, 마마가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마마가 그녀를 쓰다듬는 방식이 놀랍다. 손등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어렸을 적, 혼나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엄마는 나를 저렇게 달래주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 속의 슬픔과 두려움이 많이 풀리곤 했다.


이 행위를 침팬지가 하고 있다.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말이다. 어루만져 준 후의 행동도 인상적이다. 마마는 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의 손을 꽉 잡고 있는 할머니처럼, 마마는 얀의 손을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고통과 외로움에 사무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놓아주기 싫고 그렇다. 마마는 인간이 느끼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마마와 얀의 재회는 분명 감동적이다.


다만, 마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인다. 모든 생물체가 그렇듯, 그녀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무리를 이끌던 알파 침팬지가 세상을 떠난 건데, 그 후의 일이 흥미롭다.


이들은 마마의 팔이나 발을 들어올렸다가 놓으면서 그것이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는 시체의 입 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아마도 숨을 쉬는지 쉬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 암컷이 시체를 움직이려고 끌어당기자, 마마의 수양딸 헤이스하로부터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다른 침팬지들과 달리 헤이스하는 음식을 먹거나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계속 시체 곁에 머물렀다. 헤이스하는 초상집에서 경야를 하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했다.

모든 암컷들은 완전한 침묵 상태로 마마를 보러 왔는데, 침팬지들에게서는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들은 코를 비비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체를 살펴보거나 혹은 털고르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침팬지 무리는 리더의 죽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에 걸맞는 행동을 취한다. 그들은 마마의 맥박을 확인하고, 완전한 침묵을 통해 슬픔의 마음을 표현한다. 마마에게 털고르기를 해주기도 한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그들 나름의 방식인데, 우리로 치면 절하는 거랑 비슷한건가 싶었다.


특히 마마의 수양딸, 헤이스하의 행동이 놀랍다. 그녀는 상가집의 상주 역할을 맡는다. 모친에 대한 무례한 행동을 방지한다. 시체를 끌어당기는 결례를 범하는 다른 침팬지를 혼쭐 내면서, 예의를 갖출 것을 명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엄마 곁에 머물면서 극진한 애도를 표현한다.


속상한 친구를 달래주는 침팬지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헤이스하를 비롯한 침팬지 무리는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다. '죽음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이로 인한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동물이 죽음 개념을 알아차린다는 점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럴 수도 있는건가 싶었는데, 동물학자인 저자는 이와 유사한 관찰결과를 끊임없이 나열한다. 익사 직전의 아이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사육사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어미 침팬지,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못 버티고 우울증에 걸린 후 식음을 전폐한 침팬지 등 그 사례도 다양하다.


'동물은 기계다'라는 18세기적 마인드에 갇혀 살던 내 스스로가 참 무식하다고 느껴졌다. 마마의 친구 중 '카위프'라는 암컷 침팬지가 있다. 그녀가 바로 자식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걸린 침팬지인데, 이 침팬지를 좀 살펴보려고 한다.


침팬지는 항상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게임을 하면서 상대나 자신이 지닌 지배성의 한계를 시험한다. 카위프는 가끔 창살 사이로 나를 붙잡았다.

슬프게도 카위프는 이전에 낳은 새끼들을 모유 부족 때문에 잃었다. 새끼들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 새끼가 죽을 때마다 카위프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돌을 던지거나 스스로를 꽉 껴안거나 음식을 거부하거나 애끊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카위프의 우울증을 다루기에 앞서, 그녀에 대한 묘사 중 엄청 인상적인 부분을 뽑아봤다. '가끔 창살 사이로 인간을 붙잡으면서 시험'한다는 게 바로 그거다. 이걸 보고 내 짝꿍이 생각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9살짜리 남자 꼬마 아이와 1년째 짝꿍 관계를 맺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한글을 제대로 못 읽어서 내 속에 열불 나게 한 이 꼬맹이는, 이제는 한글도 잘 읽고, 덧셈, 뺄셈에 이어 구구단까지 곧잘 한다. 내 애는 아니지만, 크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참 흐뭇하고 대견하다.


이렇게 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공부하기 싫다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도 공부하기 싫어할 때는, 한 여름 땡볕에도 번쩍 들어서 안아주고 15분 정도를 달래면서 걸었다. 필요할 때는 초콜릿도 사서 먹이고 했다. 얼마전 어린이날 선물로 큰 초콜릿 몇개를 손에 쥐어줬는데, 답례로 나에게 '홀스'라는 캔디를 줬다. 우리는 엄청 깊은 관계를 맺게 됐다.


쌩뚱맞게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내 짝꿍의 행동이 카위프의 '시험'과 닮았다는 거다. 짝꿍은 가끔 나를 '시험'한다. 내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시늉도 해보고, 내 주머니를 뒤진 후 핸드폰을 가져가보는 식이다. 내가 어디까지 본인을 허용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공부할 때도 한번씩 개겨본다. 원래 하루에 국어, 수학 문제집을 2장씩 풀어야 한다. 그런데 1장 반 정도만 해놓고, 혼잣말로-하지만 내가 들리게 '아 다 끝났나?'하고 말할 때가 있다. 몰라서 그러는건 절대 아니다. 그냥 규칙이 얼마나 단단한지 건드려 보는 거다.


카위프가 인간을 붙잡고 시험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를 시험하는 짝꿍이 생각났다. 어제도 나에게 자기가 키운 개미를 먹어달라고 했다. 영장류의 특징인가 싶었다.


이제 카위프의 '우울증'을 살펴보자. 그녀는 5명의 아이들을 하늘로 먼저 보내야 했다. 저자는 카위프의 우울증을 달랠 해결책을 마련한다.


우리는 새끼를 카위프에게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카위프는 곧장 새끼를 들어올리는 대신에 사육사와 내가 기다리고 있던 창살을 향해 다가왔다.

카위프는 우리 둘에게 키스를 한뒤,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이 로셔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새끼를 안는 것은 침팬지들 사이에서 좋은 행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우리는 새끼를 향해 판을 흔들면서 "얼른 가서 안아봐!"라고 카위프를 격려했다.

결국 카위프는 우리 말대로 했고, 바로 그 순간부터 카위프는 가장 극진히 새끼를 돌보고 보호하는 어미가 되어 우리가 바랐던 대로 로셔를 키웠다.

로셔를 입양하고 나서 카위프는 나를 볼 때마다 최상의 애정을 표시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이 내 양 손을 붙잡으려 했고, 내가 떠나려고 하면 슬퍼하면서 낑낑거렸다.


저자는 카위프에게 아이를 입양해줬다.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다른 침팬지가 낳은 아이, '로셔'를 전달해줬다. 카위프는 그 후 지극정성을 다해 로셔를 돌봤다.


저자와 로셔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카위프는 '아이와 양육'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기쁨과 충만을 누리는 것 같다. 이걸 가능하게 해준 저자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카위프는 그 후 저자의 인내를 시험하지 않았다.


침팬지에 대한 내 생각이 짧았다. 침팬지는 과거의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슬픔과 감사라는 감정을 구성한다. 카위프는 저자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기억하고, 이를 토대로 감사라는 감정을 유지한다. 양육에 따르는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사랑'도 느끼는 것 같다. 침팬지는 분명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눈을 감고 흐느끼면서 우는 시늉을 하면, 지붕이나 천장처럼 집안에서 가장 먼곳에서도 조니는 하던 놀이나 활동을 즉각 멈추고, 잔뜩 흥분하고 지친 표정으로 재빨리 내게 달려왔다. 아무리 끈질기게 부르고 애원해도 내려오게 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 턱을 자신의 손바닥에 갖다대고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볍게 만졌다.


침팬지는 공감을 토대로 위로도 한다. 위의 사례는 저자가 직접 겪은 건 아니고, 다른 동물학자의 글을 저자가 인용한 거다. 조니라는 침팬지는 주인이 슬퍼하는 걸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다.


우리는 연인이 슬픈 일을 겪어서 울고 있을 때 꼭 안아준다. 눈물을 닦아주고, 눈을 쳐다보며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조니주인을 그렇게 달래준다. 동물은 기계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감도 하고 감정을 달래주는 법도 안다. 그마저도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아, 내가 그동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마마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녀의 '정치력'을 살펴보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마는 권력과 정치적 관계를 이해하고 유지해 나갈 정도로 똑똑하다.


마마는 중재의 달인이었다. 두 수컷 경쟁자가 싸움을 한 뒤, 서로 화해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화해를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두 수컷은 서로 주위를 서성거리면서도 신체적 접촉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마가 한 수컷에게 다가가 털고르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 분 뒤, 마마는 다른 수컷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면 함께 털고르기를 하던 수컷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쟁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마마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만약 따라오지 않으면, 마마가 다시 돌아가 그 수컷의 팔을 끌어당기면서 자신을 '따라오게' 했다. 이것은 마마의 중재가 의도적인 행동임을 보여주었다.


앞서 언급했듯, 마마는 암컷 무리의 리더였다. 침팬지 사회의 리더는, 좋은 열매나 음식을 혼자 독차지하고 맘에 안드는 자를 두들겨 패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라고 한다. 물론 그런 폭군형 리더도 종종 있는데, 나중에 나이 먹고 힘 딸리면 '반드시 보복' 당하면서 쫓겨난다고 한다.


대신 집단 내의 평화 유지와 안정 도모가 리더 침팬지의 역할이라고 한다.


어느 집단에나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이 임계점을 넘으면 극심한 분쟁을 촉발한다. 분쟁의 강도가 너무 높으면, 집단의 결속력을 약지고 장기적인 안정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갈등을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가 집단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인간이 그렇듯이, 침팬지도 갈등을 겪고나면 서먹서먹 해진다. 마마는 서먹해진 침팬지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도맡는다.


격하게 싸우고 난 후 화해하는 침팬지들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녀는 싸움으로 인해 어색해진 침팬지들을 서로 대면하게 한다. 한 침팬지가 화해를 거부할라 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강제로라도 끌고온다. 공동체의 안정을 해치지말고, 빨리 화해하라는 거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


마마는 갈등의 파급효과를 이해한다.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도 알고 있고, 해결 방법도 알고 있다. 자신이 직접 연루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치와 공동체'라는 네트워크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에서 지도자가 해야할 역할을 도맡는다. 침팬지는 이런 '고등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계가 아니었다.






# 한번 쯤은 읽어볼만한 책


나는 마마의 사례를 주로 다뤘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책은, 공정성, 분노, 위로, 슬픔  사람만이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등 감정' 느끼는 동물들의 사례를 풍부하게 보여준다.


다만 저자는 학문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학자'이기에, 관찰 사례를 마구잡이로 나열하는 대신 탄탄한 이론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한다.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이 이런걸 할 수 있어?'라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당장 동물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개나 고양이가 에게 접근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의 말마따나, "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 여행자들과 공유한 감정적 경'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됐다.


전혀 관심도 없고, 무지했던 분야를 알게되 되게 재밌고 흥미로웠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행복하게 읽을  있을 거다. 혹여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사람도, 그간의 편견과 무지가 깨지는  느낄  있을 거다. 그리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것 또한 분명 행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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