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일미집
무더움이 어느 덧 가시고 있었던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SNS에서 내가 팔로잉 하고 있던 분의 피드에서 감자국 게시물을 보았다.
별다른 건 없었다. 숙대입구에서 후암동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보면
50년 전통의 감자탕 집을 다녀왔다는 게시물이었다.
50년 전통의 감자국집이라니..
내가 몰랐던 감자국 집이 있구나..
지금까지 서울의 유명한 감자탕은 다 먹어본 것 같았는데..
내가 아직 처음 들어보는 유명한 감자국 집이 있다니..
아직도 모르고 있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실망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알게 된 이상. 하루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50년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감자탕 집이다보니..
애매한 시간에 가거나.. 점심시간에 가면 대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서 가기로 했다.
집에서 꽤나 걸리는 위치였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숙대입구에서 내려서..
후암동 쪽으로 걸어야 한다. 최근 기상청에서는.. 가을의 날씨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처서가 지나갔다. 처서 매직이라고 하지 않나.
근데 그건 저녁 6시 이후 한정이었나 보다. 아직.. 9월 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모처럼 1년에 한 두번 갈까 말까 한 동네..에 간다는 생각에.. 하늘하늘한.. 소매가 긴 맨투맨을 입었다.
그런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회색 맨투맨이.. 어느새 뜨거운 태양아래.. 점점 나의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50년 전통 감자국 집은.. 용산..미군 부대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데..
그 말인 즉슨.. 미군 부대.. 일대에 높은 건물이 없다는 뜻..
그러니가. 그늘이 없다. 게다가 용산 미군 부대가 이리 넓은 건.. 오늘 처음 알았다.
후암동..까지 걸어가는 15분이.. 나에게는 태국 방콕.. 한 낮과도 같았다.
무덥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뜨거운 감자국을 먹으러 가야하다니..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이 잘 한 것일까? 하고 잠깐 잘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 오픈 한지 10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찾아간 곳은 50년 전통의 감자국 집
'일미집' 이었다.
유명한 곳이었다. 방송국 여러 프로그램에서 많이 나오기도 했고 수많은 유명인들이
사랑하는 맛집이기도 했다.
우리는 오래된 가게의 문을 열고..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감자국 집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목조 건물.. 예전 한정식집에서 볼법한 구조였는데..
오픈한지 10분이 되지도 않았는데.. 1층은 어느새 꽉 차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2층의 좌식 테이블에 앉아.. 감자탕(중)을 주문했다.
여기서는 보통 감자국 백반을 먹는다고 하는데.. 그건 다음에 오면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주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나온 감자국..
우선 내가 먹을 감자와.. 고기를 꺼내놓고.. 감자국 국물을 맛 보았다.
맛이 깔끔했다. 내가 알던 된장 베이스의 감자탕들은.. 들깨까루가 들어간 것이 기본이었는데
들깨 향이 진할 뿐더러.. 매콤하니 칼칼한 것이 특징이였다.
그런데 여기 감자국은 상당히 담백하고 깔끔했다.
정말 말 그대로 살짝 매콤한 국물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감자국의 감자가.. 그 구황작물의 감자가 아닌 건 아는데
여기의 감자국은 통감자 그대로 올라가서.. 마치 정말 그 감자가.. 구황작물의 감자같은 느낌도 들었다.
감자는 감자국 위에.. 토핑 형식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국물이 다 베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아쉬웠는데.. 아마 먹기 전에 국물에 담가놓고
끓여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딸려 나오는 반찬이며..메인인 감자국까지
시래기나..우거지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자연스레 밥까지 말아 먹고 싶다는..생각이 드는 그런 한 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