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던... 치앙마이 한 달 살이.
외국에 나가서 평생 죽을 때까지 사는 건 아니어도.
한 달 정도는 나가서 살아보고 싶었다. 아 물론. 대학생 때. 유럽 여행을 한 달 정도 한 경험은 있다. 근데 그건 여행이지 살아본 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유럽 몇 개국을 돌아다닌 거니까.. 여행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내 기준 산다는 건. 내일 계획 없이..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숙소에서 한국 집에서 있는 것처럼 보낸다는 걸 뜻한다.
나같은 경우는 완벽한 계획형..내향인으로서, 계획이 없으면 어딘가를 잘 안 나간다.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한 달이 되었든. 일주일이 되었든.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서 가는 편이다.
아무튼 5-6월 무렵..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코로나로 닫아 두었던 여러 국가들의 문이 조금씩 개방이 되자. 잠시 잠자고 있던 나의 여행을 향한 갈망이 스르륵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그래서 덜컥.
7월 어느 날. 술기운에.. 치앙마이 편도 티켓을 끊었다. 아 물론. 그때만 하더라도.
직항이 없었으므로.. 마일리지를 털어. 방콕까지 가서. 방콕에서 환승하는 걸 결제했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9월 30일이 되었다.
10월 1일 나는 출국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늘 집에서 업무를 보던 나는..치앙마이에 가서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외주며.. 이런 저런 일 모두 말이다. 인스타툰도 그려야 하고..또 일러스트도 그려야 하고.
현재 준비중인 웹툰도 작업해야하고.. 그러니까..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노트북.. 아이패드.. 흡사 누가보면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짐을 줄이기 위해.. 반바지를 3개를 챙겼다. 바람막이 하나와
나는 몰랐다. 10월 치앙마이의 밤이 추울줄은.
출국날 아침이 밝았다. 집에서 캐리어를 끌고..
혹시나 이게 20키로를 넘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말이다.
7월에 이미 베트남 나트랑을 다녀와서.. 약 2개월만의 방문이었다. 여전히
인천공항은 반가웠다. 늘 갈 때마다 설레이는 곳.
타이항공 10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했다.
방콕은 4번 이상 가봤기에. 딱히 방콕을 가는 길은 그렇게 새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새로웠던 것은.. 비상구 좌석에 앉아 보는 것이었다.
6시간도 나름 장거리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상구 좌석에 앉아 보다니.
그런데 비상구 좌석이 화장실 앞이었다. 그 말인 즉슨..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과 눈을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통로쪽에 앉은 내 어깨는
하염없이..툭툭 치는 불상사까지 겪었다. 그래도..치앙마이니까..
게다가.. 화장실에서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지?
했다. 한국사람인가? 했지만.. 다행히(?) 외국 사람이었다.
나는 보았다. 타이항공 승무원분들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약 3년 만의.. 방콕 수완나폼 공항.
여전했다. 묘하게 나는.. 향신료 냄새. 익숙한 습도.
더웠다.
안 그래도 두꺼운 옷을 입고 왔던 나는.. 등과 가슴 팍에서 땀이 줄줄 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치앙마이로 가는 16:55 항공권을 발급받고 짐을 부치고
내가 타고가는 방콕에어웨이의 라운지로 향했다. 에어컨이 나오니깐.
시원했다.
나는 마침 외주 작업을 해야해서..(원래는 비행기에서 하려고 했지만.. 실패.. 자버렸다.)
대형 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하는데..
외국 꼬마애들이 내 주위를 아주 사정없이 뛰어다녔다. 난 전쟁이 여기서 나는 건줄 알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내가 무얼 그리는지 감시까지 했다. (도대체 왜..?)
무언가 멋있는 걸 그려지는 걸 기대한 것 같은데. 꼬마애들과 눈을 마주친 나는
손이 멈추어버렸다. 네. 아무것도 못 그렸어요.
이로써. 난 외주 작업을.. 치앙마이에 가서.. 끝내야 한다.
아무튼 약 2시간 정도의 대기 후. 치앙마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수완나폼 공항 국내선 게이트로 향했다. 다행히 A게이트라서.. 그리 멀지는 않았다.
수완나폼에선 국제선 게이트만 이용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국내선 게이트도 잘 되어 있었다.
많은 치앙마이 주민들과 함께.. 방콕에어웨이도 비상구 좌석에 앉아 출발했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지금
비오고 있었다. ...
출발하기 전 누나가 우산 챙겨 가라고 했는데. 무시했다.
안 올 거라고. 건기라고. 그런데 10월까진 우기란다.
나는 바보다.
아무튼 1시간 20분 정도의 비행인데 기내식을 주는 방콕 에어웨이였다.
맘에 든다. 기내식을 주는 건 맘에 든다. 그런데. 내가 마침 통로에 앉았는데
내 옆옆 좌석의 손님들은.. 기내식을 안 먹었다. 그래서 나 혼자 먹게 되었는데..
기내식이 이렇게 따뜻하게 나왔나요? 아주 김이 모락모락 했다. 그리고 냄새가
아주 향긋했다.
나는 옆 좌석에 앉은 분들의 눈치를 살피며..재빨리 기내식을 해치웠다.
그런데 맛없다고 했는데.. 오잉.. 의외로 맛있었다. 역시 내 입맛은 지극히 평범하다.
드디어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비가 아주 주루룩 시원하게도 내렸다. 나는 재빨리 캐리어를 되찾고
공항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 치앙마이의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물이 차 있는 도로였다.
네. 홍수가 났습니다.
약 15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는 근처 식당으로 밥을 먹으려고 향했다.
아니 먼저 우산을 사고 싶었고.. 세븐일레븐에 갔으나 팔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 플라스틱 바구니에 우산이 들어있는 잡화점을 발견했고..
재빨리 가서 하나를 구입했는데..
아동용 우산이었다.
흙..
어깨가 넓은 건 아닌데.. 어깨가 젖고..
거의 우산은 나의 모자 역할을 해주었다.
아니 모자였다. 사이즈가. 버릴까..?
아무튼.. 아동용 우산을 쓰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메뉴 판에.. Vegan이란 메뉴가 보였다. 에이.. 설마 했는데....
네.. 여긴 채식 전문 식당이었다.
내가 채식을 싫어한 건 아닌데. 배고파요. 난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콩고기..말구요..
왜 채식인가요..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배고팠으니까.
나의 치앙마이 여행.. 아니 한 달 살이..
과연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