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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y 18. 2023

라쇼몽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라쇼몽' 너도 나도 모두 다 아는 그 영화. 들어는 봤지만 선뜻 보기 어려웠던 그 영화. 아는 척은 하고 싶지만 당최 뭔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영화. 흔히들 '라쇼몽 효과'라는 단어로만 알고 계실 것 같다. 라쇼몽에 대해서 검색해 보면 따분해 보이는 흑백 고전영화가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아니면 산적 같아 보이는 아저씨( 노홍철 닮은꼴로도 유명하신데..)가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이 영화광이라면 꼭 봐야 할 것 같은 그 영화. 대학교 교양시간에 한 번은 과제로 봐야 하는

 그 영화 '라쇼몽'에 대해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영화 자체가 뭔가 심심한 느낌이라 이번 글이 잔잔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읽어주실 거죠?? )



자, 이제 혼란의 헤이안 시대 속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 라쇼몽 앞에 모여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세 남자들

곁으로 가 뭔 이야기를 하는지 엿들으러 함께 가봅시다!



영화는 라쇼몽 앞에 비를 피하기 위해 모여 앉은 스님, 나무꾼, 남자 이렇게 셋이 모이면서 시작된다. 스님과 나무꾼은 기묘하고도 난해한 이 사건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다. 이에 참다못한 남자는 도대체 뭔 사건인데 이리 심각하냐는 말에 스님과 나무꾼은 그날 자신들이 목격한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운을 띄우기 시작한다.


라쇼몽 밑에 모인 나무꾼, 스님, 남자



# 나무꾼

 이 살인사건의 첫 목격자인 나무꾼. 나무꾼은 관아로 가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악명 높은 도적 타죠 마루, 타죠 마루를 잡아온 남자, 스님 그리고 나무꾼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산속을 걷고 있던 나무꾼은 여성의 흰 모자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게 된다. 그런가 보다 하고 걷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의문의 남자의 시신을 발견했고 기겁해 도망쳤다고 한다.


# 스님

산속을 가던 중 우연히 말을 타고 가던 한 여인과 그 옆에는 남편이 같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모자를 쓰고 있었던 탓에 여자의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 타죠 마루를 잡아 온 남자

  강가를 걷고 있던 남자는 쓰러져 뒹굴고 있던 타죠 마루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죽은 남자에게서 훔친 화살과 회색말이 있었고 그 말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 타죠마루



남자의 말을 들은 뒤 그는 비웃으며 자신을 잡아 온 남자를 향해 웃기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사건당일, 타죠 마루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날 산속에서 쉬고 있었던 타죠 마루는 그의 앞을 지나가던 말을 탄 여인과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심드렁한 타죠 마루는 다시 잠을 잤지만 순간 그들 곁으로 ’ 산들바람‘ 이 불어왔고 바람결에 휘날리던 여인의 모습을 본 타죠 마루는 결심을 하게 된다. ' 저 남자를 제치고 여자를 차지하기로.'

미친 듯이 그들을 뒤쫓아 간 타죠 마루. 그들 앞을 막아 세우며 남자에게 말했다.

 “저쪽 무덤에 가면 값진 물건들이 많으니 내가 그 길로 안내해 드리리다." 남자는 타죠 마루의 말에 혹하고 그를 따라 무덤 쪽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타죠 마루의 거짓말이었고 타죠 마루는 남자를 밧줄로 묶어 여인 앞에 데려다 놓는다. 여자는 타죠 마루와 잠시 몸싸움을 벌었지만 끝내 그에게 당하고 만다. 여자를 겁탈 한 뒤 자리를 뜨려던 타죠 마루의 옷깃을 붙잡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 둘 중 한 남자만 따르겠어요. “ 타죠 마루는 남자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남자는 타죠 마루에게 죽임을 당하고 승리는 그에게 돌아간다.

 

 장면은 다시 라쇼몽 밑에 모여 앉은 세 남자들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무꾼의 얘기를 들은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여자도 타죠 마루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여자는 죽지 않았고 스님과 나무꾼은 여자도 사건에 대해 증언했다고 말한다. 이에 나무꾼, 스님, 남자는 더 깊은 사건의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여인


 

사건 직 후 절에서 은둔생활을 하다 증인으로 잡혀온 그녀. 그녀도 사건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겁탈한 뒤 도망친 타죠 마루. 적막한 산속에는 여인과 남편만이 남게 된다. 하염없이 울던 그녀는 자신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편을 보게 된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연신 노려보는 남편을 향해 울부짖는다. "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요, 부탁이에요."

매서운 그의 시선이 그녀를 압도했고 결국 그녀는 기절하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남편의 가슴에는 그녀의 단도가 박혀있었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진술한다.


여자의 증언을 들은 남자는 그녀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 남자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게 된다. "죽은 그녀의 남편도 증언했소. 무당을 통해 그의 증언을 들었어요." 


# 죽은 남편




밧줄에 묶여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가 무당을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타죠 마루는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가서 살자고 회유를 하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타죠 마루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고 그녀는 타죠 마루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의 남편을 죽여달라고. 생각하지도 못 한 그녀의 부탁에 타죠 마루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낚아채 바닥에 내치고 만다. 그리고 그는 묶여있는 그녀의 남편에게 말했다. " 이 여자를 어찌하겠소. 그쪽이 원하는 대로 하겠소" 그녀의 남편은 타죠 마루의 이 말 한마디에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적막한 산속 누군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그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채 말이다. 순간 그는 저 멀리서 빛나는 아내의 단도를 보게 된다. 사무라이답게 결국 그는 의미 있는 자결을 택했다고 말했다.



나무꾼은 죽은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가슴에는 단도가 아닌 장도가 꽂혀있었다고. 남자는 나무꾼에게 그럼 당신이 이야기한 것은 지어낸 것이냐고 물어본다.


# 감추고 싶은 진실 

그렇다. 나무꾼이 관아에서 말한 것은 거짓이었고 그날의 나무꾼이 본 진실은 이러했다. 여자에게 나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간청하는 타죠 마루. 그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다 하겠다고 그녀 앞에서 호언장담한다. 그의 말에도 계속 흐느끼던 그녀는 나는 결정할 수 없다며 울음을 멈추었고 자신의 단도로 남편을 풀어주었다. 그 이후에도 그녀의 흐느낌은 지속되었고 그런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타죠 마루는 그녀의 남편과 결투를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사무라이인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 저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고 싶지 않다. 그녀를 원하면 가져라."


이 말을 듣자 타죠 마루 또한 뭔가 흥미가 떨어진 눈치였다. 그녀를 향해 질책하는 타죠 마루와 그녀의 남편. 순간 그녀의 흐느낌은 그 둘을 향한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아내를 범했으면서도 타죠 마루를 죽이지 않는 남편. 명성과는 전혀 반대인 뭔가 소극적인 타죠 마루. 그녀는 사내대장부 같지 않은 그 둘을 향해 질책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뒤 뭔가의 자존심이 상한 것 같은 타죠 마루와 그녀의 남편은 얼떨결에 칼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어딘가 엉성해 보이고 애잔한 그 둘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거의 흙바닥에서 구르다 운 좋게 타죠 마루가 먼저 칼자루를 집어 들었고 '죽기 싫다'라는 애잔한 그녀의 남편 말 한마디 끝으로 타죠 마루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 이기심 속 희망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남자는 나무꾼의 진실마저 거짓이라고 응한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며 회의적으로 중얼거리는 스님에게 "원래 인간사는 그런 거요."라고 별거 아니란 듯이 남자는 말했다. 그 순간 그들 뒤에서 갑자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그들 셋은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남자는 아이에게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아이의 귀중품만 챙겼다.


 이를 본 나무꾼은 아이 부모가 두고 간 물건을 어찌 가져가냐고 소리치지만 지들 좋아서 낳아놓고 애를 버린 부모는 뭐냐 라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모든 일에 절망감을 느낀 나무꾼은 타죠 마루도, 여자도, 남편도 모두 이기적이라며 말한다.


 그때 남자는 나무꾼을 추궁하며 '단도'의 행방을 캐묻는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을 쳐다보지 못하는 나무꾼. 결국 그도 단도를 훔쳤다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사건의 주인공들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 나무꾼을 향해 당신도 그들과 같이 이기적인 놈이라고 쏘아붙인다. 그렇게 남자는 폭우 속으로 사라지고 라쇼몽 밑에는 나무꾼, 스님 그리고 아이가 남게 된다. 나무꾼은 스님에게 아이를 키우겠다 말하지만 선뜻 아이를 건네주지 못하는 스님. 그러자 나무꾼은 "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소. 정말이지 부끄럽소."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스님은 무언인가 결심한 듯 그에게 아이를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소.


영화는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듯 비가 그친 하늘 아래 나무꾼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여러분들은 범인이 누구인지에만 초점을 두고 감상하셨나요 아님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보셨나요? 제가 이 영화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맨날 명작 영화 하면 나오는 영화' 이 정도로만 알았지 그 다지손이 가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항상 아 나중에 봐야지 나중에 이렇게만 생각했지 계속 묵혀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예전에 제가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렸을 때 봤어도 그다지 별 감흥 없는 내용의 일본영화 이 정도로만 치부하고 말았었을 테니까요.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믿고 싶은데로 증언하는 각자의 인물들. 악명 높다던 타죠 마루는 그의 비겁함을 여인은 그날의 진실을 남편은 사무라이로서의 구겨진 자존심을 나무꾼은 단도를 훔쳤다는 것을 각자 그들의 거짓 속에 숨기고 싶었던 것이었죠. 영화 중간 즈음을 보시다 보면 이미 그들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타죠 마루는 여인을 '강한 여자'로 묘사했지만 스님과 나무꾼 눈에는 '연약한 여자'로 밖에 안보였다는 언급은 그들의 증언이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죠.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자신의 이기심을 앞세우며 진실 따위에는 관심 없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모두 지켜본 나무꾼은 앞서 보았듯이 다른 세 인물과는 다르게 자신이 부끄럽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죠. 이를 통해 감독은 갓난아기 즉, 어지러운 인간의 세상 속 믿음이라는 희망은 아직 존재한다라는 점을 나무꾼의 모습과 함께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장 비하인드컷 ( 미후네 도시로 할아버지는 타 마루 그 잡채이신 것 같네요. )


그리고 이 영화의 유명하고도 웃긴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영화 제작사 대표인 나카타 마사이치는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서 악평만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생각 외로 제작비도 많이 들었고 영화 내용 자체에도 불만을 토로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 각자 수상을 하자 자기 덕분에 영화가 잘 된 거다 나 없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냐 라는 식으로 태도가 180도 돌변했고 이를 본 구로사와 감독은 그가 완전히 '라쇼몽' 그 자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만약 증언자 중 한 명이었으면 어떻게 말했을까 과연 나도 진실을 말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 영화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날의 사건을 마주하셨다면 무엇을 보았으며 과연 진실을 말했을까요? 

그건 여러분들만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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