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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an 15. 2022

누구나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난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자리를 위해 평생을 방황한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체크카드가 학생증이었다. 카드와 학생증이 동시에 결합된 형태의 카드는 확실히 편리했지만, 이름과 증명사진과 학교 이름이 고스란히 박혀 있는 건 언제나 거슬리는 점이었다. 졸업을 앞둔 지금에서야 카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곧장 새로운 체크카드를 신청했다. 요즘은 참 살기 편한 세상이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뚝딱 카드를 만들고 배달까지 받을 수 있으니.


그리고 카드를 신청한 지 일주일. 휴일 오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지 않았는데, 전화가 끊기자마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OO카드] 회원님 OO카드를 배송차 연락드렸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전달 못했습니다. (주)국제 배송원 OOO


이런. 회사를 다니면서 이제는 모르는 번호라도 일단 받고 봐야 하나 생각이 드는 참이었는데. 요즘에는 전화를 잘못 받기만 해도 개인정보가 빠져나갈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지만 앞으론 010으로 시작하면 우선 받아야 하나 싶다. 어머니께서 1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긴 했어도, 괜히 경계심 많은 나 때문에 애먼 배송원님께서 다시 길을 되돌아오셨으니.


아무튼 배송원님의 전화를 다시 받은 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말았다. 보통 택배기사님처럼 배달하시는 분들은 절대다수가 체력 좋은 남성이기에 당연히 카드를 배송해주시는 분도 남성일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여성이었다. 게다가 적게 잡아도 중년, 40대 후반이신 내 어머니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나이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어 보니 키는 나와 엇비슷하고 짧은 머리를 굵게 파마하신 배송원님이 서 계셨다. 흔히 '배달원'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로고가 찍힌 유니폼도 없이 평상복을 입고 계셨다. 집을 나가면 길거리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 19년 살아오는 동안 다양한 고정관념에 물들여진 나는 하마터면 지나가던 시민이 현관 앞에 서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카드를 받은 후 방에서 봉투를 뜯으며 생각했다. 저분도 OO카드 직원이실까? 무례하게도 함부로 그런 의문을 품었다. 궁금증을 해결하려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 카드 배송원 중에는 아르바이트 또는 부업으로 카드를 배송하는 주부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본업으로 카드를 배송하시는 분들은 도보가 아니라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내가 예상하기에 그 배송원님은 아르바이트 또는 부업으로 카드를 배송하시는 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나도 부업을 했던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몇 개월 동안. 당시 어머니께서 집 근처에 있던 부업 집에서 일을 받아 부업을 시작하셨고, 처음 몇 번 어머니를 도와드리다가 문득 '돈도 못 받고 돕기만 하다니 억울하다'라는 불효스러운 마음을 품고 어머니께 주장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고 싶다고. 어머니는 흔쾌히 OK 하셨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 한 달에 10만 원을 받기 위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한 자리에서 내내 바코드를 붙이고 봉투에 물건을 포장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으니까. 오죽했으면 부업이 하기 싫어 학교에서 집에 가기 싫다는 생각까지 했었을까. 물론 그 경험을 계기로 돈의 소중함을 깨닫고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몸소 느끼긴 했지만.


부업하는 어머니를 두었던 사람이고, 부업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들었다. 자세한 상황은 조금도 모르는 주제에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만을 보고 그랬다. 만약 그 배송원님이 내 예측대로 아르바이트 또는 부업으로 카드를 배송하시는 분이셨다면?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거나, 주부로서 오랜 시간을 살다가 이제는 다른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구한 일이 아니었을까. 살며시 쓸데없는 망상 회로를 돌려 본다.




나이가 어린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떤 날씨를 맞닥뜨릴지도 모르고, 어떤 항해를 이어갈지도 모른다. 꽃봉오리도 맺히지 않은 새싹이니 당연하다. 오랜 세월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햇빛을 쬐고 땅 속에 박힌 뿌리로 양분을 빨아들이며 천천히 나만의 꽃을 피워가는 길이 있다.


하지만 모든 어른이 이미 완성된 꽃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아니다. 애초에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나 조건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어른이 되고,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나를 상징하는 꽃이 수많은 모습과 색깔로 피어나는 것이지, 잘 살아가는 사람이나 어른의 조건은 없다. 나이를 많이 먹고 수많은 성인의 하루를 보내도 모두에게 오늘은 처음이고 모두가 어린아이 같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실수를 하고 철없이 굴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하루 더 어른이 되거나, 딱히 어른이 될 필요도 없이 그냥저냥 자신의 자리를 찾아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겠지.


인생에는 너무 많은 사정이 존재한다. 일일이 돌봐줄 수도 없는 것들이 많아서 나도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일상은 일상이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에서 조금씩 즐거운 일과 아주 사소한 가치를 몇 가지 찾아내려 노력할 뿐이다. 내가 아주 잠깐 만났던 그 배송원님도 아주 넓고 지극히 좁은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다니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겠지. 아님 말고. 어차피 내 일방적인 판단이니까.




이따금 방황하는 게 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제대로 안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대단하게 이룬 것도 없고 오히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보일 때마다. 안정적인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제대로 직업을 갖지도 못한 애매한 자리는 당장 가라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낡은 나룻배와 다름없이 느껴진다. 이제 갓 스물 된 파릇파릇하고 미래 창창한 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니, 나와 비슷한 사람은 내가 모르는 곳에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엔 이미 내 마음조차 위태롭다. 30대는 20대를 그리워하고 40대는 30대를, 50대는 40대를, 60대는 50대를 그리워하듯이, 애꿎은 시간이 쌓인 후에 멈칫멈칫 돌아보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싶다. 굳이 많은 걸 이룰 필요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여정은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당장이라도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은 아주 힘들고, 아주 많은 사정 때문에 수많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에 두렵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현실을 수긍하면서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나의 길을 찾아가는 모든 순간이 무거운 돌덩이처럼 느껴지지는 않기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을 어찌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시간이라 단정 지을까. 나 자신조차 나에게 쉽게 내리지 못하는 무식한 판결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난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존재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기 위해 평생을 방황하고 모험한다. 그러므로 죄가 없다. 태어난 김에 최대한 열심히 살아가려 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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