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삼십오 년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 안 쓴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뭘'하고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참 소설을 안 쓰다 보면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나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습니다.달리기를 좋아해서 그냥 내 성격에 맞는 일을 습관적으로 계속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나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평소에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계속 써나가는 작업을 통해 그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차츰차츰 깨달았습니다.
마음은 가능한 한 강인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장기간에 걸쳐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담는 용기인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 불가결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딱히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의식의 내게는 애초에 없었고 지금도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한밤중에 주방 식탁에서 썼을 때는 그게 일반 독자의 눈에 가닿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으니까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또 한 가지, 일본 내에서 내 작품과 나 개인에 대한 비난이 상당히 심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 작품이 외국에서 통하는지 아닌지 어디 한번 시험해봅시다'라는 도전적인 마음이 솔직히 없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