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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27. 2022

연차 일기

나의 삶을, 내가 사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


휴일이 찾아오면 하루 정도는 집 근처에 있는 중랑천에 나와 산책을 하는 편이다. 오늘은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주말보다는 사람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남들 다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에 혼자 생각 없이 멍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중독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하는 소소한 행복이다.


끝없이 길게 이어진 하천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 나와 같은 길을 걷지만 모두 다른 방향과 다른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처럼 혼자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 가족 또는 친구와 느긋하게 걷는 사람, 즐겁게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중년, 선생님 손을 꼭 붙잡고 무리 지어 다니는 어린아이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 선글라스를 쓰고 운동복을 입고 빠르게 달리는 사람, 동호회에서 나왔는지 단체로 자전거 도로를 누비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세자면 끝도 없다. 하늘을 유려하게 가르며 날아가는 새들과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오리는 어떤가. 투명한 물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다리가 정말 귀엽다.


아침에는 쌀쌀한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지만 쏟아지는 햇살이 포근하다 못해 꽤 뜨겁기까지 한 것은 변덕스러운 가을의 매력 같다. 무더운 한여름보다는 역시 가을 산책이 상쾌하고 산뜻하다. 온통 푸른빛이었던 나뭇잎이 조금씩 제각기 다른 색깔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면서 휑한 아스팔트 바닥이 채워지는 풍경은 마음을 뭉근하게 만든다. 물론 매일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낙엽을 쓸고 치우셔야 하는 거리 환경미화원분들을 떠올린다면 마냥 아름다운 풍경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휴일에 산책을 나온 나에게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사정없이 볼을 찌르는 햇빛이 따가워질 즈음에는 하천에서 살짝 벗어나 아파트 단지로 올라온다. 줄지어 선 나무 그늘 속에서 햇빛을 피하고 가을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산책로이다. 고개를 들면 바로 옆에 중랑천과 많은 사람과 맞은편을 빼곡히 채운 나무들이 보이는 곳. 집 근처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중간에 벤치나 흔들의자 등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도 많은 편이다. 주말에 나오면 흔들의자는 늘 만석인데, 오늘은 혼자서 흔들의자를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운이 좋다.


일어나고 나서야 흔들의자 옆에 있던 두 벤치가 모두 주인을 찾은 것을 알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왼쪽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던 할아버지 두 분이 천천히 흔들의자로 걸어가 앉는 것을 보았다. 역시 모두가 아닌 척하면서도 아늑한 천장과 느긋한 흔들림이 있는 넓은 의자를 탐내고 있는 모양이다. 나 혼자 오랫동안 명당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죄책감이 일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였다면 소풍길이 끝나는 부근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 다시 중랑천을 걸었을 테지만, 오늘은 평범한 휴일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평소와는 다른 길로 가고 싶었다. 우회전이 아닌 직진을 선택하여 그대로 중랑천에서 살짝 벗어나 처음 보는 거리에 들어섰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대로 좌회전을 하려다가, 왠지 길이 하천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서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웬걸? 한쪽에 꽃이 주렁주렁 매달린 다리를 건너 경전철역을 지나 걸어가고 있는데 바로 도로 건너편에 공원 같은 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랑천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도 걷는 길이 조금 다른 탓에 몇 개월 만에 처음 알아챈 사실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 공원이 바로 음악도서관이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문화 공간으로 미술 도서관과 음악 도서관이 하나씩 있는데, 미술 도서관은 어머니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음악 도서관은 정확한 위치를 찾아보지 않아 '언젠가 한 번 가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진 것에 놀랐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도서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피부를 감쌌다. 음악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름 모를 팝송이나 가사 없는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어 숨 막히는 정적이 없었다. 신기했다. 내가 아는 도서관은 숨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공간이었는데, 여기서는 굳이 발소리가 나지 않을까 힘들게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음악이 공기와 함께 녹아들고 있었으니까.


음악 도서관은 미술 도서관보다 좋았다. 집에서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 미술 도서관보다 크기가 작아서 아늑하고 돌아다니기 편하다는 점, 아기자기하면서도 차분하고 깔끔한 인테리어, 나의 취향과 맞는 책들―이미 내 책장에 있거나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이 꽤 많았다―, 3층에 CD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까지 모든 게 좋았다. 이런 곳이 바로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있었는데도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했지만, 바로 오늘이 쉬는 날이었고 평소와 다른 길을 택했기에 이 공간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향한 감사함과 신기함에 그런 감정은 쉽게 사라졌다.


햇빛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김금희 작가의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나태주 시인의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를 조금씩 읽고 왔다. 세 권이나 되는 책을 한 번에 모조리 읽을 만큼 뛰어난 집중력과 흡입력은 애석하게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아 모두 조금씩 읽고 책을 덮었다. 시 컬렉션은 2층에 있었다. 창가 자리에 뜨거운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조금 더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아서였는지, 아니면 시집에 실린 시가 모두 좋아서였는지 시집을 읽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삶을,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긴 것 같다고.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개인적인 자유로움이 좋았고, 읽고 싶었던 책들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된 것이 좋았고, 도서관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건강 체조를 하는 아주머니들이나―몸을 크고 격하게 움직이거나 제자리에서 뛰는 동작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풍을 나온 어린아이들, 부모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자그마한 아이나 경쾌한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누비는 여자아이가 내가 있는 지금 이 공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잔잔하고 뜨뜻하게 만드는 듯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샛노란 은행잎이 눈처럼 쏟아지는 장면이 창밖으로 보였다. 책을 읽느라 뻐근해진 목을 뒤로 젖혔다. 버거운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건 이런 날들일지도 몰랐다. 예상치 못한 행운에 웃음이 나오고 긍정적인 감정에 마음이 들뜨는 순간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무미건조한 나날을 다채롭게 칠해주고 무료하고 예사로운 나의 삶에 별빛을 하나씩 달아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하루하루가 모두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생의 조각이지만, 유난히 힘겹고 피곤한 날이 있는 것처럼 유난히 즐겁고 산뜻한 날도 있지 않은가. 그런 날을 기억에 담고 살아가는 게 나에게는 좋을 것 같다.




모처럼 좋은 장소를 발견해 기분이 좋다. 마을버스를 타면 시내도 멀지 않고, 중랑천도 바로 주변에 있고, 걸어서 음악 도서관에 갈 수도 있는 아파트에 산다니. 인생 자체에 행운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자리 잡고 살아왔던 터는 매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니면 그저 나의 한순간의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어쨌든 상관없다. 이제는 주말마다 중랑천에서 산책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니.


갑작스러운 연차를 내고 와서 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별다른 전화는 오지 않았고 하루는 평화로웠다. 이제 내일만 잘 버티면 다시 주말이 오는데… 내일도 입사 이래 처음으로 수행하는 업무가 있어 걱정이다. 부디 내일 하루만 잘 견디자. 하지만 겨우 하루라고 해도 몇 시간 머무르는 동안 내내 잔잔하기만 하다면, 그건 진정한 직장이 아니―라고 나 혼자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먹이 날아오고 잘 넘겼다고 생각했던 일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더라도 '하하!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했는데? 재미있네?'라는 마음으로 애써 눈물 삼키며 견디는 게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과정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 글은 <기억나지 않을 하루> 매거진에 가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좋은 하루였기에 <나름대로 살아가는 에세이>에 길게 담기로 했다. 갑자기 쓸데없는 여담이지만 나는 '에세이(essat)'보다 '수필(隨筆)'이나 '산문(散文)'이라는 단어가 더 좋다. 아무튼 오늘은 생각보다 꽤 많이, 특별한 날이었고 기억에 남을 휴일이 될 것 같다.


흔들의자에 앉아 멍하니 중랑천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눈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무성한 나뭇잎을 바라보던 순간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저 밑에서 캡 모자를 쓴 사람이 반려견과 함께 반듯한 돌에 앉아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윤기 나는 먹빛 털과 쫑긋 솟은 귀가 유독 멋있는 개였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앉아 먹이를 주고 몸을 쓰다듬는 손길에서 보호자의 애정이 보였다. 자꾸 그쪽으로 시선이 가기에 혹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타인을 몰래 바라보는 건 무례한 일이니까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은, 사랑하고 있는 것들은 의외로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자신의 반려견과 늘 함께하는 보호자, 손을 잡고 길을 거니는 노부부, 어린 자식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부모, 함께 웃으며 나란히 걸어가는 친구 또는 연인들이 나의 하루 사이사이에 존재했다. 청명했던 하늘과 선선했던 바람과 나의 주변에 있었던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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