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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 Feb 28. 2023

[내향인의여행일기] 아테네 여행 3편, 찬란했던 아테네

이제 아테네를 떠나 마드리드로 향하려던 찰나.


그리스 파업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오후 4시 20분.

느긋하게 3시간 전에 공항으로 가야지!


아침 일찍 샤워를 마친 나는 옷을 갈아입고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호텔 로비로 향했다.

체크아웃 시간이라 그런 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카운터 앞에 모여 있었는데.


“No Bus, No Train, No Taxi! to airport!”


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직원분이 보인다.


 ‘No’라니? 

무슨 소리야?

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카운터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직원이 A4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Strike]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스트라이크? 


내가 아는 그 뜻이 맞아?

인터넷으로 후다닥 검색해본다.


그러니까 아까 직원이 말한, 노 버스, 노 택시, 노 트레인… 

이 말은  아테네 시내의 교통수단이 모두 파업 중이니

공항까지 운행하는 교통도 파업한다는 말이었다.


"설마... 나 오늘 공항에 갈 수 없는 거야? 나 가야 하는데? 예약까지 다 했는데?!"

라고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어보니,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망했다. 진짜 망했네! 나 공항 가야 하는데?! 


설마 싶어서 한국 뉴스를 비롯해 외국 뉴스 플랫폼에 검색해보니...

정말 떡하니 ‘아테네 교통 팝업’,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파업’ 한다고 한다.


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아니 이런 파업이 일어난다니 아무도 몰랐잖아!

라고 직원에게 물으니, 미안하다고만 한다.

이말인즉슨 너 알아서 해야해 라는 뜻이겠지.


공지사항은 어제저녁에 공지게시판에 붙인 것이 전부였다.

서비스의 나라 한국에서 온 한국민은 이런 서비스에 그저 당황할 뿐. 

한국이었으면 미리 알려줬을지도… 아니 하다못해 어젯밤 숙소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고 알려줄 수 도 있지 않은가?

(아주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당황한 것 같았다.

파업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그저 직원만 바라볼 뿐.


직원이 혹시 모르니 항공편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나보고 어디 항공사냐고 물으니, ‘에게안 항공’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항공편도 파업 자주 하니까.

 운행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아테네 국제공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니…

마드리드행 항공편은 정상 운행이었다. 


"제발 몰래카메라라고 해주세요."


넋이 나간채 호텔 의자에 앉아 있으니, 직원이 나에게 잠시 기다려보라고 했다.

택시라는 단어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택시 회사에 물어보는 듯했다. 

결과는? 당연히 노!

하염없이 우버만 쳐다보는 나.


4시 30분 비행기라, 늦어도 2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늦어도 1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아테네 시내에서 공항까지 최소 40분이상 소요 된다고 한다)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벤 앞에 서서, 공항... 픽업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


마드리드 숙소도 예약했고, 심지어 내일 오전에 있는 미술관 투어도 다 예약된 상황이었다. 

여기서 마드리드를 못 가면 내일 그 모든 것이 다 날아가버리는 셈. 

그래서 직원을 붙잡고 그리스식 영어를 해쳐나가며 나를 살려달라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직원이

‘프라이빗벤’이라는 콜벤 예약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해당 사이트에서 예약하면 아마 올 것이다.

라고 하는데, 당일 예약이... 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유럽에서 그럴 일이 가능하다구요?)


그래도 될까 싶어.

사이트로 들어가서 오후 1시 30분 차를 예약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차를 기다리는 것

호텔로비에서 하염없이 도로만 쳐다보는 나.

맘같아선 아테네로 승전소식을 전하러 온 마라톤 용사처럼... 공항까지 냅다 뛰어 가고 싶었다.

엉엉. 눈물은 안 났지만, 마음으로 아주 서글펐다.

(내 돈)


역시나... 그 벤은 오지 않았다. 

무려 2시가 넘어서도 감감무소식

보딩시간 최소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제 2시다. 

늦어도 2시 30분까지는 출발해야 한다. 직원에게 짜증을 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한다.

(포기하라는 의미인가?!)


다시 아테네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사무실 직원이 내려와 나의 상황을 듣고는 본인이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이때 시간이 오후 2시 20분. 

지금 처리하는 일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근데 이미 이때부터 포기상태)

혼자서 유럽사람들은 느긋하던데 3시에 오는 거 아냐? 라고 했는데


정말 3시에 내려왔다.???? 

(잠깐이 40분이?!)


그 직원은 정말 미안하다며, Sorry라는 단어를 연거푸 사용했다.

심지언느 내 캐리어를 직접 끌고 자신의 차까지 가려고 했다.


"공항까지 얼마나 걸립나요?"

내가 직원에게 물었다.


"한 시간!"

이라고 답한다.


네? 지금 3시 10분인데요?

비행기 이륙은 4시 10분인데요?

이러다가 비행기 구경만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봐도 불가능이다.

안 될 것 같았다.

(빠르게 포기하자 마음이 급 평온해졌다.)


그냥 하루 더 묵을 수 있다. 내일 출발해도 된다. 

정말 고맙다고 했더니, 그 직원도… 알겠다며 내 캐리어를 놓아주었다.

(이때 조금은 감동했는데,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러지 않은 부분)

(한껏 경계심 가득한 내가 그리스 사정때문에 그리스 사람들을 불편해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파업으로 그러한 점이 모두 깨져버렸다.)


"1박에 얼마입니까?"

다시 카드를 꺼내어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웃기지, 그때는 정말 심각해서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정말 웃긴 건 10년 넘게 해오던 영어실력이 이때 확 늘었다.


사람이 위기상황에 처하면 언어실력이 확 늘게 되는 것을 알아버렸다.

파업! 어떡해! 나 공항 가야하는데! 어떡해!

이 모든 단어들로 문장을 구성하고 내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야하다보니 영어 문장을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오니 다시 0단계로 돌아갔지만)


아무튼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와 비행편을 취소하려고 보니, 환불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조심스레 인천행 비행기를 알아보니 200만원이다.

(그냥 마드리드 갈게요.)


이제 그렇다면 내일 마드리드는 어떻게 갈 것인가?

가장 빠른 비행은 몇시지? 

오후 3시 출발 바르셀로나 경유였다. 심지어 밤 10시 도착.


문제는 70만원이었다.

70만원


....

뭔 일일까?


결제버튼을 누르는데, 뜨거운 무언가가 손등을 타고 흘러 내린다.

눈물인가요?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배게에 머리를 파묻었다.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내일도 파업이 지속되면 어떡하죠?






또다시 석양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서글픈 면이 있다.

바로 이런 위급한 상황을 혼자 겪어야 한다는 점.

나이는 먹었지만 위로는 필요한 법이다.


문득 동행분이 떠올랐다.

아직 아테네에 계시려나?


"혹시 아테네세요?"

라고 톡을 먼저 보내본다.


"네"

라는 간결한 문장이 돌아왔다.

기분이 좋았다. 안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정말 오래된 친구가 아테네에 있는 것같았다.


마침 동행분이 새로운 동행분과 파르테논 신전을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연이 생겼다고... 5시에 석양을 보러 가겠냐고 물어보니


"좋아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혹시 그리스 신이신가요?

자애로우십니다!


나는 곧장 호텔을 뛰쳐나왔다.

석양을 보러 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업때문에 멘붕이라 아침, 점심을 거른 것이다. 대단히 큰 일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1분 1초가 소중하기에

유명한 무언가라도 먹어야 한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로스 맛집으로 향한다.

(기로스는 케밥 비슷한 음식인데, 두툼한 그리스 빵에 고기와 야채를 싸서 먹는 형식이다.)


줄이 어마어마했다. 현지인들이 대부분.

기로스를 주문하니 곧바로 고기가 구워진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한 20분 정도. 맛집 인정합니다.)


내가 주문한 건, <소고기 기로스>였는다.

뜨거운 기로스를 손에 집자마자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먹었던, 기로스. 맛있긴 진짜 맛있었다.


와-악

크게 한 입 기로스를 베어문다.


담백하고 기름진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두툼한 그리스빵이 부드러운 맛을 더 자극시킨다.


힘들었던 감정이 아닌

돈이 아까운 그 감정. 허튼 곳에 소비한 그 감정.

그 허탈하고 우울한 기분들이 기로스 한 입에 무너져 내리는 듯 하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숯불향과 고기향

그리고 상쾌한 토마토의 식감까지.

가끔 짠맛이 올라왔는데

(아마 이건 내 눈물이겠지...)


정말 가볍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입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하루 더 볼 줄이야...

순식간에 기로스를 해치우고 만나기로 한 파고스 언덕으로 향했다.

동행분과 새로운 동행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가기 전, 각자 맥주 한 캔식 구매하자고 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달달한 맛의 딸기 맥주. 그리스 맥주인가? 하고 알아보니 스웨덴 맥주였다.

구름 한 점 없는 그리스 석양에 달콤한 딸기 맥주 한 모금.

안타까운 하루의 위로였다.

여행? 뭐 있겠어. 이런 게 여행이지

오늘도 여전히 예쁘다.

이런 에피소드마저 그저 여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저는 마드리드에서 핸드폰 소매치기를 당했어요."

새로운 동행분이 문득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분은 그때 나처럼 한국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아니다. 이왕 나온 거 제대로 즐기고 가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 않다고.


나도 안다. 분명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오늘 일이 가벼워지겠지.

기분이 우울한 건 어쩔 수 없다.


"짠"

그럴 때는 건배다. 그냥 잊자는 뜻.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냥 봐도 지나칠 수 없는, 아테네의 야경과 석양


현지인 로컬 맛집.


"예전에 연락하던 분이 근처에 계시다는데, 식사 어때요?"

라고 묻는다.


모두 오늘 처음 본 사이

거절 할 이유가 없다.


"좋아요"


우리는 그분과 '모나스트라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지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분위기는 있었던 식당이었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하는데

멋진 노신사 분이 웨이터셨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사람을 단번에 혼쭐내주시는 멋진 분)


반갑다고 그리스 전통주 한 잔을 내어주신다.

로컬 식당답게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그리스 음식들, 개인적으로 저 문어다리 요리가 제일 담백하고 맛있었다.


각자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한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옆테이블 커플이 맛있게 뜯어먹던 뼈(?)요리)


모두 처음 본 사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여행담을 나누며 서로의 음식을 공유했다.

사실 하나만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움.


우리는 그릇을 남김없이 비우고, 아크로폴리스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루프탑으로 향했다.

첫 만남엔 역시 술 한잔인가?


저녁식사에 합류하신 분은, 그리스와 터키를 자주 출장을 다니시는 분인데

그리스에 몇 달이상 장기거주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분은 그리스가 제 집같다고 했다. 워낙에 많이 다니는 탓에.


그 분이 말하기를 서로 미리 알고 있는 사이였다면, 공항까지 데려다줄텐데...라는

아쉬운 말씀을 해주셨다.

(...)


우리는 자정이 다되도록, 그 분의 그리스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그 와중에 오렌지 케이크까지 사주셨다. 그리스에는 신이 참 많다.)

나름 운치 있었던, 아테네 모나스트라키 광장의 루프탑 바


오렌지 케이크는 그리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디저트라고 한다.

그리스 답게 상큼한 맛이 꽤 인상적이었다.

진한 오렌지향이 가득했던, 오렌지 케이크.

여행이란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각자의 여행담을 하는 것.

서로가 경험한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매력이고 재미인데

문제는 이게 길어지면 다들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뭐 나는 덕분에 우울했던 하루가 조금은 유쾌해졌지만.




정말 안녕. (a.k.a. 노이로제)


"내일은 떠날 수 있겠지."

자기 전까지 불안했다.


갑자기 파업 더 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오만 잡생각이 다들었다.

(오죽했으면 그때의 심정을 녹음까지 했겠어.)


고작 하루 당해놓고 그러냐 할 수 있는데.

난 여행자니까...게다가 돈이 달려있지 않은가!

이건 부자도 용납이 안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 경유 마드리드 항공편은 오후 3시 30분이었다.

이번엔 5시간 일찍 가기로 한다.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한다.

다행히 지하철이 운행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개찰구를 바쁘게 드나든다.

(파업이 끝났다!)


남의 나라 파업에 민감해지다니...

그리스 와서 살아도 되겠어.

지하철 역에 왔다는 게 이렇게 감격스러울 일인가! 네!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똑바로 떴다.

(행여 중간에 내리라고 할까봐. 파업보고 놀란 가슴, 지하철보고 놀란다.)


다행히 지하철은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수속까지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같은 EU국가간 이동이라 따로 출국수속은 없었으나,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나의 경우.

항공사 카운터에서 유심히 보는 듯 했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내가 타는 항공은 부엘링 항공인데, 유럽의 저가항공이다.

(이미 70만원 결제한 시점부터 나에게 고급항공이지만)

악명이 높은 편이라... 내가 보내는 짐이 마드리드에 잘 도착하는지

한 5번 정도 물었다.


"내 짐 마드리드에서 찾는 거 맞죠?"

"네"


친절하게 웃어주며 대답해주는 그리스 사람.

스윗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리스 사람들이 표정이 무표정으로 보여도

도와줄 때는 그 누구보다 제 일처럼 도와준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아테네 공항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김포공항 정도 크기인 것 같다.

오프라인으로 다운로드한 음악을 들으며, 비행기를 기다린다.


오후 3시 40분 비행기가 연착을 했다.

...

불안해진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다행히 30분 연착이었고, 이대로 더 늦지만 않으면 마드리드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할 것 같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어째... 동양인이 나 혼자다.

(???)


아무렴 어때. 아테네를 뜨는데(?)




아테네 여행에서 전부이자 끝이었던 그리스 파업.

진짜 잊을 수 없다. 덕분에 유럽 파업도 경험하고 데이터도 얻고

(원한 거너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오고 싶었다. 그리스는.

언젠가 아니 조만간 빠른 시일내에 다시 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 사람들이며 음식이며 모든 게 그리스 태양과 닮았다.


그럼 안녕 아테네.

αντίο, εις το επανιδείν, γει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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