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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l 13. 2020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글쓰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어쩌다가 마주한 대가의 에세이


요새 글쓰기의 재미없음, 귀찮음, 무의미함을 쎄게 느꼈다. 재미가 없으니까 글도 안 써지고, 거지 같은 글만 써지니까 재미는 더 없어졌다. 그래서 안 썼다. 어차피 재미로 글쓰는 거였다. 재미 없는데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간이 생기니까 운동 매일하고, 책 더 많이 읽고, 호흡이 긴 영화도 꽤 봤다. 훨씬 재밌고 유익했다. '그동안 왜 글 같은거 쓰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글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 특히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소설가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해야 할텐데,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상상력, 인내심이 갖춰져야 글쓰는 걸 '업'으로 삼을 수 있다.


'작가들은 어떤 사람일까?'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다 집 앞의 조그마한 카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을 만났다. 10페이지 정도 읽고, 삘이 와서 바로 사버렸다.




이 책은 '창작과 글쓰기,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글 잘쓰는 법', '소설가로 성공하는 법' 같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30년 이상 소설 세계에 머물렀던 사람의 '회고록'에 가깝다.  


그는 1949년생으로 올해 71세다. 나에게는 할아버지 뻘이다. 온화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맥주 한 잔 사주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감명 깊었던 부분을 써보려고 한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나는 삼십오 년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5년간 같은 일은 하면서도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길래 그럴까?


나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회사 가기 싫은 날이 훨씬 많을 것 같다. 어쨌든 그에게도 글쓰기는 '일'이고 작가는 '직업'일텐데, 그렇게 일이 좋을까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워커홀릭일까? 워커홀릭이라면, 범접하기 힘든 사람일텐데..


책을 읽어 가면서, 그가 슬럼프를 겪지 않았던 이유를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재밌어졌다.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 안 쓴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뭘'하고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참 소설을 안 쓰다 보면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안 쓰고 싶을 때는 아예 안 쓴다. 이게 그의 스타일이다. 그는 스스로의 희망과 의지에 따라 글을 쓸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러니 슬럼프가 올 일이 없다.


하루키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간 쌓아왔던 역량과 성취가 있었기에 자유 가능했을 다. 게다가 글쓰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행위'고, 프리랜서도 '독립적인 직업'이다.


엄청 부러웠다. 나처럼 조직에 묶여서 생활하는 사람은 꿈도 못 꿀 이야기다. 나는 일하기 싫다고 드러누울 수 없다. 임금이 매달 들어오니까, 매달 일을 해야한다. 적어도 월급만큼의 아웃풋을 내야 한다. 아무리 자유로워도, 월급쟁이의 자율성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쓰고 싶을 때만 쓴다'는 말만 들으면, 새벽까지 술담배에 빠져 있다가, 오후 4시쯤 일어나 글 쓰고, 원하는 글이 안나올 때는 숨겨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자유로운 영혼이 떠오를 수 있다. '뛰어난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편견이다.  


그렇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류의 예술인이 아니다. 그는 자율적으로 살지만, 마음 가 대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그는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직장인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일단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 그는 스스로 세운 규칙에 스스로를 묶는다. 그 규칙은 '매일 20매 쓰기'다. 딱 봐도 무지 어려워 보인다.


본격적인 창작에 들어가면, 그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단조로워진다. 술자리에 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그날 컨디션이 어떻든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고지 20매를 써낸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노력보다는 재능으로 살아가는 예술인'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오히려 보고서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서 와꾸를 잡아놓는 '회사원'의 아우라다. 


의외였다. 그는 새벽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첫 소설을 썼다. 술집을 운영했는데, 짬 내서 썼다. 그게 대박이 났다. 타고난 재능을 갖춘 예술인이라서 마음가는 대로 살 줄 알았다. 장발, 타투, 술담배가 어울릴 것 같았는데, 그는 청교도적인 생활을 말한다.


규칙적인 글쓰기의 중요성과 함께, 그는 꾸준한 운동을 강조한다. 헬스 트레이너도 아니고, 문학 작가가 운동을 말하는게 인상 깊다.


나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습니다.달리기를 좋아해서 그냥 내 성격에 맞는 일을 습관적으로 계속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나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평소에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계속 써나가는 작업을 통해 그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차츰차츰 깨달았습니다.

마음은 가능한 한 강인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장기간에 걸쳐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담는 용기인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 불가결합니다.


그는 원고지 20매를 매일매일 채운다. 그는 달리기나 수영에 매일매일 한 시간 이상 투자한다. 전업 작가가 된 후 30년 이상 이걸 해왔다. 수십년 간 거르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게 보통일이 아니다.


그는 '성격에 맞는 일'을 '습관'으로 삼았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루틴이 몸에 자리잡을 때까지 꽤 고통스러웠을 거다. 작가가 되기 전에 운동을 좋아했던 것 같지도 않다.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 결국 '좋은 소설을 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몸이 강인해야 창작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장편 소설을 써내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작가 생활 동안 5년 이상 쉬었던 적이 없고, 2-3년 마다 장편작을 꾸준히 써냈다. 최근에 냈던 작품은 <기사단장 죽이기>다. 분량이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데, 그의 나이 69살에 출판했다.


그는 성실하게 운동하고, 성실하게 글 쓴다. 자기가 세운 규칙을 어떻게든 지킨다.


나는 원래 '작가는 왜 글을 쓸까?'라는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건 '체력'에 관한 부분이다. 나에게 체력 유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독하게 나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힘들어한다. 대신 내 강점을 그나마 꼽자면 '꾸준함'이다. 나는 재밌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꾸준히 한다.


직업과 연관되어 있고, 재미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IMF/OECD 등 경제기관의 보고서, The Economist 등 경제신문, 신간 사회과학 서적은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한다. 뭐, 어디에 자랑할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한다.  


'꾸준함'이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인데, 이게 체력 문제라는 걸 하루키 할아버지가 알려줬다. 나의 강점인 '꾸준함'이 유지되도록, '꾸준하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재밌게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하루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기까지 보면 하루키의 '글쓰기'는 험난한 가시밭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딱히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의식의 내게는 애초에 없었고 지금도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한밤중에 주방 식탁에서 썼을 때는 그게 일반 독자의 눈에 가닿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으니까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하루키는 '재미'를 위해 글을 쓴다. 의 목표는 '명예, 부'가 아니다. 글쓰기, 그 자체가 목표다. 그는 행복을 위해 소설을 쓴다. 그리고 나에게 충고한다. 가 무언가에 몰입할 때 '재미와 설렘'이 없다면, 그거 잘못된 거라고.


그가 신경 썼던 건 타인의 인정이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만이 느끼고 인지할 수 있는 '재미와 행복'이라는 내면의 가치다. 그는 타인에게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유롭고, 재미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나도 70이 넘는 나이가 됐을 때도, 손자뻘 청년에게 '재미'를 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꿈'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그까지 재미있게, 꿈을 좇아, 살아가야겠다.


대단한 권가가 되겠다는 것도, 엄청난 부를 일구는 것도 아다. 그냥 재밌는  많이 하고, 보람찬  종종 하고, 나쁜  적게 하면서 살고 싶다. 100%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겠지만, 100% 타의적으로 절대 살지 말아야겠다.


또 한 가지, 일본 내에서 내 작품과 나 개인에 대한 비난이 상당히 심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 작품이 외국에서 통하는지 아닌지 어디 한번 시험해봅시다'라는 도전적인 마음이 솔직히 없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성공을 충분히 거둔 50살의 나이에 미국에 진출한다. 번역가를 직접 구하고, 본인 작품을 가지고 출판사 문을 조심히 두드린다.


감동 받았다.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멋있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게 아니라,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마음껏 발산다. 특히 작품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서 도전다는 게 멋있었다. 돈, 명예, 그런게 아니라, 자신의 창 극한을 시험해보는 거다. 


그가 '대가'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더 괜찮은 작품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도전한다. 남의 인정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행동한다.


나도 하루키처럼 남의 시선과 인정이 아니라, 나의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세운 기준과 목표를 행복하게 좇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읽는 게 아까웠던, 그런 책


작가를 꿈꾼다면 읽어볼 만 하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할아버지가 덤덤히 본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독자에게 '이거해, 저거해'라고 건방떨지 않는다. '이러면 성공해, 저러면 실패해'라고 주제넘게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40년간 한 우물을 파오면서 겪었던 길, 그 과정에서 쌓아온 철학과 세계관을 조곤조곤 말해준다.


나는 감명 깊었던 것만 간추렸다. 꾸준함, 규칙성, 체력의 중요성, 도전 정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미와 행복'에 대한 것만 정리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작가가 된 이유, 작가의 특징, 작가 자질부터 문학상의 의미, 학교의 존재 가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생각이 적시되어 있다.


대가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자기계발서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글쓰기 서적보다 더 본질적인 '글쓰기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재미가 없어진 글쓰기 시간을 줄이니,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글쓰기가 재밌어질 날이 곧 오겠지? 그때까지 재밌는 책, 영화 마음껏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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