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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19. 2023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모두 각자 다른 존재로 태어났으니


대다수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통 요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비옥한 땅과 좋은 흙, 적당한 물과 적당한 햇빛과 적당한 바람, 이를 비롯한 다양한 양분. 나와 비슷한 나이라면 아마 어린 시절 학교에서 식물 키우기를 해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교실 창가가 반 아이들이 가져온 갖가지 꽃 화분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던 풍경. 사실 당시에는 꽃이나 식물에 관심도 없었고 만사를 그다지 깊게 생각할 때도 아니었기에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남은 기억이 있다.


나는 어머니와 집 근처에 있던 꽃집에서 화분 하나를 샀다. 이름은 모른다. 커다랗고 큰 암술이 있었고 연보랏빛 잎이 예쁜 꽃이었다. 나의 화분도 교실 창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애정을 듬뿍 쏟지는 않았지만 메마른 흙에 물을 주고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화분을 구경하면서 내 꽃에도 한 번씩 눈길을 주었겠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나의 화분에 피어 있던 꽃들이 단체로 시들어버린 것이다. 아마 반 아이 중 누군가가 내게 말해주어서 알았을 것이다.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싱싱하게 잘 살아있는 다른 아이들의 꽃에 비해 이상하게 내 꽃들만 전부 잎이 축 시들어서 무척 속상했었던 마음이 어렴풋하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몽땅 시들어버린 꽃 화분이 내심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그다음 날이었던가, 다시 놀라운 일이 생겼다. 누군가가 사물함 위에 올려두었던 화분에서 전부 힘없이 시들었던 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게 아닌가. 사물함 위에서 온종일 햇빛 한 줌 받지 못하고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꽃이 오히려 살아나다니. 당시 나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볼품없이 처졌던 꽃이 다시 피어났으니 무척 기뻤다. 다만 그마저도 제자리에 돌려두었더니 다시 시들어서 꽃 화분을 버렸거나 집에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기억은 모조리 불분명한데 꽃이 시들었던 모습과 언제 그랬냐는 듯 사물함 위에서 다시 생생하게 솟아났던 모습만 선명하다.




꽃은 생각보다 훨씬 민감한 존재. 풀숲이나 들에서 계절마다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는 강인한 야생화나 풀꽃과는 달리, 꽃집에서 관상용이나 반려식물로 구매하는 친구들은 섬세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메마르고 시들어 버린다. 온실 속 화초가 되려 조금만 삐끗해도 꼴까닥 숨이 넘어가버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까. 물론 온실 속 화초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들은 온도와 습도, 하루에 쬐는 햇빛의 양과 물의 양이 철저하게 관리되는 곳에서 최적화된 환경을 누리며 성장하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나의 꽃은 햇빛을 너무 많이 쬐면 오히려 시들어버리는 꽃이었던 걸까. 의외로 꽃은 햇빛을 너무 많이 받으면 수분이 부족해지고 금방 시들거나 잎이 마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꽃 종류는 수만 가지일 테고 꽃마다 잘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소도 제각각이다. 나 또한 나의 꽃이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주의사항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지만, 그저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해서 산 화분을 룰루랄라 가져갔던 무지한 초등학생에게 그럴 정신머리는 없었고 그렇게 아픈 마음을 끌어안은 채 시든 꽃을 떠나보내야 했다.


언젠가 보았던 글 중에서 인상 깊었던 글이 있다. 세상을 바다로 비유하자면 고래, 상어, 고등어, 조개, 새우, 미역, 게, 복어, 멸치, 넙치, 해파리 등등 수많은 물고기와 바다 생물이 공존해야 하는데, 세상은 고래처럼 크고 상어처럼 강한 종만을 선호하고 있다고. 글을 읽으니 문득 내가 썼던 글이 떠올랐다. 메거진 '지나가는 글귀'에 발행한 <나는 앵두나무로 태어났는데>에도 비슷한 문장을 썼었다. 작고 볼품없는 앵두나무로 태어나 크고 탐스러운 사과나무를 동경하지만 앵두가 사과보다 못날 건 뭐가 있냐고. 내가 앵두나무로 태어난 것처럼 다른 나무들도 다른 나무로 태어났으니 자신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지. 세상을 바다로 비유할 수도 있구나. 별로 길지도 않았고 전문가나 문인이 한 말도 아니지만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이 세상이 바다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고래 같은 사람과 상어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고등어 같은 사람, 조개 같은 사람, 새우 같은 사람, 미역 같은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이 살아가야만 한다. 사람은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닌 채 다른 성장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만큼 각자 살기 좋은 환경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몸집이 크고 힘이 강한 생물만 살아가는 바다는 바다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지금 생각하니 죽은 꽃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도.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마음이나 아량이 넓은 편도 아니라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사람을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니까'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 와서는 너무 늦어버린 것들이 많다.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구태여 먼저 다가가지는 않더라도 배척하고 비난하지는 않게. 내가 그런 취급을 당하면 나도 슬플 테니까.


각자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내가 최적의 환경에서 잘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지도 모르고 평생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운과 노력이 따라준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성취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나의 무지와 무식으로 인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힘없이 녹아내린 꽃은, 나에게 '네가 베푸는 호의가 나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내가 좋다고 남에게까지 좋지 않은 것.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기에 필요한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운 날씨에 천변을 힘겹게 거닐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 더운 여름이 찾아와 밖에 한 발자국 나서기도 힘들다. 역시 여름은 여름에 태어난 나에게 너무나도 힘겨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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