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남긴 세월의 침묵
강해지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꿈에서
내 마음의 가장 약한 자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무엇에 부딪힌 건지, 곧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기내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찾아야만 한다’는 단 하나의 의지로 움직였다.
공포도, 소리도, 주변의 모든 소란도 들리지 않았다.
내 존재 전체가 오직 딸에게 집중됐다.
지금 찾지 못하면
영영 딸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박함이 나를 거칠게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때, 출입문 쪽으로 미끄러지는 딸을 보았다.
비행기 밖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급한 순간이었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나는 본능처럼 몸을 날렸다.
온 힘을 다해, 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랑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떠날까 봐,
나는 더 크게, 더 분명하게 소리쳤다.
그 말이 딸의 마음 어딘가에라도 닿기를.
그 순간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기를
온 영혼으로 바랐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뿐이었다.
꿈이었다.
너무도 생생했다.
깨어나고 나서도 손끝은 얼얼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었고,
움켜쥔 손은 한동안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는 말했다.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이다.”
꿈은 저항 없는 진심이 드러나는 자리,
억눌린 감정이 떠오르는 통로다.
그 꿈은 내 마음 깊은 곳의 진실을 드러냈다.
나는 그제야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딸과의 갈등을 지나
나의 어린 시절을 하나씩 되짚는 과정에서
끝내 전하지 못했던 말,
가장 늦게 깨달은 말은
결국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였다.
꿈속에서 딸을 잃을 뻔하고서야
비로소 사랑을 말할 수 있었다.
그게 미안했다.
그토록 중요한 말을
왜 나는 그렇게도 오래 감춰왔을까.
사랑의 표현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은
사랑을 건네는 법도 모른다.
감정의 대물림 속에서
나는 앞선 세대의 방식을 따라왔다.
그 방식은,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대로 따랐다.
나 또한 그것에 익숙했고,
벗어날 줄 몰랐다.
그 결과,
나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충분히 건네지 못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선언한다.
이 감정의 대물림을
내 세대에서 끊어내겠다고.
그것이 내가 가족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남아 있던
‘가족이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과 다시 마주하고 있다.
나는
딸을 통해 아프고,
딸을 통해 변화 앞에 멈춰 섰고,
딸을 통해 내 마음의 결을 다시 세워가고 있다.
부서진 마음은 나를 무너뜨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장의 길로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딸에게 그토록 절실하게 말하고 싶었고
너무 많아 정리가 어려웠지만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단 하나였다.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 오래 돌아온 말,
이제는 숨기지 않을 말.
끝내 꺼내야만 했던 그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내 삶 전체를 다시 비추어주었다.
꿈속에서나마 꺼내놓은 사랑을 마주한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이제는 말하며 살아가기로,
나는 나 자신에게 조용히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