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초기는 눈물이 참 많아지는 시기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호통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조용하고 순탄한 일상을 보내다가 매일 꾸중을 듣고, 혼나고, 나의 능력과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 나날이 숱하게 늘어나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일. 회사라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세상이다. 예외란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고 마음 굳센 사람이라도 직장생활이 시작점부터 여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정신력이 강하지도 마음이 굳세지도 않은 나는 어땠을까. 지금은 그나마 덜 혼나기도 하고, 이렇게 실수를 남발하는데 이 정도만 혼나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지만, 입사 초기에는 출근이 괴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아르바이트조차 한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험난하기 그지없는 회사 한가운데에 뚝 떨어졌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용하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고, 어떻게 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할 틈새도 없었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하기도 정신이 없는 데다가 손도 느린 편이었기에 업무가 밀리는 게 무서워서 점심을 거르고 계속 일한 날도 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에 땀이 흐를 수 있다는 걸 회사에서 알았다.
드물게 운수 좋은 날이 있다면, 유독 많이 혼나거나 하는 일마다 실수해서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많았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직장생활 초반에 울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회생활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서럽다. 특히 화장실이나 퇴근하고 돌아온 침대에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나는 눈물이 나기 직전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는 있었으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시기에도 펑펑 운 적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울음으로 감정을 해소한 적이 태어나서 한 번도 없다. 무의식적으로 울음을 억누른다고 해야 할까. 심적으로 너무 힘들면 애초에 눈물조차 나올 힘이 없다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울고 싶은 날이면 퇴근길 버스에 힘없이 앉아 노래를 들었다. 침잠한 기분과 정반대로 신나는 노래도 들었고, 내 기분처럼 잔잔하고 우울한 노래도 들었다. 뭐든 좋았다. 오늘 있었던 일과 속상한 기분을 간단하게 일기로 쓰고 책이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물론 아무것도 통하지 않고 그저 기운 없이 보낸 날도 많다. 퇴근 후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짧아서 멍하니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보낸 날이 숱하다. 무기력한 시간은 내게 치유가 되었을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저 시간만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까지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 나는 가만히 있는 동안 무언가를 잊었고 반대로 더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날은, 역시 회사에서 혼난 뒤에 퇴근길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날이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혼났고, 상처받을 말도 들었고 ― 내가 일부러 기억을 억누르는 건지, 그 말이 뭐였는지는 선명하게 기억나지가 않는다. ― 앞으로 이 회사를 얼마나, 어떻게 다녀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버스가 좌회전으로 돌면서 몸이 밀리는 동안, 왠지 오늘을 앞으로도 계속 기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드니까.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내가 더는 사소한 말 하나를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무뎌지면, 그때는 오늘을 떠올려도 조금 덜 힘들 수도 있겠다고.
내가 타는 정류장은 버스 안에 사람이 많지 않다. 승객이 한 명도 없어서 내가 제일 먼저 타는 날도 있다. 항상 같은 루트로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버스는 조용했다. 나는 혼자 슬펐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하루를 보내면서 각자의 슬픔과 고난과 상처를 안고 귀가하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직장생활이란 어떻게 해야 덜 아프고 덜 괴롭게 돈을 벌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를 깨달아야 하는 영역이니까. 인생 공부는 험난하다. 학교에서 맞닥뜨렸던 그 어떤 난제도 이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사실 힘들고 수치스러웠던 날은 최대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구태여 억지로 기억에서 꺼내어 마주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사라지는 기억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생생하게, 현실과 가장 비슷하게 기록하고 싶다. 나는 내가 몇 년 동안 남긴 수많은 기록과 일기를 훗날 들춰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내가 어떤 글을 썼고 무슨 일을 했는지도 전부 까먹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떠나보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슬프고 외로웠던 퇴근길 버스 안을 기억한다. 아마 그날로부터 거의 1년 반 정도는 지났을 것이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다. 고작 1년이라지만 1년은 사람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변했는지 애초에 뭐가 변하기는 했는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외롭고 슬펐던 버스 안은 언제까지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은 오랫동안 기억의 서랍 구석에서 나를 건드릴 것이다. 누군가가 그때의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분명 촉촉하게 젖어 있으리라.