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했던 마음의 가장 느린 고백
그날 밤 꿈에서
내가 너를 붙잡고 “사랑해”라고 외쳤다.
꿈속에서는 그렇게 절박하게
“사랑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를 외쳤으면서도,
현실에서는 그 말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라도 먼저 해보려 한다.
딸아.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였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너는 엄마가 가장 필요했을 시간에
혼자 버텨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한숨이
땅끝까지 닿는 느낌에 자주 괴로워진다.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을 말하지 않았고,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때의 나는
삶을 감당하느라
정작 너의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나는 책임은 졌지만,
정서는 끝내 돌보지 못한 엄마였다.
그게 너에게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껴질 만큼
큰 결핍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일까.
꿈속 비행기에서
내가 외친 “사랑해”라는 말은
현실에서 끝내하지 못한 말이
꿈에서 먼저
너에게 향해 나온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너의 삶을 옭아매는
방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너로서 살아가는 것이
엄마인 나보다
언제나 먼저이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관습처럼 굳은 삶의 태도 대신
조심스럽게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버티는 방식으로만 살지 않고,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를
조금씩 되찾는 쪽으로.
이 변화가
너에게 직접 닿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무너지지 않는 방법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내 안에 남겨두고 싶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도 바뀌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딸아.
언젠가,
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꿈속에서는 너의 손을 붙잡았지만,
현실에서는 너의 손을 다시 잡지 않아도,
그저 네가 네 삶을 너답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괜찮다.
나는 너를 붙잡지 않겠다.
다만, 네가 길을 묻는 날이 온다면
조용히 옆에 서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남긴다.
"사랑한다."
브런치북 ‘갈등의 판도라’를 쓰는 동안,
나는 ‘엄마로서의 나’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세우는 연습도 함께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리해 둔 나의 삶의 방향은
아돌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
『Self-Reliance』에서 영감을 받아
나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자기 신뢰 선언문’이 되었다.
이 선언문은
인생의 중반을 지나온 내가
앞으로 다시 내게 주어진 삶의 중반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