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으로 버텨온 나를 다시 살아내는 연습
아이들의 말투, 무심한 태도에
나는 쉽게 화가 났고, 억울했다.
분노가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늘 깊은 무기력 속에 잠겨버렸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처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은 나를 바라보며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도대체 반복되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 답을 찾고 싶어
마음 깊은 곳에 오래 잠가두었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 ‘갈등의 판도라’ 안에는
오래도록 삼켜온 말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감정의 잔여들,
그리고 엄마로서도, 딸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참고 또 참기만 했던 내가 숨어 있었다.
아이들의 불만 섞인 말 한마디에
왜 나는 그토록 쉽게 무너졌을까?
예전에는 그게 내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너무 무겁게 감당해 온 사람일 뿐이었다.
손에 작은 상처가 난 사람은
물이 닿아도 괜찮다.
하지만 화상 입은 피부는
미지근한 물만 닿아도 아프고, 화끈거린다.
나는 지금껏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참아야 하니까’
스스로를 감정의 화상 상태로 몰아넣으며 버텨왔다.
그러니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곧바로 상처처럼 느껴진 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몸과 마음이 한계 가까이까지 버텨왔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홀로 아이를 키워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버겁고 힘들었을까.
누군가는 정서적으로 기대어 쉴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는 도움을 청할 가족이 있었고,
누군가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의 안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 없이
감정의 바람막이도, 기대어 쉴 사람도 없이
막막한 현실 한가운데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대인기피로 사람들 사이에 서는 것조차 힘들었고,
조언을 구하거나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의 감정까지 모두 받아내며 살아가는 일은
이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니 누군가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내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던 마지막 기둥이
무너지는 일처럼 느껴진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내가 예민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된 내상이 건드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가족은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도움을 받아본 경험 없이 자랐기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도움을 청하면 누군가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아
입을 다물어야 했다.
결국 나는 가족이 있음에도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던 그 시절,
혹여나 누군가 내 삶에 스며드는 것도 두려웠다.
따뜻함에 기대는 순간
내 아이들을 내려놓게 될까 봐
심장이 먼저 조여왔다.
그래서 사람들을 과하게 차단했다.
그건 차가움이 아니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상처받는다는 것은
엄마로서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그 관계를 진짜로 살아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많이 울었다.
정말 많이 아팠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은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알지 못했던 나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왜 그렇게 버틸 수밖에 없었는지,
왜 작은 말에도 무너졌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버텨야만 했지만
지금은 내가 나로 살아도 되는 시간이다.
그동안 버티며 살아낸 나도
충분히 잘해왔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내 감정을 돌보며 살아가려 한다.
아이들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
더 이상 버티기만 하지 않고
조금은 살아 있는 삶으로 나아가려 한다.
오늘도 여전히 흔들리지만,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살아내는 연습을 이어갈 것이다.
이제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으로.
그리고 이 글을 끝으로
나는 오래된 상처의 이야기를 잠시 한쪽에 놓아두려 한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만,
삶을 배우는 나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 여정을 함께 건너준 당신 덕분에
나는 마침내 다음 장으로 걸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