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보여

by 이리



내 기준의 자를 꺼내어 너의 깊숙한 부분까지 재단했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하나씩 하나씩 잘라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리석은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이 내 작은 세계의 전부이고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라고 믿었다.

너는 나보다 더 건강하다.

나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 커다란 중심을 난 왜 이제야 보게 된 걸까.


너의 두꺼운 뿌리는 땅에 깊숙이 박혀있다.

뿌리에서 올라온 나무는 한 아름도 넘는 두께로 뻗었다.

가지는 때론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곧다.

잎사귀는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까이서 보면 무슨 잎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희미한 실루엣이 보인다.


-2014년 3월 14일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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