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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Nov 30. 2023

등대여명-하

방구석 영화제(1)- 시대가 우릴 갈라놓을지라도



겨우 정신을 차린 아강은 경찰과 격한 몸싸움 끝에 그를 창문 밖으로 떨어트린다. 이렇게 그들에게 있어 영원히 남을 밤이 흘러갔다.

아남에게 옷을 입혀주는 아비. 출처- 영화 '등대여명'


대망의 다음 날 아침, 침묵을 깨는 북소리와 함께 일본군들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의 길거리들은 점차 일본의 것들로 하나하나 변해갔고 아비와 아남 사이에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예전부터 아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남의 아버지는 그날 밤 사건 이후 결국 이 둘의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1941년의 홍콩은 그들의 운명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일장기 앞에 모두 모인 마을 사람들. 이들 앞에 선 일본군은 충성을 보이면 쌀을 주겠노라고 일제히 외친다. 하지만 비굴한 현실 앞에서 하나둘씩 앞으로 나가게 되고 이러한 상황을 아비와 아강은 그저 침묵한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일본군 장교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충성을 보이라며 외쳤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슬슬 눈치만 보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크게 소리쳤다.

'대동아 공영 만세 '아비였다. 아남과 아강은 그런 그의 손을 뿌리쳤고 혐오의 눈빛으로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운명의 시곗바늘은 천천히 비극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만세'를 크게 외치는 아비. 출처- 영화 '등대여명'


그 누구도 아닌 아비가 일본의 앞잡이가 되다니 그 둘은 이런 아비의 행동을 이상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저 자기 한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아남과 아강 사이를 가깝게 해주려고 했던 것. 자신과 아남 사이가 무언가 달라졌음을 인지한 그는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바로 내지 사람들을 위해 ‘통행증’을 얻는 것. 운 좋게도 일본군들에게 신임을 얻은 아비는 통행증을 손쉽게 획득했고 뒤에서 남몰래 내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사이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구상 중이었던 아강. 사업 밑천이 필요했던 그는 도박으로 꽤 큰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그의 친한 동료들이 친일파였던 요주석에게 인질로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아강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매달 일본군에게 포로들을 넘겨줘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요주석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강을 쓱 훑어보더니 그도 포로로 잡아넣는다.

아강에게 불을 붙이는 아비. 출처- 등대여명


그의 소식을 들은 아남은 재빨리 아비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곧장 그곳으로 향한 아비는 요주석의 비위를 맞추며 그의 경계심을 푼다. 한껏 신이 난 요주석은 보여줄 게 있다며 묶여있는 아남을 데리고 온다. 앞서 다른 포로들에게 했던 방식처럼 아남의 귀에다 폭죽을 쑤셔 넣고 불을 붙이려고 한다. 

아비는 아강을 구할 기회를 계속 엿보았지만, 기회는 선뜻 그에게 주어지 않았다. 이에 아비는 자신이 불을 붙이고 싶다고 선뜻 나서게 된다. 불이 붙은 심지가 타들어 갈수록 아비의 속도 같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 이 틈을 타 아비는 총으로 요주석을 죽이고 아강을 재빨리 데리고 나오게 된다.

둘 사이에 흐르는 아슬아슬한 분위기. 출처- 등대여명


아비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강을 데려와 침대에 눕힌다. 남은 둘은 그를 지극히 보살핀다. 하루하루 아강의 상태가 나아지나 싶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심한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아남은 평소에 자신에게 쓰던 약을 그에게 투여하자 차츰 상태가 나아지게 된다. 또 한 번의 힘든 고비를 넘은 아비와 아남 모두 지친 채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잠시 후 아남은 떠나려는 아비 앞을 막아서고 점점 둘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아비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녀의 입술이 더 빨랐다. 이에 아비도 모든 걸  체념한 채 그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하게 된다. 과연 아강은 이 둘을 보았을까?


다음날, 몸을 거의 회복한 아강이 깨어났고 동시에 불청객도 그들을 찾아왔다. 요전번에 아남의 아버지와 긴밀히 내통하고 있던 일본군 장교였다. 지난번 우연히 아남을 본 그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고 억지로 결혼을 강행시키려고 한다. 그녀를 데리러 온 그의 앞을 막아서는 아비. 일촉즉발의 순간 아강이 그를 제지했고 또 한 번 몸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남에게 불현듯 일본군들의 잔인한 한 장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이성은 잃은 그녀는 주위에 있던 갈고리로 장교의 목을 깊숙이 찌르게 된다.

과연 그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출처- 등대여명


곧장 셋은 지난번 때처럼 내지 사람들과 밀항하려고 부둣가로 향한다. 이번에는 무사히 전원탑승을 했고 드디어 자유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그들이 탄 배는 일본군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필 그 순간 아남의 발작 증세도 같이 시작됐고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아비는 임기응변으로 일본군들을 보내려고 했으나 그들의 정체가 들통날 순간 아비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고 만다. 폭탄을 쥔 채 애꿎은 미소와 함께 일본군들과 함께 자폭하게 된다. 넓은 망망대해 속 아강의 절규만이 가득 채워졌고 점차 배는 멀어져만 갔다.


긴 세월은 흘러 아강마저 떠나버린 지금 아남은 말한다. 예전에 어떤 두 남자가 있었다고.


저 타오르는 여명과 함께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인생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주윤발의 진지한 연기를 엿볼 수 있었던 필모였습니다. 훗날 만자량과는 '강호정'에서 엽동과는 '화평본점'에서 다시 재회를 하게 되네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홍콩의 역사적 사건과 우정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한 번에 전개하기 위해서 약간의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한층 더 넓은 주윤발의 연기 스펙트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이러한 점들을 커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네요. 영화 속에서 주윤발은 항상 웃고 있지만 동시에 슬픔을 담고 있는 눈빛을 보여줘서 인상 깊었습니다. 


이 영화 덕분에 주윤발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갖게 되죠. 코믹한 연기나 누아르 연기를 벗어나 다른 주윤발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나만 알고 싶은 보물 같은 영화였습니다. 다음 영화제는 매염방과의 귀여운 케미를 보여줬던 '공자다정'으로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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