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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un 21. 2023

선셋대로 ( Sunset Boulevard )

: 찬란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한물 간 스타의 근황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왕년에는 여러 스포트라이트와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사람이었지만 예전과 비해 더 이상 빛 나지 않는 그들을 보면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교차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안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수처럼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여기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절 내로라하던 여배우의 인생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선셋대로 (1950)'는 별 능력 없는 극작가 '조 길리스'가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 '노마 데스먼드'를 만나게 되면서 생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그려낸 고전영화입니다. 작품성이 뛰어난 만큼 영화사에서도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뮤지컬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각색한 뮤지컬의 원작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안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 '선셋대로'에 대해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과연 조와 노마 사이에서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을까요.



로스앤젤레스의 선셋대로에서 대서특필 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호화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풀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남성은 ' 조 길리스 '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이다. 우리는 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난한 극작가 조에게는 큰 골칫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석 달이나 밀린 자동차 할부금.‘ 변변찮은 일거리 하나 없었던 조에게 할부금 '300 달러'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그는 일거리를 찾기 위해 제작사를 찾아갔지만 당연히 퇴짜 맞기일 수였고 일자리는커녕 그곳에서 일하는 '베티' 에게 자신의 원고가 영 지루하다는 악평만 듣고 오게 된다.


애물단지인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도중 자신의 차를 압수하러 찾아왔던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조는 재빨리 도망쳐버린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버리고 급히 선셋대로에 있는 오래된 주택 차고지로 숨게 된다. 그들이 간 걸 확인한 조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고 그는 그제야 자신이 대호화 저택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무덤이 될 그곳을 말이다.

선셋대로로 들어오는 조.


웅장한 저택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이는 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얼떨결에 그는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저택의 주인은 다름 아닌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 '노마 데스먼드'. 그녀는 이제야 알아봤냐는 듯한 태도였다. 이에 조는 자신을 극작가라고 소개한다. 때마침 시나리오를 써왔던 노마는 그가 작가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고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시나리오 대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귀환' 시나리오를.


때마침 자신의 시나리오를 다듬어줄 누군가 필요했고 '조'가 딱 안성맞춤이라 생각한다. 돈이 필요했던 눈치 빠른 조는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원래 그곳에서 하루정도 묵으면서 작업할 예정이었지만 노마는 그를 순수히 보내주지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자신의 짐들이 놓여있었고 잠시 격분한 그는 노마에게 따졌지만 집세가 밀렸지 않았냐며 그를 추궁하자 별 수 없이 그 우울한 저택에 머물기로 한다.


그렇게 조를 향한 노마의 집착과 광기가 시작된다.

' Comeback'이 아닌 'Return'이 될 거라는 노마 데스먼드


그곳에서의 일상은 평범했지만 항상 그의 그림자 뒤에는 노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집안을 가득 채운 노마의 사진들 속 그녀의 시선은 마치 조를 옥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에도 잠시 그녀와 영화를 감상할 때에도 그녀는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듯 과거의 영광에 도취된 채 그녀만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밀랍인형’ 같은 그녀의 초대손님들. 그들도 역시 한 때 무성영화 시대를 주름잡던 배우들이었고 지금의 노마처럼  과거 속에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녀를 향한 팬레터, 싸인 그 마저도 모두 거짓이었다. 실은 이 저택의 집사 ‘맥스’가 그녀를 위해 하루에 수십 통씩 편지를 써왔던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조는 아직도 과거를 잊지 못하는 노마를 불쌍히 여긴다.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퍼레이드를 향해 아직도 손을 흔드는 노마. 



새해전야 노마는 화려하지만 쓸쓸한 파티를 열었다. 조와 자신 단 둘 뿐인 파티를 말이다. 잔잔한 왈츠만이 그 넓은 홀을 채우고 있을 무렵 조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감정을 알게 된다. 노마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는 애정이 아닌 집착만이 남아있었다. 둘 사이의 말싸움 끝에 조는 자신의 친구 '아티'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도 새해를 맞이해 파티가 한창 이었다. 좀 전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웃음과 생기가 가득 돌고 있었다. 일전 자신의 원고가 지루하다고 말했던 '배티'를 만나게 되고 아티는 그에게 자신의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상반되는 파티 분위기


배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심 혼자 두고 온 노마가 신경 쓰였던 조는 맥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리는 노마가 자살기도를 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급히 노마에게로 달려온 조는 다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날 이후 조의 머릿속에는 배티에 관한 생각만이 휘젓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판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 때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저택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앞으로의 조와 노마 모두에게 재앙이 닥칠 것을 암시했다. 그녀는 이 전화가 자신의 원고가 맘에 들어서 온 연락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곧장 조와 함께 영화사로 향했다.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스튜디오를 구경하는 노마


그렇게 제작사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지만 노마를 반겨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왕년에 그녀와 함께 작업한 감독도 스태프들도 심지어 경비원들도 그녀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감독은 그녀가 보내온 형편없는 원고와 전성기 시절을 잊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깊은 측은지심만 느끼게 된다. 이에 감독은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로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 사이 조는 노마가 얘기하러 간 틈을 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배티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어렵게 만난 그 둘은 서로 함께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면 그 의문의 전화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노마가 아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차를 소품으로 빌려달라고 온 연락이었던 것이다. 그녀만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과거의 외모를 되찾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관리를 받는다. 다가오지 않을 카메라를 기대하면서. 그 사이 조는 몰래 일탈하는 청소년 마냥 매일 밤 노마의 시선을 피해 배티를 만나 원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둘 사이에 사랑이 짙어질수록 노마의 의심과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여느 밤과 같이 작업을 하고 늦게 돌아온 조는 곧장 잠에 들고 몰래 그의 방에 들어온 노마는 못 보던 원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손에 잡힌 건 조와 배티가 쓰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조가 매일 밤 몰래 배티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날 노마는 조의 시선을 피해 몰래 배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에게 들키게 되고 이에 조는 배티에게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말만 남긴다. 곧장 노마의 저택으로 온 배티. 조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돌아가자며 설득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현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조는 결국 배티를 돌려보낸다.


거울 속 혼란스러운 심정의 노마 /  배티를 설득하는 조.


이 모든 광경을 본 노마. 기쁨을 느끼기도 잠시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진절머리가 난 조는 저택을 떠나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를 붙잡기 위해 노마는 애원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상황. 애절하게 자신을 붙잡는 노마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영화 출연 따위는 없고 그녀가 아닌 차를 원했고 수십 통의 편지는 맥스가 보냈다는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끝내 노마는 부정하고 만다. 

아직도 그들은 날 원해. 난 대스타야!



드디어 카메라 앞에 서게 된 노마.


핏발이 선 그녀의 눈빛에는 소름 끼치는 시선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저택 문 밖으로 나가는 조. 그 뒤를 따라오는 노마. 이성을 잃은 노마는 자신이 갖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고 그렇게 조는 살아생전 그토록 갖고 싶었던 풀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다음날 수많은 경찰들과 기자들이 선셋대로로 몰려들었다. '잊힌 스타의 살인극'이 보다 더 좋은 헤드라인이 있을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노마 그녀만을 향한 시선, 조명, 카메라까지 너무나 열망하던 것들에 둘러싸여 비극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씩 내려온다.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채 '노마 데스먼드'의 마지막 씬은 막을 내렸다.


노마도 조도 모두 꿈을 이뤘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채.


<사브리나>, <7년 만의 외출>, <하오의 연정> 등 말하기 입 아픈 명작들의 감독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는 위 세 개의 작품 보다도 더욱 명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입니다. 영화 내내 조 길리스(윌리엄 홀든)의 무덤덤한 내레이션은 노마의 절망적인 현실과 당대 할리우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아냈죠. 특히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중 ' 비정한 사람들. 결국 노마는 언론 때문에 죽고 말 겁니다.'라는 대사를 통해 사건, 사고에만 혈안이 된 매정한 언론들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제 할리우드 무성영화배우들에 대해 알고 보시면 더욱 재미난 작품입니다. 동시에 1927년 이후의 유성영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죠. 


실제로 노마 데스먼드 역을 연기한 '글로리아 스완슨'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영화 속 노마의 거실을 채운 사진들은 그녀가 한창 무성영화배우로서 활동할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글로리아 스완슨'의 젊은 시절 사진을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요소 중 하나이죠.

'글로리아 스완슨'의 실제 활동 사진들

 무성영화 시절 코미디의 전설 ' 찰리 채플린'의 라이벌이자 그 또한 전설 중 하나였던 '버스턴 키튼'이 이 영화에 특별출연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노마의 밀랍인형 초대손님들 중 그녀의 옛 배우동료로 얼굴을 비췄습니다.


노마의 포커 친구들 중 한 명으로 출연한 버스터 키튼.

버스터 키튼의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그의 삶은 이 영화 속 노마와 비슷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 소리가 입혀지면서 그도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제작사에서는 코믹스러운 그의 연기에 중저음 목소리는 너무나 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는 점차 스크린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점차 키튼을 찾아주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절망스러운 현실에 점차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죠. 한물간 코미디 광고와 제작사에서 평범한 월급을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동료들은 그를 다시 스크린으로 복귀시켰고 빌리 와일더 감독도 '선셋대로'에 그를 출연시키게 된 것이었죠. 당시 이 영화에 버스턴 키튼의 출연은 큰 이슈였고 마치 그의 삶을 보여주는 듯 의미심장했습니다.


무성영화 시절 주역들.

버스터 키튼 이외에도 본인 역할로 출연한 세실 B. 드밀 감독, 안나 Q 닐슨, H.B 워너 모두 무성영화 속 한 획을 긋는 유명인사들이었죠. 그리고 영화 이외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제작한 뮤지컬 선셋대로도 매력적인 넘버들이 있는 뮤지컬입니다. 넘버들 중 가장 유명한 ' With One Look'과 'Sunset Boulevard' 들은 각각 노마와 조의 대표되는 곡들로 극 중 캐릭터들의 심정들을 한 층 더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답던 과거 속에 사로잡혀 그 시간 속에 계속 머물고 싶었던 '노마 데스먼드'

여러분들도 그녀처럼 영원히 살고 싶은 잊지 못할 찬란했던 시절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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