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내일 아침 마드리드로 향한다.
아테네의 석양 -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 (+동행)
예전부터 아테네의 석양이 보고 싶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테네의 일몰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 일몰이 너무 궁금했다.
그렇다면 그 언덕은 어디인가?!
그리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국가.
(그리스도 우리나라처럼 산의 정기를 빼앗아 먹는 고등학교가 존재하는가?)
산도 많고 하니, 못 올라가는 곳에는 신이 산다고 생각할만하다.
아테네는 법으로 아크로폴리스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고층빌딩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오르게 되면,
정말 말 그대로 쫘악 펼쳐져 있는 아테네 시내를 구경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와는 비슷한데, 건물 특성이 다른 탓에 아테네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뭔가 이상하게 따뜻한! 남부! 이런 느낌이 드는 아이보리 색의 도시느낌이랄까?!
아테네에는 일몰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아니다 몇 군데도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두 군데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과 리카베투스 산,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은 파르테논 신전 옆에 붙어 있어서, 찾아가기 쉬운 곳.
반면 리카베투스 산은 모나스트라키 광장이나 신타그마에서도 조금 가야 하는 편.
(나는 겁이 많고, 이동비용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아서 아레이오스 파고스로 선택했다.)
그런데 뭐 사실 어느 곳에서 봐도 아테네는 멋있으니까, 아무 곳이나 가도 될 듯 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일몰은 포기할 수 없었다.
늦가을? 아니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지기 때문에,
느지막하게 5시 저녁을 먹고 딱 좋다.
혼자 갈 수는 있었지만… 후기에 의하면 가는 길에 소매치기도 있고 뭐 이런저런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일찌감치 동행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아테네 동행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게, 마침! 딱 이틀 겹치는 아테네 동행분을 구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오후 5시 모나스트라키 광장이었다.
이미 아테네 여행 이틀 차에 나는 아테네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이 된 상태였고,
쫄래쫄래 홀가분한 마음으로 석양을 구경하기 위해
동행분을 만났다. 동행분과 함께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으로 향하는데,
내가 걱정했던 위험 요소는…
어디 있나요?
(중간중간 팔찌 같은 것들을 강제 매입하는 위험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가면 딱히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은 돌로 이루어진 언덕이다.
올라가는 건 쉽지만 올라가서 조심해야 하는 곳.
자칫 잘 못 했다가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만날 수 있다.”
약 30분을 동행분과 서로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양을 기다리면서, 이 순간이 뭔가 기억에 오래 남는데 내가 아테네에 대한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순간이었다.
묘하게 벅차오르는 듯한 감정이었다. 도대체 뭐가 무섭다고…
사람 사는 곳은 똑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정말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서..?
찬란하게 사그라드는 일몰을 보면서, 나와 동행분은 앞으로 남는 여행에 대해 각자 기대를 걸었다.
벅차오르는 이 감정은 나른하게 만들었고, 이곳 이 순간은 마치 구름 위에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파란색의 그리스 국기처럼 그런 색상이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주황색의 아테네도 제법 멋있었다.
그래서 이 감정을 어떻게 주체하느냐?
네. 사진을 찍습니다.
끝나지 않는 식사
동행분을 만났을 때, 동행분의 목표는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저녁식사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를 했었다.
솔직히 그런 멋진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식사하는 건 모두의 로망이 아닐까…?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정말 어디서든 아크로폴리스가 잘 보이니 어느 식당에 가도 되는 것이었다.
정말 모나스트라키 광장 근처 어디의 식당을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 풍경…
그러니 굳이 그런 곳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건 조금 아깝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차라리 플라카 광장에 야외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아테네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게 된 것은... 나도 여기 와서였다!)
오히려 아크로폴리스를 구경하면서 저녁 산책하는 게 더 낭만적이다.
우리가 주문한 주키니 튀김과 푹신한 그리스 빵과 고기를 시켰다.
음. 양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서.. 받자마자 1차 당황했다.
주키니 튀김 맛은 있었는데, 그것만 먹기엔 너무.. 느끼했다.
결국 우리는 남기고야 말았는데, 여기서 2차 당황
그리고 옆 테이블 프랑스인이 각각 감자튀김을 시키더니 1인 1그릇 다 비우는 것을 보고 3차 당황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취향 차이의 남다름에 대한 흐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아크로폴리스를 보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인 자체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점심식사
나와 동행분은 다음 날,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가기로 해서 점심부터 만났다.
점심은 가는 길 아테네 중앙시장 내부에 위치한 시장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건 해산물 구이 모둠 세트!
한화로 약 4만 원 좀 했던 것 같다. 맛은 뭐 나름 괜찮았다.
레몬은 잔뜩 뿌려서, 올리브 오일에 버무려진 해산물을 하나하나 까먹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맛도 담백하니 딱 그리스 다웠다.
전날 먹었던 주키니 호박에 대한 충격도 잊을 수 있었던 맛.
그리스의 마지막 식사.
내가 내일 아테네를 떠나게 된 상황(3박 4일의 아테네 여행이 끝이 난다.)
그래서 나름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우버를 타고,
산티그마 광장에서 내려 플라카 광장을 거쳐 식당까지 걸어갔다.
“마침 일몰시간이라 플라카에는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어졌다.”
메뉴 이름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가 주문했던 음식은
아페롤 스피리츠(지중해와 잘 어울리던), 문어 다리 요리, 그리고 리조또 하나
역시 여기서도 아크로폴리스가 잘 보인다.
이스탄불도 그렇고 아테네도 그렇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많았는데, 만져도 도망가지 않더라.
아무튼 음식의 맛은 보장된 것 같았다.
혼자 드시던 분도 계셨고, 서빙하는 분들의 표정에서도 은은한
자신감 같은 것이 보였는데… 어쩌면 내가 분위기에 취했을 수도..
음식이 나오는 데는 조금 오래 걸린 편이었는데,
문어 다리의 맛은 담백했고 리소토의 맛도 담백했다.
느끼함 하나 없던 아주 고소하고 담백한 맛.
아테네라는 도시
내일이면 아테네를 떠나,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리는 마드리드로 향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내 생각의 180도가 바뀌어버린 아테네.
물론 아테네가 지금도 치안이 불안정한 곳도 있다. 옴모니아 지역이라던지… 외곽 쪽으로 가게 되면
조금 위험한 구역이라 현지인들도… 아테네에 거주하는 한국분들도 말리시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저녁 8시 이후로는 나가지 않으니까,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실제로 돌아다니다 보면 어슬렁 거리는 부랑자, 노숙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옴모니아 지역 쪽으로 가면,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절대! 그 지역으로 숙소를 구하거나 이동하면 안 된다. 난민들도 많고 하니…
거주하시는 분들에게 들은 것인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으면, 행여 자신을 찍는 줄 알고
와서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고…
내가 안 당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조심해야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 대한 인식이 이번 여행을 통해 확 바뀌게 되었다.
여유롭고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니 다시 올 거다. 다시 와서 다음에는 섬 투어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일 떠날 준비를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아니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아테네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