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의 끝에서,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여정의 끝.
재미있었고, 소소하게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이 끝이 나듯.
어느새 나의 치앙마이 한 달 살기도 끝이 났다.
마지막 날. 방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오전 11시 55분이었다.
그리고 4시 30분에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전 9시에 치앙마이에서의 삶을 정리했다.
이렇게 말하니깐 뭔가 마지막을 정리하는 기분인데, 예전에 처음 서울에서
한 달 반? 정도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그전에는 이모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때가 나의 첫 자취였던 셈. 독립이라고 하기엔 거창했다.
사실상 한 달 반밖에 안 살아서. 지금 생각해 보니 서울 한 달 살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 군입대를 준비했다.
그때의 나는 한 달 반동안 서울 홍대에서 자취를 하며, 재미나게 놀았다고 생각했다.
밤늦게까지 홍대에서 술도 마셔보고, 친구들이랑 새벽을 활보하고 다녔던 그런 기억.
그러다가 간혹 내 방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보드카 한 병을 가지고 아껴 마시며 놀았던
그런 기억이 있다. 지금은 뭐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당시에는 재밌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걱정 없이, 그냥 내일은 뭐 하지? 하는 그런 생각만 했었다.
아무튼 그런 기분을 오랜만에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서 느꼈다.
사실 MBTI에서 J의 영역이 도드라지고 강한 나는 31일 마지막 날 하루 전 30일에
짐 정리를 마쳤다. 한 달 동안 묵었던 숙소를 고장내거나, 사고 없이 무사히 잘 썼으나.
31일 아침에 찾아오는 한국인 주인분에게 무방비한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 전날부터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태국에서 편리했던 점은. 고급 빌라라서 그런지, 쓰레기를 층마다 있는 쓰레기 방(?)에
모아두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긍지의 한국인. 재활용의 나라에서 와서, 나름 열심히 재활용을
척척 잘 해냈는데, 실제 현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까지 재활용을 하지 않는다고…
(지구 어떡해?)
아무튼, 쓰레기를 미리 버리고, 다음날 영양제와 마실 물 500미리 병만 남겨두고 모조리 정리했다.
31일 아침,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캐리어를 쌌다.
그리고 막 도착했다는 집주인 분의 연락을 받고 현관문을 열고 주인분을 맞이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 한 달 동안 거의 하루의 절반의 소음을 담당했던 TV를 보고(나름 태국 TV 볼 것이 많았다.)
태국이 왕실이 있는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소중한 TV… 아무튼, 그리고 닫혀있던, 부엌문을 열고,
베란다 문도 열고, 침실 창문과 덮고 잤던 이불이 눈에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잘 놀다 잘 쉬고 가는데, 뭐가 이리 아쉬운지…
사실 치앙마이를 떠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앞으로 12시간 비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실이 너무 귀찮았다. 이게 다 치앙마이에서 만든 인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연의 끝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듯한 느낌...? 거창하지만 그랬다.)
글쎄, 생각보다 내가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것이었다!
단지, 오래 나가는 거 말고 짧게 나갔다 오는 거 말이다.
그전까지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카페 가는 것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카페 가서, 일이나 할 줄 알았지. 커피 맛이 어떻고… 분위기는 어떻고… 그런 것을
할 줄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치앙마이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카페라던지… 아니면 소소한 동네 카페에 가서
여기의 분위기는 어떻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다 보니 혼자 즐기는 것이 더 편해졌다? 뭐 그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카페는 그냥 누군가와 함께 가는 곳. 가서 일하고 수다 떠는 곳인데,
이번 치앙마이에서는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녔다.
케이크가 유명한 집에 가서 혼자 케이크 1-2조각을 시켜서 맛을 느껴보고, 느낀 점을
메모에 적고. 함께 주문한 커피를 마셔가며, 커피와의 조합은 어떻고… 그런 것들을 했었다.
이게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나에겐 크나큰 경험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국 아니 앞으로 떠나는 어떠한 국가에 가서도 혼자 즐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다.
타지에서 안전하게 혼자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무서움 말이다.
그래도 20대 때는, 같이 갈만한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주위에 남는 친구들도
하나, 둘 줄어들고, 같이 갈 수 있는 친구가 아직 있더라고 그 친구가 회사 혹은 결혼 자금 준비와도 같은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라서…
어쩌면 앞으로 혼자 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어딘가에서 한 달 이상 살아 본 적이 있던가?
아 물론, 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 한 달… 은 뭐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살았던지라…
이것을 한 달 살기라고.. 하기엔..
아무튼, 퇴사하고 바로 한 달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숙소를 예약하고
무작정 떠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느낀 점, 혼자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뭐든 해도 된다. 가 맞았다.
그리고 2주가 지날 무렵, 혼자 하는 것들이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을 때쯤 느꼈다.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을…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깃집에서 홀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아 물론 못했다. 못한 이유는 다 먹을 자신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혼자 하는 게 귀찮아졌지만… 사실 혼자 하는 것들이 그리워서,
무작정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치앙마이 한 달을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방콕에서 3시간 대기하고 온 치앙마이.
비가 많이 내려서 도로가 잠겼던 치앙마이.
극심한 우기에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으면서, 저녁을 먹으러 헤매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데나 가면 맛있다고 해서, 무작정 들어간 곳이 채식 전문 식당이였단 것도 코미디)
밤길이 어둡고, 가로등은 왜 이리 없는지… 치앙마이에 대한 첫인상을 감상하고 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세븐일레븐에 가서 한국과는 정반대의 상품들과 생전 처음 보는 음료들… 그리고
현지 시장에 가서 흥정하고, 비싸서 못 먹던 과일들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던 그 순간과
더운 날씨 속에서 야외에서 뜨거운 국수를 먹던 상황.
비 오는 치앙마이를 15분을 걸어서 쏨땀을 먹으러 가던 그 순간.
그리고 한국분들과 함께 했던 저녁들…
밤 8시, 나 홀로 수영장에서 유유자적하게 수영하면서, 별을 보던 그 순간.
발도 다치고, 지갑도 잃어버리던 그 순간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서, 손짓, 발짓 다 해가면서 소통하던 그 순간들.
하나의 일들이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나에겐 다시 돌아와야 될 이유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관광지, 핫한 식당, 카페에 가는 것이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런 것보다 이런 소소한 한 달 살이의 기억 때문에,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
캐리어를 어떻게 끌고, 택시를 불러서 공항까지 갈까? 했는데…
집주인분의 집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나를 데려다주셨다.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떠나는 날 아침 구름은 높았고, 하늘은 파랬다.
그리고 여전히 더웠다.
안녕 나의 치앙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