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나에게 남는 방식

by 심신

이맘때쯤이면 지난 일기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 올 한 해의 기록뿐만 아니라, 지금과 계절이 비슷했던 해의 기록, 심지어는 10년 전의 일기까지 함께 펼쳐본다. 지난날들을 보며 잊고 있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고, 영원할 것만 같던 절망의 시기마저도 결국은 다 지나갔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


일기장 곳곳에는 미래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 말을 걸듯 몇 년 후의 나에게 바라는 점을 적어 두기도 한다. 그 시기나 바람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온 흔적을 발견할 때면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왔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2016년 6월 24일 일기 中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도 있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안할 때면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비난하고 쪼그라들게 만드는 습관은 여전하다. 어떤 질문은 경험과 시간이 쌓여야만 비로소 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은 것들이다. 나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했던 이유는 경험이 부족했고, 동시에 잘 살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을 떨쳐내는 방법은 계속해서 고민하는 데 있기보다는,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1만큼만 해도 그냥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10만큼 해야 겨우 그냥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그냥’은 밥을 먹고 양치를 하는 정도의 번거로움이다. 귀찮을 수는 있어도, 나를 괴롭히거나 버겁게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매일 할 수 있는 만큼의 강도다.


일기를 꾸준하게 적는 날은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말과 행동이 도무지 소화되지 않을 때다. 아무리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생각은 쉽게 멈춰주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도 전등 스위치처럼 ON과 OFF가 분명하다면 삶의 난이도가 훨씬 낮아질 텐데. 소화되지 않은 말들을 결국은 일기장으로 향한다. 어떤 날은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어떤 말부터 적어야 할지 몰라 빈 일기장을 한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문장부터 냅다 쓰고 나면, 막혀 있던 말들이 조금씩 꿀렁꿀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글과 함께 글과 눈물이 쏟아지고, 한바탕 울고 나서야 감정이 정리된다. 그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강의를 들어도 그 말이 소화되지 않으면 끝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최진영,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中

일기장에 나를 비난하고 쪼그라드는 말들을 들여다보면, 내 삶이 아무렇게 흘러가기보다 잘 살고 싶고, 잘하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나를 조금이라도 비난하거나 뒷담화하면 참지 못하면서도, 왜 유독 나 자신을 향한 비난에는 반박을 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 그 마음속에는 내가 나에게 너무 관대해지면 나태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태한지 아닌지는 사실 남들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나를 볼 때 최소한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검열하게 된다. 내가 나를 평가 할 때조차, 타인의 시선을 먼저 살피다 보니 결국 도달할 수 없는 완벽을 향해 가게 된다.


지난 일기를 찬찬히 다시 읽으며 발견한 내 감정의 핵심은 ‘불안’보다는 ‘수치심’이었다. 단지 불안의 빈도가 높고 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수치심이 숨어 있었다. 아마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사람의 모습과 조금씩 닮아 갔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다 적고 나니,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 방향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를 내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 밤에도 일기를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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