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기록 방식을 찾는 일
2025년 연말부터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다이어리 하울 영상과 기록 방식을 소개하는 영상이 자주 뜬다. 하울 영상인 만큼 소개되는 다이어리는 대개 다섯 권 이상이다. 각 다이어리에는 분명한 용도가 있다. 일기, 해빗 트래커, 독서, 필사, 공부나 업무 기록 등이다. 요즘 유행하는 6공 가죽 다이어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 권에 16만 원이 넘는 가격이다..!
나는 몰스킨 포켓 다이어리를 살 때도 이게 과연 합리적인 소비인지 한 달 넘게 고민하며 샀다. 16만 원짜리 다이어리를 산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다른 취미에 비하면 1년에 한 번쯤은 이 정도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계산일까, 아니면 ‘좋아하는 것에 이 정도 비용은 쓸 수 있다’라는 확신일까. 다섯 권이 넘는 다이어리를 보고 있자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30만 원쯤은 되어 보였다. 1년을 30만 원으로 나누면 한 달에 2만 5천 원이다. 매일 펼쳐볼 수 있고, 기분이 좋고, 내 일상이 남는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소비처럼 느껴진다.
가격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다섯 권의 다이어리를 과연 어떻게 매일 쓸 수 있을까. 하루이틀 밀리는 건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지만, 일주일 이상 비워지기 시작하면 다이어리는 나를 기쁘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부담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못 쓴 날짜는 과감히 넘기고, 쓸 수 있는 날부터 시작하는 멋진 사람일까. 나는 퇴근 후에 몰스킨 포켓 크기조차 겨우 채울 때가 많다. 그래서 기록의 용도를 분권화해서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스티커나 마스킹 테이프를 멋스럽게 붙이는 사람들의 센스가 부럽다. ‘스티커 붙이는 센스가 인생의 센스이기도 한 거다'
나는 스티커를 사는 걸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사지 않게 되었다. 써야 하는 데 쓰지 못한 채 보관만 하고, 막상 붙이면 어딘가 어색했다. 어설프게 꾸밀 바엔 글만 쓰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스티커를 센스 있게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편하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또 다른 센스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내 성향을 아는 일이 먼저인 것 같다. 다이어리도 이것저것 사보고, 기록 방식도 시행착오를 겪어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게 된다. 다이어리 하울 영상과 기록 영상을 보며 처음에는 화면 속 사람들의 경제력과 체력이 부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이 단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록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해 방향과 방법을 건네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기록이 너무 좋아서, 이 좋은 걸 혼자만 알고 있기엔 아까워서 자신의 시간을 들여 영상을 만들고 올리는 사람들. 어디서 이런 다정함이 나오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 일기장을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구질구질한 문장들을 마주한다. 감정을 쏟아내느라 비문도 많고, 맞춤법이 틀린 문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머릿속이 온종일 라디오를 켜둔 것 같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글자로 적어 나가야 비로소 소리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하다고 여겼던 생각도 막상 옮기고 나면 서너 문장 뒤에 더 쓸 말이 없다. 그런 날이면 몇 문장짜리 생각을 붙잡고 하루 종일 속을 끓였다는 사실이 머쓱해진다.
나에게 다이어리는 단순히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 라디오를 멈추게 하는 대나무숲이기도 하다. 구질구질하기 싫어서 자신을 안 그런 척하며 애쓰던 마음을 결국 털어놓게 만든다. 이 과정은 제법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인정하고 나면 나는 늘 조금씩 심각함에서 벗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