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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n 11. 2020

골드만 삭스, 맥킨지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사회학자의 엘리트 회사 채용 분석 - <그들만의 채용리그>, 로런 리베라

# 많은 애들이 우러러본 그 직업


* 박스 안은 인용구


나는 2010년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갔다. 1학년 때 제대로 안 놀면 평생 후회한다고 해서, 죽어라 놀았다. 정신 못차리고 2학년까지도 놀았다. 하지만 내가 시간을 탕진하던 그 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구글, 애플 같은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게 엣지있어 보이지만, 내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좀 달랐다. 그때는 골드만 삭스, 맥킨지 같은 외국계 IB, 전략 컨설팅 펌에서 일하는게 최고로 엣지있어 보였다.


우리나라만 그랬던 건 아니고, 미국도 그랬다. 골드만 삭스, 맥킨지는 '똑똑이'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미국 기업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업에 대한 비판과 전략 컨설팅의 유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거세졌다. 이 기업들은 '워라벨'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와 발맞추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마트하고 야심찬 청년이 '피고용인'의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중 하나라고 인정받는다.



<그들만의 채용리그>는 전략 컨설팅, 투자은행, 대형 로펌의 채용 과정을 다룬 책이다. 저자인 로런 A 리베라는 노스웨스턴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교수다. 그녀는 예일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주된 연구 분야는 채용 과정, 인사관리다.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컨설팅 펌에서 일하기도 했다. 저자는 전략 컨설팅, 투자은행, 대형 로펌의 일자리를 '고소득 엘리트 일자리'라고 지칭하면서, 이 회사들의 채용 프로세스를 분석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엘리트 고용주들이 채용과정에서 능력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인해 미국의 최고 고소득 직업을 향한 경쟁의 장이 사회-경제적 특권층 출신의 아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강력하게 기울어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받을 급여와 얻게 될 일자리의 종류에 계층 천장이 씌워진다. 심지어 명문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간에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왜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됐을까?






# <그들만의 채용리그>


# 학벌로 걸러봐야지


당신이 2군에 속해 있는 경영대학원에 다니는지, 아니면 최고의 경영대학원에 다니는지는 우리가 당신의 이력서를 검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몇 광년 정도에 해당하는 차이를 만듭니다. 맞아요. 사실상 당신의 이력서를 고려조차 않는 거죠.

우리는 의도적으로 특정 학교들만을 목표로 삼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가지 않았지만 MIT 출신 엔지니어입니다. 이 박람회를 알게 돼서 뉴욕에 와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모든 채용 과정이 그렇듯, 서류 전형 통과가 첫 걸음이다. 서류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학벌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벌은 '좀 좋은 대학' 정도가 아니다. 하버드, 와튼 졸업장이 '디폴트'다.

위의 인용구처럼, 채용 담당자들은 최고 대학 출신이 아니면 이력서를 잘 보지도 않는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NYU 스턴 경영대학원도 좋긴 하지만 굳이 거기 출신을 뽑아야 하나요?"


물론 Top-Tier 출신이 아니어도 간혹 입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압도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하버드 출신은 '평균'만 해도 서류를 통과할 수 있지만, 그 아랫 급간은 '최우등 졸업'과 같이 눈에 띄는 무언가를 장착해야 한다.


이 회사들, 학벌로 필터링 하는 정도가 생각보다 빡세다. 누가 미국은 학벌 안본다고 했나?


문제는 취준생의 학벌, 학력과 부모의 소득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데 있다.


하버드대학교 학부 상황을 보면, 학생 중 '거의 반'이 가구소득에서 최고 4%에 속하는 가정 출신이다. 하위 20%의 가정에 속하는 학생은 4%밖에 되지 않는다.

엘리트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은 부유한 가정 출신의 학생들 쪽으로 훨씬 더 편향돼 있다.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렇지만 요즘 미국 내에서는 계층 상향이동이 옛날보다 어려워지고,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내가 전에 다뤘던 <20 vs 80 사회>는 부가 대물림되는 동학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링크)


저자는 대부분의 하버드 입학생이 '금수저 출신'이라고 말한다.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출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다른 대학교의 상황도 궁금해서, 내가 좀 찾아봤다. 2017년, 뉴욕타임스가 아이비리그 대학 재학생의 가구 소득을 다뤘었다. (링크) 예일대학교 학생들이 그 자료를 가지고 그래프화했는데, 그걸 좀 따왔다. (링크)


예일대학교 재학생의 부모 소득을 5분위로 나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13년 당시, 가구 소득 상위 20% 출신 재학생이 가장 많았다. 하위 20% 출신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2013년에만 그랬던 건 아니고, 그전부터 계속 그래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yaledailynews.com/blog/2017/02/03/report-shows-income-inequality-at-yale/


아래 그래프는 예일 뿐만이 아니라, 하버드,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 대학 재학생들의 부모 소득을 보여준다. 모든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가구 소득 상위 10% 출신이 과반을 차지한다. 거의 60%에 근접해 있으며, 상위 5%를 기준으로 해도 점유율이 40% 가량 된다. 상위 1% 출신 점유율은 20%에 달한다.


https://yaledailynews.com/blog/2017/02/03/report-shows-income-inequality-at-yale/


이 나라에서 좋은 대학 가는거, 만만치 않다. SAT만 잘보면 되는 게 아니라, 학교 수업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야 하고, 비교과 활동도 신경써야 한다.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는 걸 넘어선 '삶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학종이 요즘 그렇다고 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학종 세대였다면, 좋은 대학 가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경로를 평가하는 학종이 아니라 특정 시점의 역량을 확인하는 수능이 있었기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관리'를 안했어도 좋은 대학 올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고소득 엘리트 직종은 선발 과정에서 최상위 대학만을 주로 추려낸다. 그리고 최상위 대학 입학과 부모의 경제적 지위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쉽게 말해, 좋은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엘리트 대학에 갈 확률이 높고, 이는 엘리트 직장으로의 입사 확률을 높인다. 부모의 소득은 이런 방식으로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물론 서류 전형에서 학벌만을 보는 건 아니다. 비교과 활동도 중요하다.


# 당신의 취향을 한번 봅시다


평가자들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이력서 신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강한 연관성이 있는 경험들, 특히 슈퍼 엘리트 대학 졸업장과 높은 지위를 보여 주는 비교과 활동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또한 학년 등수나 자기소개서 내용처럼 가장 폭넓게 접근할 수 있는 이력서 신호들은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덜 받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인터뷰 풀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장벽을 만들어 냈다.


이 회사들은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는 꺼려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학점보다 비교과 활동을 더 중점적으로 본다. 대표적인 비교과 활동으로 '인턴 경험'을 꼽을 수 있다. 인턴 경험은 관련 산업에 대한 꾸준한 흥미와 열정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증거가 된다.


미국에서 -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 이런 직종의 인턴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건 아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엘리트 회사의 인턴 자리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가족과 본인의 인맥' 같은 사회적 자본에 따라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종종 봤다. 누구나 선망하는 외국계 IB 인턴 자리였는데, 학부 초년생임에도 그냥 들어갔다. 부모님의 인맥을 통해서였다. 스펙으로 따져도 좋은 대학 다니고, 영어도 잘한다. 경영 전공 과목도 꽤 이수했으니, 밖에서 볼 때 큰 문제는 없었을 거다. 그렇지만, 누구나 안다. 그 자리에 들어가는 데 결정적이었던 건, 학벌도 영어 점수도 아닌 '부모님 인맥'이었다는 걸 말이다.


인턴 경험 외에도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도 중요하다. 이건 좀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느꼈는데, 그네들은 가령 '스포츠 클럽 리더'와 같은 액티브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을 선호한다는 거다. 물론 모든 스포츠에 동일한 가중치를 주는 건 아니다.


미식 축구, 야구 같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보다, 조정, 필드하키처럼 돈 좀 써야 가능한 스포츠를 더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이 나라는 고등학교에서 운동 잘하면 대학도 잘 가는 나라라서 그런가? 우리랑 좀 다르다고 느꼈다.


엘리트 회사 면접관이 고려하는 피평가자의 자질 - <그들만의 채용리그>


정리하자면, 서류 과정에서는 학벌과 비교과 활동을 중점적으로 본다. 엘리트 학벌 취득과 부모의 소득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학부 생활 중 엘리트 회사에서 인턴할 수 있는 확률도, 돈 좀 써야하는 스포츠를 꾸준히 할 확률도 상류층이 더 높다. 이로 인해 서류 과정의 심사 요소가 결과적으로 상층 편향적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서류 전형은 채용 과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면접을 통과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 면접 : 당신은 얼마나 엣지있나요?


계층이 중요하냐고요? 당연히 중요하죠. 계층은 당신이 말하는 방식, 쓰는 언어, 옷 입는 방식,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터져 나오는 일반적인 표현을 통해 나타납니다. 당신은 자라면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배웁니다. 사실 저의 아버지는 은행장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매일 은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단 의미입니다. 저는 CEO나 CFO들과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압니다. 그런 분들이 식사하러 우리 집에 항상 방문했고, 저는 그런 일을 하면서 자랐으니까요.

만약 표준어를 구사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고, 전문직처럼 옷 입는 법을 모르고, 그런 사람들과 결코 교류한 적이 없다면, 당신은 분명히 불리한 상황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 회사들의 면접 과정에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모호함을 지적한다. 면접이라는 게 시험처럼 단일한 기준으로 줄세우는 것도 아니니까, 이거야 뭐 당연한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되면 면접관이 '최고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채용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다. 즉, 상위 계층이 얻을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적 경험, 교양있는 어투, 훌륭한 패션과 머리 스타일을 구사하는 '세련미 있는 사람'이 선호된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걸 '아비투스'라고 명명한다. 한 개인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행동과 습성을 말한다. 가령 하위 계급은 '낮은 가격으로 높은 칼로리를 얻는 데 효율적인' 무제한 삼겹살집을 선호하는 반면, 상위 계급은 '시간과 돈을 많이 씀에도 양은 지극히 적은' 신라호텔 조식을 선호한다는 거다. 한 개인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가 속해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부르디외의 요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본인과 같은 취향을 갖춘 사람에게 끌릴 확률이 높다. 면접 과정에서도 능력이 동일하다면,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엘리트 기업들의 면접관은 상층 출신일 확률이 높고,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될 확률이 높다.


인터뷰이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상위 계층의 언어, 옷차림과 같은 가장 내밀하면서도 개인적인 행태와 습성을 어릴 적부터 익혔던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쟁한다면, 전자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 중 업계에 종사하는 '내부자'가 있다면, 면접에서 확실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내부자와의 교류하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회사 생활의 실질적인 어려움과 보람을 설명하고, 이에 필요한 역량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눈에 띄기 마련이다. 여기서도 상층 출신이 유리하다.


채용 인터뷰에서 서사적 힘의 강력한 원천은 개인과의 공감이었다. 특히 평가자들의 과거 역사와 비슷한 개인적인 스토리를 제시하는 후보자는 추진력에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 일반적으로 유사성을 토대로 한 공감은 사회-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에게 이점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었다. 면접관들 대다수도 혜택을 받은 계층 출신이기 때문에,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엘리트 회사의 면접 과정은 상층 편향적이라고 말이다. 물론 간혹 예외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녀는 '흙수저 출신'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서사가 면접관들로부터 존경의 감정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건 극히 일부라고 단언한다.

많은 경우, 동일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본인과 교집합이 많은 '동류 집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다. 상대가 동향 출신이면 더 반갑다. 그가 같은 대학 출신이라면 더더욱 반갑고, 중고등학교도 같다면 미칠듯이 반갑다.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 않고 멀쩡해 보인다면, 호감을 가지는 것보다 반감을 가지는게 더 어렵다.

요약하자면, 전략 컨설팅, 투자은행, 로펌에서 일하려면 최고 수준의 학벌, 관련 업계에서의 인턴 경험, 귀족적 비교과 활동, 업계 문화에 대한 이해, 상류층의 언어-말투-패션을 갖추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상류층 출신의 취준생이 이런 종류의 역량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그들 누구도 계층을 고려하면서 채용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상층편향적이다. 옛날에는 '공장'이 대물림 됐다면, 요즘에는 '엘리트 직업'이 대물림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여유가 있었다면 더 빛났을..


나는 우리 사회에서 꽤 인정받는 대학을 나왔다. 그렇지만 학벌이 생각보다 무용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대학이 다가 아니었다.


능력과 야망이 있음에도,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를 신경써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로스쿨, 고시, 해외 명문 대학원 진학은 그들에게 더 큰 용기와 희생을 요구했다. 많은 경우 빨리 취업해서 1인분 노릇을 해야한다는 현실의 무게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 욕구'를 이기곤 했다.


가정에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빨리-즉시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보다는, '꿈'과 같은 내면적 가치를 탐색하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가끔 괜찮은 인턴 자리도 상대적으로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질적 필요에 대한 압박에서 한발짝 벗어나서, 긴 호흡을 가지고 무언가를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


후자라고 노력을 안하는 게 아니다. 그들 모두 꽤 노력했기에 괜찮은 대학에 들어왔고, 미래를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한다. 후자가 느끼는 인생의 무게가 전자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내년부터 상환해야 하는 학자금, 다음달에 내야하는 월세'에 대한 고민까지 해야 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꿈과 역량만'을 고민해도 되는 사람이 동일한 경쟁선에 있는 건 아니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성인'이 되면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의 자산'을 한번에 받는 거다. 이 돈은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써야 한다. 해외여행을 간다든지, 대학교 축제에서 푸드트럭을 해본다든지, 아니면 보관해놨다가 대학원 진학에 쓴다든지, 하여간 생계와 무관한 '자아 탐구와 성취'를 위해 쓸 총알을 마련해주는 거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총알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대학에 와서 체감했다. 엄청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시작 단계에서 조그마해 보였던 그 총알은,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궤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책 내용 자체가 굉장히 재밌어서, 금방 읽어버렸다. 다만 아쉬운 점은, 통계가 좀 부족하다는 거다. 맥킨지, 골드만삭스 임원급 직원의 학벌은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뽑아볼까 했는데, 귀찮아서 그만 뒀다. 찾아보니까 저자의 말마따나 하버드, 와튼, 프린스턴 출신이 대다수다.


질적 연구 방법에 더 힘을 준 듯 했고, 풍부한 인터뷰와 묘사는 통계의 부족을 메꿀만큼 훌륭하다. 사회과학 서적이 분명한데, 누군가에게는 입사 지침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의 채용 과정과 회사 구성원들의 생각이 적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회사에 입사하려는 사람들, 이 회사 구성원의 진실된 생각이 궁금한 사람들, 부와 직업의 대물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 잘쓴 질적 연구서적이 어떤건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분명 재밌게 읽을 거다. 읽으면서 씁쓸하기도 하고, 내 주위를 돌아보게도 하고, 그렇게 만드는 책이었다. 여운이 남는다,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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