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회사에 입사한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회사 들어와서 일 배웠던 날이 고작 몇 개월 전처럼 느껴지는데, 확실히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다. 다른 선임들이나 상사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이지만, 사실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 했던 생각이 '아무리 힘들어도 1년은 버티자!'였기 때문에 나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직장생활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업무를 배우고 혼나느라 매일 힘들었지만 ― 지금도 자주 혼나고 매일 힘들지만 ― 어느덧 입사 2년 차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일단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면 마음에 둔 최대 마지노선은 재직자 특별전형에 지원 가능한 시기인 3년 근무. 사람 인생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뀌어 어떤 길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니, 너무 구체적인 미래 계획은 세워두지 않았다.
이참에 '고졸 직장인의 마음으로 쓰는 글'을 긴 텀으로 써볼까 생각한다. 연재 기간은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더는 고졸 직장인이 아니게 될 때까지. 만약 대학교에 입학해서 대학교를 졸업한다면 대졸 직장인이 될 테니 더는 고졸 직장인으로 살 수 없고, 지금 다니는 회사를 나와서 대학교를 거치지 않고 다른 회사에 들어간다면 직장만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고졸 직장인이니 계속 글을 쓸 수 있겠지. 혹은 지금 이 직장에 계속 근무할 수도 있을 테고.
의외로 직장에 대해 글을 쓸 주제는 많지 않다. 처음 배우는 일의 어려움이라든가, 사회생활의 부조리함이라든가, 상사와 회사에 대한 ― 조금은 비양심적인 부분도 있는 ― 험담이라든가…. 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막상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는 것처럼. 매일 수업을 들었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고,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때로는 갈등이 있었고, 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3년 동안 금융 동아리 활동을 했고, 교내 대회에서 종종 상을 받았고, 시험을 보면 한 문제 차이로 한 등급이 떨어졌고, 학교 앞 떡볶이가 맛있었고. 그런 시시콜콜하고 뻔한 이야기만 우후죽순 나올 뿐이다.
직장은 학교보다 무미건조하고 레퍼토리가 뻔한 세상으로 느껴진다.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웠고 친구들도 있었으며, 대부분 수업이 지루하긴 했으나 분명 즐거운 행사도 여럿 있었다. 회사는 매일 하는 일만 한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그게 더 싫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가 내게 주어졌다는 뜻이니까. 차라리 평소에 하던 업무만 하면 비교적 쉽고 빠르게 일할 수 있으니 하는 일만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매일 새로운 일이 주어지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거나 자유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움이라면 좋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직 경험해 보질 않았으니까.
그래도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좀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고 굳이 이런 걸 배워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어쨌든 내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경험은 없다고 여긴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생님과 딱히 친하지 않았던 친구,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활동, 시험을 위해 잠깐 휘발성으로 외우고 다 잊어버린 공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입은 상처와 사는 게 고달프다고 생각했던 순간과 지금은 다 까먹어 버린 수많은 나날. 어쨌든 무언가를 경험하는 순간 그건 기억이 된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나를 이루는 요소나 나의 일부가 되는 경험도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그것을 다 잊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어설프게나마 기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은 내가 행복할 수 없는 길이겠구나!
머리로는 잘 안다. 인간은 결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행복과 만족감만을 느끼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걸.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거나 도전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낸 후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고 나서 뛰어드는 게 현실적으로 안전한 과정이라는 걸. 그리고 '현실적'이라고 하는 이 말이 사실은 가장 비현실적이기도 하다는 모순까지. 비록 내가 차디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머리에 꽃 달고 대책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특별한 생각이나 고민 없이도 잘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박약한 사람이다.
학창 시절,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는 '진로'를 주제로 한 활동이 꽤 많았다. 적성과 흥미를 기반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성찰하고 나에게 맞는 진로와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수업. 그럴 때마다 대체로 나는 예술가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나왔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선호하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환경을 추구하며, 세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내면의 열정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일 때 누구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소 의미가 거창하게 부푼 문장에 어울린다고 판단된 사람. 예술가라도 바깥세상과 단절한 채 골방에서 혼자 고뇌하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사회생활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직장인보다는 나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지금 회사는 그다지 잘 맞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적성과는 정반대에 가깝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연계된 기업 중 하나로 입사했기 때문에 흥미나 관심 있는 분야도 전혀 아니었다. 난데없이 부동산 감정평가 회사에 입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회사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다니는 사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 돈을 벌고 경력을 쌓기 위해 직장을 구하는 일은 나만의 아지트를 찾는 게 아니다.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흥미와 적성에도 맞는 일을 하고 싶다면 혼자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프리랜서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다. 혹은 투잡을 뛰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더 나은 길이겠지.
다만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 이 회사에서는 별로 행복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가 악덕기업이라는 말은 아니다. 되레 좋은 편에 가깝다. 야근 수당과 상여금도 잘 나오고, 공휴일에는 꼬박꼬박 쉬고, 심하게 내리 갈굼을 하거나 아랫사람이라고 대놓고 하대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직장 내 괴롭힘 수준으로, 견디지 못할 정도로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다른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도 '네 회사 정도면 좋은 직장'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 또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잠깐 현장실습을 했던 유통업체와 더불어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 실감했다. 나는 관심 없는 분야에는 도무지 열정적으로 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학창 시절에 진로 탐구 활동을 하면서도 매번 궁금했던 점이다. 만약 적성에 맞는 일과 흥미에 맞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적성에 맞는다면 별로 관심 없던 일이라도 언젠가는 흥미가 생기고, 애초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어떻게든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령 실패하거나 역시 취미는 직업으로 삼으면 안된다며 후회하더라도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봤으니까. 그 또한 경험을 통해 얻은 배움일 테니.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꾸중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고 관심 없는 업종이라도 어쨌든 지금은 그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입장인데,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하자!'의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면 열심히 하는 거지, 무슨 노력까지 필요하다고. 내가 잘 모르거나 취약한 부분은 공부해서 보완하고,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계속 기억하면 되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변명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 동아리를 바꾸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얼떨결에 3년 동안 있었던 금융 동아리에서도 그랬다. 나는 금융에 별 관심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처럼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었다.
여러 직장에서, 다양한 업종과 직종을 경험하는 건 나에게 맞는 일,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조금씩 찾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나치게 무책임하고 무기력해지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매번 주의한다. 나는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 어쨌든 그 정도의 노동은 제공할 의무가 있다.
센스도 생각도 없어서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내가 센스가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 물론 화자가 진심으로 몰라서 질문하는 의도로 말했을 리는 없다. 나에게 기본적인 센스도 없고 상식도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사회에서 우수한 직장인으로 통하는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거의 F 수준이다. 매번 사소한 실수를 남발하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편이고, 사교성이나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에 임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나조차 '왜 이걸 제대로 못 본 거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땐 그나마 이 정도 꾸중으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적어도 인신공격을 하거나 잘못을 반성하라며 벽을 보고 한참 서 있게 하는 고문을 행하지는 않으니까.
빠릿빠릿하지 못한 나를 답답하게 여기는 선임과 상사에게는 내가 아니꼬운 부하직원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판을 상당히 의식하는 탓에, 유독 나에게만 냉랭하거나 까칠한 말투를 느끼면 바쁜 업무보다 그런 것들을 더 신경 쓰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집중력은 저하되고 다시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서 혼나는 일의 반복.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회사에서는 작은 일 하나하나 신경 쓸 수가 없다. 일희일비하면 힘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족 구성원 중에도 있었고, 나와 결이 다르거나 지나치게 맞지 않는다 싶으면 적당히 피하거나 거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무리와 어울려 지냈다. 그러나 회사는 규모가 아주 크거나 직원이 많지 않은 이상 그럴 수 없다. 그 점이 무섭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최대한 신경 쓰지도, 집착하지도 않아야 했다.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매여 있으면 해야 할 일도 못하고 나만 가라앉는다는 걸 직장에서 확실히 실감했다. 원래도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었다면,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잘 실천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회생활은 비합리적인 일에 대한 불만이나 억울함이 있더라도 참고 넘기는 인내심과 탄성력이 있어야 덜 괴롭다. 사실 부당한 일을 묵인하고 넘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점점 무너질 텐데. 어쩌면 이미 너무나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고작 이 나이에 착잡해진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 '나는 이런 직장을 다니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너무 사소한 일에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같은 감상밖에 있지는 않다. 회사는 분명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고, 나는 그것을 수행하며 천천히 능력과 노하우를 쌓아가는 직원이니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임들의 업무 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혼자 독자적으로 일하는 회사라면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굼뜨게 행동했다간 금세 불호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부기지수였기 때문에 회사에 있으면 어떤 일이든 최대한 빨리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무조건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건 아니어도 조금만 늦장 부리면 일이 순식간에 쌓이거나 바쁜 와중에 거래처에서 재촉 전화가 오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보니, 어느새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안달이 나 있다.
아무래도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가장 필요한 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잘 파악하는 능력일 것이다. 대부분 회사는 일을 못해도 인성은 좋은 사람보단 인성이 별로여도 일은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을 선호할 테니까. 종종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 '우리 회사 신입/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 성격이 나쁘진 않은데 일머리가 너무 없어서 죽겠다.' 이런 제목의 글과 영상이 올라오면 괜히 뜨끔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기껏 힘들게 회사 다니면서 경력을 쌓았는데 정작 필요한 일처리 능력이나 기본적인 프로그램 활용 능력이 없다면 훗날 이직을 하더라도 몹시 억울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상황은 역시 업무가 겹치는 상황이다. 우선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보통이다. 가령 처리하는 데 10분 정도 걸리는 업무 A와 처리하는 데 30분 정도 걸리는 업무 B가 함께 들어왔을 땐 A를 앞에 둔다. 만약 업무 B를 처리하는 도중 갑자기 업무 A가 들어온다면, 아주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업무 B를 모두 작업한 후 나중에 들어온 일을 처리한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는 차곡차곡 쌓이는 테트리스가 아니라 갑자기 적군이 무더기로 날아오는 슈팅 게임과도 같아서, 갑자기 급한 일이 서너 개씩 몰려오는 건 기본이고 거래처에서 전화가 몇 초 간격으로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어떤 일을 먼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선임인 대리님은 "급할수록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닌지라. 그럴 때는 급건으로 온 업무를 차례대로 처리하는 편인데, 급건 중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일이 있으면 뒤로 미룬다.
지금은 그나마 노하우라고 해야 할지, 마음의 여유가 전보다는 생겼다. 시간 내에 할 수 없는 업무를 억지로 떠안으려 고생하지 않는다.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업무는 '어렵다', '다른 업무가 많아서 오늘 안에 못할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한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딱히 내 사정을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나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으니 거래처에 연락은 알아서 하십쇼! 이런 느낌의 통보랄까. 좀 시니컬해진 면이 있다. 나쁜 말로 하면 시건방진 태도. 적어도 예의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명확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역시 '모르는 건 반드시 물어봐라'다. 그리고 모르는 내용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면 무조건 메모를 해야 한다. 사소한 내용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자꾸 질문했다간 서로 시간만 잡아먹고 왜 자꾸 알려준 내용을 또 물어보냐며 꾸중 들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니 일단 무조건 메모하기. 모르는 내용이나 헷갈리는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질문하기. 혹은 내가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틀린 내용이 있는지 검토를 부탁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제대로 일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귀찮으니 너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나중에 일을 왜 이따위로 했냐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상사들이 훨씬 많겠지. 이건 우리 회사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더럽게 일 못하고 머리도 나쁜 직원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최근 배운 내용은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나는 업무를 처음 배울 때 대부분 속성으로 배우느라 일의 흐름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메모만 했었다. 그렇게 하니 나중에 알아보기도 힘들었고, 내가 쓴 내용이 뭔지도 몰라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일은 하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하는지, 어떤 흐름으로 자료가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다. 가령 A라는 업무에서 가격이 잘못 나오면 추후 B라는 업무를 할 때 거래처와 혼돈이 생긴다거나, 토지 목록을 잘못 입력하면 데이터 연계가 이상하게 되어서 나중에 감정 금액과 수수료가 제대로 맞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거나. 서류를 정리할 때도 순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넣었더니 나중에 서류를 찾을 때 무척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하는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안되는지를 이해하고 나니 회사 업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나아졌다는 뜻이다. 초반에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만 생각 없이 하다 보니 무작정 시간에 쫓기듯 일하기만 했고, 그래서 내가 맡은 업무가 왜 중요한지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았고 그만큼 많이 혼났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이고, 무엇을 위한 과정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업무인지는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배워가는 것이 있다
아무리 거지 같은 회사라도 분명 배움은 있다. 다시는 이딴 회사에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지, 가족끼리 운영하는 회사는 무조건 걸러야지, 살면서 이 업계에는 절대 발도 들이지 말아야지, 저 인간처럼 히스테릭한 사람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구나… 이런 종류의 슬픈 깨달음이라고 해도.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직장이라면, 하다 못해 반면교사라도 배우는 점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뿐만 아니라 어리석고 투박한 사람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이상한 어른들을 보며 생각했었다. 절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감정은 행복이나 사랑보다도 수치심과 자괴감이 아닐까 싶다.
몸 담은 회사를 무작정 비난할 생각은 없다. 친구들과 만나면 회사 이야기와 직장 상사 험담으로 신나게 떠들긴 하지만, 어쨌든 집단이라는 존재는 탄생하는 순간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리니까. 정상이 비정상이 되기도 하고 비정상이 지극한 보편이 되기도 하는 곳.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무엇이 맞고 틀린 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곳은 모두 고유의 규칙과 상식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학생 시절을 등지고 험난하다면 험난한 사회생활을 맞닥뜨린 채, 회사라는 무서운 세상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면서. 일을 잘하는 능력은 아닌 것 같다. 일머리도 공부머리처럼 어느 정도 타고난다면, 나는 안타깝게도 일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업무에 능숙해진다기보다는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적응이 되어서 그나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소한 요소를 하나둘 발견하게 되는 것. 작년까지만 해도 10분은 걸렸을 일을 지금은 5분 안에 끝내는 것. 내가 업무적으로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고작 그 정도…이지만, 사실 '고작'이라고 칭할 정도로 볼품없는 부분은 아니다. 무척 대단하면서도 아주 작고 소소한 발전. 아주 낮은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는 중이다. 아직 이룩이나 성취, 달성 같은 거창한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전히 회사에 있으면 컴퓨터에 기가 빨리듯이 힘들고 지치는 건 입사 초기와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대리님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오, 많이 발전했는데?"라고 말씀하셨을 때 느끼는 뿌듯함. 그러다가 다시 꾸중을 듣고는 느끼는 작은 우울과 미약한 좌절. 그러다가도 퇴근할 쯤에는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까먹고, 다시 아침이 오고 출근을 준비할 때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
나도 언젠가는 이 회사를 벗어나는 날이 올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 새로운 마음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다른 직업을 가지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새로운 일을 배울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지금은 깨닫지 못하는 냉정한 현실의 각박함을 깨달을 것이다. 고작 2년 차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2개월 차 직장인이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면이 많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있다.
어딜 가든 항상 배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뭐라도 얻고 가는 게 있다면, 그게 '먹고살기 더럽게 힘드네' 따위의 슬프고 무의미한 수확이라고 해도, 어쨌든 나는 살아가면서 나의 오감과 피부에 닿고 기억과 생각의 일부가 되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고 여긴다. 경험의 중요성이랄까. 나를 위하는 말과 자신을 위하는 말 정도는 적당히 걸러 들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싶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것 같다. 지금 나의 일상은 하루하루 회사에 출퇴근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멍하니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한, 피곤하고 지루한 나날의 반복일 뿐이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 ― 보다 소중한 시간은 현재이기에 ― 현재는 지나가는 순간 과거가 되는 동시에 나의 미래를 만드는 발판이 되기도 하니까. ―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수많은 과거가 쌓일수록 기억은 흐릿해지고 감정은 무뎌지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르면… 지금을 그리워하는 날도 오겠지.
고졸 직장인의 마음으로 새기는 초라하고 단출한 직장생활. 생계를 위해 다니는 회사이긴 하지만, 마냥 돈을 위해서만 젊음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회사원인 동시에 학생인 시간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건 몸소 겪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인생 수업. 대가가 지나치게 씁쓸하지만 그럭저럭 단물을 맛보기도 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